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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치과에 간다. 엄마가 미루고 미뤘던 이 치료를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시작할 때, 아빠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시고 또 얼마 안 있어 우리 곁을 떠나셔서 마음에 여유가 없기도 했고, 그 뒤로는 엄마가 안심하고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상황이 오길 기다렸는데...

이 상황이 2년을 넘기고 3년째가 되니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가 흔들리고 때로는 아프기도 해서 음식을 반대쪽으로만 씹는 것을 계속하기엔 엄마도 무리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하게 움직이셔도, 연세가 적지 않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5번 정도의 치과 치료를 잘 지나왔다. 물론 아직 모든 과정이 끝나려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지만.

찬밥이 저절로 풀어지도록 끓여야 
 
 김치밥국
김치밥국 ⓒ 박정선

임플란트하기 위해 흔들리던 이를 뽑기 전날, 씹지 않고도 술술 넘길 수 있는, 옛날부터 먹었던 '김치밥국'(모양만 보면 김치죽이나 김치 국밥이라고 부르면 될 텐데 경상도에서는 김치밥국이라고 부른다)을 끓이기로 했다. 이 뽑은 다음에는 뜨거운 음식은 피해야 하니까 미리 끓여 놓기로 한 것이다.

김치밥국은 어릴 적부터 엄마가 추운 겨울에 속이 따뜻해지라고 끓여 주셨던 추억의 음식이다. 서울에 사는 동안 비슷한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던 걸로 봐서, 아마도 경상도나 아랫지방에서만 그렇게 부르며 먹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겨울엔 따끈하게 해서 먹지만 지금 같은 여름에도 냉장고에 뒀다가 차갑게 먹으면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식으면서 밥알에 김치 양념이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마치 라면에 찬밥을 말아 먹으면 더 맛있다고 했던 어느 라면 광고처럼 말이다. 

이름을 밥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찬밥을 넣고 끓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씻은 쌀을 참기름에 볶아 만드는 죽과는 달리,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신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양파와 파를 다져 넣어 볶다가(우리 집은 기름 없이 물로만), 멸치 육수를 붓고, 찬밥을 덩어리째 넣어서 끓이면 완성이다. 

더운 여름에 음식 만드는 것이 힘든 일임을 아는 엄마는 내가 좀 더 쉽게 끓일 수 있도록 엄마만의 방법을 알려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찬밥 넣고 나서 주걱으로 밥 풀지 마래이!"였다.
 
 김치밥국
김치밥국 ⓒ 박정선

안 그래도 덩어리 밥을 나무 주걱으로 으깨려고 뚜껑을 여는데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다급하게 외친 말이다.

"그렇게 다 풀어놓으면 이 더븐데(더운데) 김치 익는 동안 옆에 서서 저어줘야 된다 아이가. 찬밥 넣었으면 끓으면서 지절로(저절로) 풀리도록 손대지 말고 그냥 나뚜는(놔두는) 게 낫다."

'오호, 그러고 보니 밥알을 다 풀어놓고 끓이면 나중에 바닥에 눌어붙어 있곤 했지.' 역시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앞으로 다른 죽을 끓일 때(죽이라고 하지만 나는 야채죽이든, 전복죽이든 찬밥을 넣어 끓이니까)도 그렇게 해야지 생각하며 엄마를 보고 '엄지 척' 했다.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우리 집 소울푸드
 
 김치밥국
김치밥국 ⓒ 박정선

김치밥국은 들어가는 재료가 별것 없다. 그래서 마지막엔 항상 잊지 않고 달걀을 넣어준다. 김치밥국에서 달걀은 미역국의 소고기 같달까? 흰자가 덩어리째 익은 것을 밥국과 함께 먹으면 고소하고, 어쩌다 저 밑에 가라앉아 채 풀어지지 못한 노른자가 그릇 안에서 보이면 왠지 횡재한 것 같으니 말이다. 고기보다 인기가 덜한 달걀이지만 김치밥국 안에서는 존재감을 빛내기에 충분하다.

엄마는 그런 달걀을, 항상 우리들 그릇에 담아주시고 정작 당신은 건더기도 별로 없이 멀건 김치와 밥만 드시면서도 좋아하는 담백한 맛이라며 그릇을 싹싹 긁어 드셨던 기억이 난다. 

다른 나라에서는 소고기 스튜(소고기, 토마토, 당근, 감자, 셀러리, 마늘 등 갖은 채소를 넣고 뭉근하게 익힌 음식)나 (책 제목으로도 유명한) 닭고기 수프가 소울푸드인지 몰라도, 우리 집 소울푸드는 달걀은 모두 우리한테만 주셨던 김치밥국이 될 것 같다.
 
 김치밥국
김치밥국 ⓒ 박정선

언젠가 나도 나이가 더 들어 임플란트하게 되면 이때가 자연스레 떠오를 테니까. 그때는 엄마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어 이 김치밥국을 끓이며 목이 메겠지. 달걀흰자와 노른자를 다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에 괜히 이 뽑은 자리가 아프다며 엉엉 울지도 모르겠다. 

경상도식 김치밥국 만들기 

재료(2인분) : 찬밥 2그릇, 김치 반 포기, 양파 반개, 파 약간, 마늘 약간, 달걀 2개, 참기름, 깨소금, 김칫국물(간 맞추기 위해)

1. 멸치 육수를 만든다. 멸치 내장을 떼 내고 약한 불에서 구운 다음 물을 붓고 끓여 우려낸다.

2. 신김치는 속을 털어내고 송송 썰고, 양파와 파도 다져놓는다.

3.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양파와 파, 신김치를 넣고 볶다가 멸치 육수를 붓는다.

4. 끓기 시작하면 찬밥과 마늘을 넣고 불을 낮춰 30분 정도 그대로 둔다. (이때 덩어리 진 밥은 풀지 말고 끓으면서 저절로 풀리도록 놔둔다. 이렇게 하면 밥알이 가라앉아 냄비에 눌어붙는 것을 줄일 수 있다)

5. 거품이 듬성듬성 올라오면 달걀을 넣고 국자로 휘휘 저어 풀어준다. 부족한 간은 김칫국물로 맞춘다. 

6. 다 끓었으면 그릇에 담고 다진 파, 참기름, 깨소금을 올려 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김치밥국#경상도식 김치죽#달걀은 우리에게#엄마는 김치밥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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