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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죽음을 불러올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죽는 것에 비견되는 몇 가지 고통이 있다고 들었다. 출산, 치통, 심한 편두통 그리고 신장이나 담낭, 방광 같은 곳에 생긴 결석으로 인한 고통까지. 이 고통을 겪을 때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치통 때문에 고생 좀 해본 나라서 그 맘 십분 이해한다)을 하는 이도 있다니 그 고통의 세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담낭에 생긴 결석이 말썽을 일으켜 통증에 시달리던 남편도 절제술을 받으며 이 고통에 대한 진지한 결론을 내놓기도 했으니.

"안 아파본 사람은 말하지 마라 캐라. 죽다 살아나는 기분이니까."

아무튼 이렇게 아픈 고통 후엔 마음마저 허해져 그런지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오곤 하는 걸 종종 느끼게 되는데,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오래전 내 친구의 어마어마한 통증이 가져다준 조금은 당황스러운 허기에 관한 것이다.

친구가 응급실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이 대구라는 도시의 여름은 형언할 수 없는 열기로 인해, 몸도 마음도 움직이기 싫은 나날들의 연속일 뿐만 아니라, 가끔은 끼니조차 거를 수 있다면 거르고 꼼짝 않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겁다.

아마 그날도 예의 더위 때문에 학교 대도서관의 에어컨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과, 조금도 꿈쩍거리기 싫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하며 선풍기 바람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던 날이었을 것이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릴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던 차, 급하게 울리는 전화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여보세요, 예, 제 친구 맞는데요? 뭐라고요? 응급실에요?"

등에 흐르고 있던 땀을 일시에 말려버릴 만큼 서늘한 소식 하나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내 과동기인 한 아이가 엄청난 통증을 호소해서 앰뷸런스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갔고, 그 아이의 보호자로 내가 호출됐다는 전언이었다. 그 아이는 과에서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아이였고, 본가가 동해안 어느 작은 어촌이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다. '아, 그래서 나를 보호자로 지목했나 보군!'

지갑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나, 확인을 하고는 옷을 갖춰 입을 사이도 없이 택시에 올라탔다. 평상시 같으면 대학생 신분으로 언감생심 택시가 웬 말이겠냐마는, 지금은 응급상황 아니던가.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친구의 통증이 그리 중하지 않기를, 친구의 병원비가 내 지갑에 있는 돈보다 상회하지 않기를 기도했던 거 같다. 그때만 해도 나도 참 순수했던 모양이다. 그리워라.

헐레벌떡 도착한 병원 응급실, 베드에 누워있던 친구는 멀리서 달려오는 나를 보고는 방긋,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혜원아, 미안하대이~~내가 괜히 아파서 근데, 니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아니가!"

동해안 쪽 억양이 강하게 밴 말투로 내뱉는 친구의 말이 응급실을 메아리로 울리며 내 귀에 와닿았다.

"개안타, 근데 니 어디 아프노? 얼굴 보니 지금은 좀 괜찮아진 거 같노!"
"내, 방광에 돌이 생겼다 카더라. 방광결석이라 그카대. 근데 사이즈가 작아서 약 먹으면 된다네. 맥주 같은 거 먹어서 빠져나올 수 있는 크기란다. 근데 오늘 아침에는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아이가, 진짜 내 죽다 살았대이!"

멀쩡해진 모습으로 자신의 병증을 줄줄 얘기하는 친구의 해맑은 모습이 마치 저 혼자 느리게 흘러가는 필름영화 같았다. 이 삼복더위에 전화를 받자마자 택시까지 집어타고 부리나케 달려온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 하나가 뚝 떨어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잠시 더위를 피해 자리에 누웠다 꾼 꿈인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난생 처음 들어본 병명과 증상, 병원 응급실 특유의 냄새로 인해 머리가 아파왔다.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럼 입원 안 해도 되나? 어떻게 하라더노?"
"응, 지금 맞고 있는 수액 다 맞으면 집에 가도 된다 카네."

수납을 하고 약을 타 나오면서 친구는 잠시 어지러웠던지 비틀거렸다. 잽싸게 그 아이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부축하는데, 좀 전보다 훨씬 더 기운에 찬 소리로
"아, 벙글벙글 식당 따로국밥 먹고 싶다" 이러는 거였다.

"따로국밥이 먹고싶다"
 
 따로국밥
따로국밥 ⓒ 픽사베이

벙글벙글 식당은 우리 고향의 유명한 음식인 '따로국밥'을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이었다. 따로국밥집으로 제일 유명한 집은 그야말로 따로 있었지만, 유독 이 '벙글벙글 식당'의 마니아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는 게 난 참 신기했었다. 

실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 집에서 자라나서 그런가, 따지고 보면 육개장과 밥을 따로 주는 음식일 뿐인 '따로국밥'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응급상황에 놀랐고, 밤새 고통 속에 힘들었을 친구를 위해 나는 먹지 않을 값에라도 이 친구 밥 한 그릇은 어떻게든 먹여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지금은 사라진 한일극장 옆골목 거기에 '벙글벙글 식당'은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육개장 특유의 맵고 들큼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친구는 주문을 하기도 전에 벌써 눈이 반짝반짝하더니 입맛을 다시는 것이다. 어제저녁부터 시작된 통증에 아무것도 못 먹었다며 이 따로국밥 한 그릇 먹으면 병도 금방 나을 거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수액 맞던 애 맞아?

그 무섭다는 결석의 고통도 단숨에 잊게 만들었던 '따로국밥'의 정체가 궁금하신가? 너무 심플해서 따로국밥을 처음 보는 분이라면 '에~, 이게 뭐야?' 할지도 모르겠다. 뚝배기에 벌건 기름이 둥둥 뜬 육개장 한 그릇과 따로 담은 하얀 쌀밥 한 그릇이 나오고, 다진 마늘이 든 종지와 막 익기 시작해 새콤달콤한 깍두기, 그리고 이 집의 시그니처인 쪽파와 김(부추를 내는 집이 더 많다)을 버무린 반찬 한 가지, 이게 다다. 너무너무 간단하고 소박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 '따로국밥' 이 사실은 '국밥'의 스테레오 타입을 과감히 깨버린 음식인 거에 비하면 말이다.

'국밥'이라면 으레 밥에다 다양한 국을 말아서 나오는 게 정석 아닌가. 맛있기로 소문난 '전주 콩나물 국밥'을 떠올려 보시라. 근데 대구의 '따로국밥'은 말 그대로 밥 따로, 국 따로이다. 국밥이라 함은 반드시 국에 밥을 말아야 한다는 통념을 깬 음식이다.

'따로국밥' 은 그 평범한 국밥의 정석을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참 좋았다. 그 이면엔 유교 색이 짙은 지역 성향으로 인해 나온 음식이라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밥'의 명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니 뉘신지는 몰라도 따로국밥을 오늘날 대구의 대표음식으로 만든 이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야, 따로국밥은 그래 말아먹는 기 아인데..."

말릴 새도 없이 밥 한 그릇을 국에 말더니 복스럽게 잘도 퍼먹는 친구의 얼굴이 점점 더 홍조를 띠기 시작하는 거였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부모형제를 떠나와 타지에서 홀로 아픈 자기 신세가 새삼 서러워 그런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이 푹푹 찌는 여름날 친구를 위해 달려 나와준 내가 고마웠던 것인지,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 한눈에도 보이는 것이었다.

"한 그릇으로 모자라지 않겠나? 한 그릇 더 시켜줄까?"

너는 왜 안 먹느냐는 말 한마디 없이 따로국밥에 진심인 친구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도 났지만, 자신은 어촌 출신이라 육고기가 듬뿍 들어간 이런 육개장은 여기 와서 첨 먹어보았다는 얘기, 아마도 평생 오늘 먹은 이 따로국밥은 잊지 못할 거라는 얘기,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별거별거 다 사 먹을 수 있다 해도 이 음식이야말로 자신의 인생 음식이라는 얘기까지 늘어놓는데 그 어떤 반박을 할 수도 없었고, 그저 이 한 그릇의 국밥이 친구의 통증과 약해진 몸을 달래줬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던 거 같다.

가끔은 친구 생각을 하면서 육개장을 끓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에 더해 맛을 발산하는 것 3가지(물론 철저하게 내 기준이다)가 있다고 한다. 친구, 와인, 그리고 어제 끓인 국. 죽음에 가깝다는 고통이 사라진 뒤 따로국밥 한 그릇이 먹고 싶다던 그 친구와는 언제부터인지 연락이 끊겼다. 와인도 웬만해선 마시질 않는다. 그런데 지금껏 한 가지는 내 곁에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는 맛이 무섭다. 후덥한 공기가 등 뒤를 휘감기 시작하니, 이열치열이라! 뜨끈한 따로국밥 한 그릇 간절해진다. 친구가 죽음의 공포에 근접하다는 그 고통을 겪고 난 후 떠올린 음식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삶이 신산해질 때, 간혹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뜨겁게 끓어올라 심장이 델 거 같을 때, 이 붉은 기름이 둥둥 뜬 따로국밥 한 그릇 생각나곤 한다.

바로 그 따로국밥 맛을 흉내 내기 위해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한우고기를 넉넉히 사다 가끔은 육개장을 끓여본다. 우리 지역 방식대로 무는 적게 대파는 최대한 많이 넣고, 오래오래 뭉근하게 끓여낸다. 내일 저녁쯤엔 하루를 묵혀 제대로 맛이 우러난 육개장과 하얀 쌀밥으로 밥상이 풍성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대파의 단맛이 소기름에 녹아든 풍요롭고도 나른한 맛. 지극히 질박한 거 같지만 제법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혀끝에 머물기도 하는 맛으로 말이다.

어느 날, 그 여름의 한 때처럼 무심히 따로국밥 한 그릇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밥 따로 국 따로처럼 서로가 철저히 달랐지만, 때론 한데 어울려 서로를 보듬어 주었던 나의 친구를 기다린다. 젊은 날의 우리를, 그 시절의 순정하고도 뜨거웠던 하루를, 다시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따로국밥#대구10미#이열치열#향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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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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