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중 최연소 안장자는 누구일까.
숨질 당시 나이 8세로, 충남 당진초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변지찬군이다. 최연소 안장자이자, 최연소 의사자다. 지난 2005년, 충남 당진시 면천면 외가댁 근처로 물놀이를 갔던 변군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친구를 구하려다 함께 숨졌다. 변군은 당시 함께 있던 형의 만류에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들었다.
변군의 형과 친구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왔지만, 두 아이는 이미 숨져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친구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물속에 몸을 던진 변군은 2008년 제4차 의사상자로 선정돼 대전현충원에 잠들어있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의 진실을 안다고 한다. 아름다운 사람이 머물다간 자리는 떠나간 뒤에도 훈훈한 삶의 여운이 남는다. 어떤 시인은 사람 뒷모습을 삶의 이력서라고 표현했다. 그 꾸밀 수 없는 뒷모습에서 그 사람 진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다.
국립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에는 60인의 의인들이 잠들어있다. 이 묘역은 의사상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예우하기 위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거쳐 지난 2007년 대전현충원에 조성됐다.
파도에 휩쓸린 아이 구한 의사사상자
의사상자 묘역에는 정부로부터 의사자(義死者)로 인정된 사람이나 의상자(義傷者)로 인정됐다가 나중에 숨진 이들이 안장된다. '의사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危害)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을 말한다.
국립대전현충원의 첫 의사상자 안장자는 채종민씨다. 지난 2006년 7월, 당시 35세였던 채씨는 전남 진도군 서망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던 도중 파도에 휩쓸려 가는 9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구조됐지만 채씨는 조류에 밀려 떠내려갔고, 수색 1시간 만에 해수욕장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위급한 상황에서 생면부지인 아이의 생명을 구하려다 희생된 채씨는 지난 2015년 '5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친구 사이인 황지영씨와 금나래씨는 지난 2009년 8월, 서해안고속도로 서천 나들목 부근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목격했다. 사고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1차로에 정차한 사고 차량의 구조 작업을 도왔다.
사고 당시 피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두 사람은 사고 상황을 뒤따르던 차량에 알리기 위해 휴대전화 조명을 손으로 흔드는 등 수신호를 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사고 지점을 덮친 차량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2010년 '올해의 시민 영웅상'을 받았다.
'초인종 의인'으로 알려진 안치범씨는 살신성인이란 무엇인지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2016년 9월 서울 마포구 한 원룸 빌라에 불이 나자 119에 신고한 뒤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연기가 가득 찬 건물 안으로 홀로 뛰어 들어가 집마다 벨을 누르고 불이 났다고 외쳐 이웃들을 대피시켰다.
그의 희생으로 이웃들은 모두 무사했지만, 정작 본인은 연기에 질식해 5층 계단에서 쓰러진 채 소방관들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향년 28세.
그는 생전에 성우를 꿈꿔온 청년이었다. 혼자 성우 학원에 다니기 위해 원룸으로 이사해 살다 화재에 휘말린 것이다. 안씨가 숨진 당일은 고인이 응시했던 성우 입사시험의 응시자 접수 마감일이었다. 이에 한국성우협회는 그에게 명예 성우직을 주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한국 성우 역사상 최초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탑승자들을 구한 승무원 3명도 의사자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숨진 승무원 박지영(22·여), 김기웅(28), 정현선(28·여)씨 등 3명을 의사자로 지정했다.
고 박지영씨는 세월호 침몰 당시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안심시키며 구명의를 나눠주고 구조선에 오를 수 있도록 돕다가 자신은 사망했다. 또, 연인 사이였던 김기웅씨와 정현선씨도 학생들의 구조를 돕고 선내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심경철씨는 지난 2001년 10월 유조선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여성 실습생 2명이 위험에 빠지자 자신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구명기구를 던져 실습생들을 구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2007년 최원욱(25세)씨는 한강 동호대교에서 만취한 채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을 발견하고 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어 여성을 끌어냈다. 하지만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하고 만다.
타국에서 의롭게 숨진 이도 있다. 중국 유학생이었던 김진호(19세)군은 학교 동료가 광장 앞 분수대에서 발을 담근 직후 바로 쓰러지자, 이를 구하기 위해 바로 분수대로 따라 들어간 직후 쓰러져 사망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감전사였다.
목숨과 뒤바꾼 뜨거운 사랑... 이름 없는 천사
김인성(64세)씨는 충남 태안군 고남면 바람아래 해수욕장 바다에 입수해 해루질하던 중, 조류에 밀려 떠내려가던 이를 구조하다 사망했다. 이용안(54세)씨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방파제 내측 해상에서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물놀이하던 중, 물에 빠진 이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동반 익수돼 사망했다.
이종현(17세)군은 강원도 한섬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높은 너울성 파도에 휩쓸린 이를 구조하기 위해 튜브를 던지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고, 이후 한섬해변 앞 해상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정요한(24)씨는 2009년 12월 17일에는 말레이시아 밀림의 원주민 마을로 해외 자원봉사 활동을 떠났다가 2010년 1월 2일 바닷물에 빠진 관광객을 구하다 숨졌다. 사고 당일 자원봉사단원들과 함께 해변을 산책하다 예상치 못한 강한 파도에 한국여성 3명이 휩쓸리자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여성들은 구조했으나 정작 본인은 목숨을 잃어 살신성인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신명철씨는 2005년 8월 14일 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 내 용담소 계곡에서 물놀이를 지켜보다 물에 빠진 여자아이 2명을 발견하고 급류에 뛰어들어 어린이를 물가로 밀어내 구했지만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궁열씨는 지난 2008년 6월 1일 야간 호남고속도로에서 일곱 차례의 연쇄 추돌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본인 또한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다른 부상자를 구호하다 후속 사고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
흉기를 든 은행 강도와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도현우씨, 얼음이 깨져 물에 빠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최초의 여성 의사상자 송영희씨, 고속도로에서 사고 차량의 안전을 고려해 구호행위를 하다 다른 차량에 치여 숨진 송재훈씨, 인천 페인트원료 창고 화재 때 추가 피해를 막으려다 사망한 오판석·박창섭씨,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 당시 친구를 구하다 숨진 이준형군의 아름다운 희생도 있다.
대전현충원 관계자는 "의사상자 묘역을 들러 참배하는 국민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남을 위해 희생한 이들의 고귀한 삶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곳"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2006년 9살 아이를 구한 뒤 바다에서 숨진 채종민씨, 2009년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을 돕다가 목숨을 잃은 금나래 어린이집 교사, 2016년 불이난 건물에서 이웃을 대피시킨 뒤 숨진 대학생 안치범씨 등 이웃을 구하고 숨진 희생자들을 호명한 뒤 "보훈은 이웃을 위한 희생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