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체코 프라하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다. 다양한 국적, 나이, 전공의 친구들을 만나며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유럽의 대학생과 우리들의 차이점은 비단 국적만이 아니었다. 마음가짐이 최대 차이점이다. 한국 사회는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생각할 시간이 없는 우리는, 여유가 없다. 6개월 동안 유럽에서 생활하며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나는 날이 갈수록 희귀해지는 한국의 농대생이다. 농학 중에서도 식량 작물을 전공한다. 한국의 농업 대학이 학부 때부터 식물과 동물로 구분되는 반면 유럽의 농업 대학은 농학, 축산학, 그리고 농기계를 배우는 공학까지 배운다. 학사 전공의 범위가 폭 넓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대학 지원 시 학과 선택의 부담이 적다. 관심 분야를 커다란 카테고리로 선택하기에 학부 생활 동안 다양한 전공 지식을 배우며 자신의 관심사를 보다 체계적으로 찾게 된다. 취업하기까지 자신의 적성을 대학 생활을 하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찾는다.
한국의 고등학생은 대학 입학을 위해 고등 3년 내내 공부에만 몰두하는데, 정작 학과 선택 앞에서 발걸음이 막힌다. 19년 인생은 학과를 선택할 만큼 자신과 세상에 대한 탐구 시간이 부족하다. 더욱이 전공이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으니,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선택으로 대학 생활 동안 헤매는 학생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몇 학번이세요?'
한국은 학번을 알면 나이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은 아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기 전 'gap year(갭 이어)'를 갖는다. 갭 이어는 1년간 학업을 쉬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갭 이어 협회가 발표한 2020 설문 조사를 참고하면 응답자 1795명 중 81%는 '인생 경험과 인격 성장을 위해' 갭 이어를 가졌다고 한다. 이는 대학 생활 중이나 졸업 후 취업 전에도 자유롭게 갖는다. '학번'이라는 개념도 없을뿐더러 대학 입학 연도와 나이는 무관하다.
한국에는 갭 이어와 비슷한 개념으로 휴학이 있는데, 이마저 스펙을 쌓기 위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휴학하는 동안 성과를 내야 한다. 졸업과 취업 사이에 공백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졸업을 유예하기도 한다. '쉴 때 뭐했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의 취업 시장에서 나이는 중요하다. 나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으니 한국 학생들은 달려야 한다. '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이 전공을 선택한 고등학생은, 여전히 스스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취업 시장에 달려든다.
도대체 유럽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첫째, 유연한 국경으로 인한 다양성. 유럽연합으로 12개의 국가가 통화를 공유하며 자유롭게 국경을 드나든다. 다양한 문화도 함께 오간다. 다양성이 높은 만큼 다양한 인생관과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 게임의 퀘스트처럼 몇 살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 반면 우리는 10대에는 입시를, 20대에는 취업을, 30대에는 결혼이라는 정형화된 인생 계획이 있다. 이로 인해 더더욱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둘째, '비주류'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목소리. 남들과 다른 가치관을 가졌거나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낸다. 나 역시 유럽에 가서야 '아, 이런 삶이 있구나'를 여러 번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애초에 그러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셋째, 나이와 서열이 무관한 문화. 졸업에 가까워질수록 '취업에 나이는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사원, 혹은 나보다 어린 상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취업에서 나이가 끼치는 영향이 줄어든다면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나이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학생들은 취업을 향해 돌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스스로와 세상을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가질수록 그들의 삶은 행복해질 것이다. 고민하는 시간도 그 자체로 의미 있게 여겨지는 사회가 된다면 10대 행복지수 OECD 최하위, 청년 자살률 OECD 1위와 같은 불명예를 벗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