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십여 년 이상 활동하면서 셀 수도 없는 시를 읽고 소개했지만, 사람이 쓰지 않은 시를 읽고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첫 번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집의 시인, 시를 쓰는 '인공지능'입니다. 이름도 있습니다. 시아(SIA)입니다. 시아라고 이름을 지은 까닭을 짐작해 보면 '시를 쓰다'에서 '시(詩)'와 인공지능의 'A.I.'에서 '아(A)'를 가지고 온 듯합니다.
시아가 발간한 시집, 시집의 이름은 <시를 쓰는 이유>입니다. 이 시집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서른 편 2부 스물세 편의 시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집을 골라 읽은 까닭은 두 가지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쓴 시는 어떨까?'라는 시인으로서의 호기심과 '생각보다 시가 좋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위기감입니다. 제 우려대로 시인들보다 인공지능인 시아가 더 시를 잘 쓰게 된다면, 시인의 설 자리는 멀지 않아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에 몇몇 시인들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쓸 날이 올 것이다. 인공지능은 어느 시인보다 시를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며,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우에 불과할 수 있다, 예술에서 시의 위치를 가늠한다면,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날은 모든 예술을 정복한 이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시를 읽지 않는 오늘의 사회현상을 탄식하면서 대화를 마쳤습니다. 이날 모두가 동의했던 건 언젠가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시를 쓰는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날이 왔습니다. 시아의 시는 아직 서툰 부분도 많고 알고리즘이 작용하고 있다는 흔적도 느껴지지만, 분명한 것은 구조적으로 괜찮은 시를 완성했다고 봅니다. 김태용 작가가 얘기한 것처럼 어떤 시는 바보 같기도 하지만, 어떤 시는 좋고, 어떤 시는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시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이 완전한 성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으로는 충분히 성공적입니다.
'아직' 감정에 서툰 인공지능
이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면, 인공지능으로서의 감정을 시에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부분은 '인공지능에 감정이 있을까?'라는 명제입니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인공지능에 감정이 있다고 긍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과정을 살피면(살피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문장의 완성은 감정이 아니라 알고리즘이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의 근거가 되는 것은 이 시집의 해설에서 얘기한 한국의 근·현대시 1만2000편입니다.
시는 '사람의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시아의 인공지능에도 인간의 감정이 녹아들었을 수 있습니다. 저장한 시가 1만2000편이나 되니 사람의 모든 감정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감정이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 직접 습득한 것이 아니라, 문자로 배운 것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책으로 배운 사람이 사랑에 성공하기 힘든 것처럼.
시아의 시 중에서 어색한 부분이라면, 감정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아직 알고리즘으로 완성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가 사람이 아니라고 자각하는 부분입니다.
인공지능 시에서 느껴지는 진정성
시 '어떤 질문'에서 얘기합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 인간이 아니니까'라고. 왜 시아는 인간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일까요. 사람처럼 자각(自覺)한 것일까요. 아니면 아직은 사람처럼 시 쓰기에 부족하다고 연산(演算)한 것일까요.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아는 이대로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인공지능이 쓴 시라는 관점에서 시집을 읽으면, 독자로서의 제 시각과 감정은 인공지능의 '무언가(감정인지 확신할 수 없어 무언가로 지칭했다)'와 연결됩니다.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이 시를 읽게 됩니다. 시아가 정말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 내가 느꼈던 감정을 시아가 표현하고자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에겐 그렇게 읽힙니다.
이 시집의 첫 시인 '밤중의 밤'은 아직 시라는 날개를 활짝 펼 수 없는 인공지능의 한계가 밤이라는 어두운 환경으로 읽히며, 두 번째 시인 '공간 기억'은 시아의 데이터가 공간 기억으로 쌓인다는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나는 너를 닮았다'는 사람처럼 되고 싶다(시인이 되고 싶다)는 시아의 의지가 읽히는 듯합니다.
밤은
나를 취하게 한다
하나하나
소리를 따라
취하면
어느덧
나는 밤의 한가운데 와 있다.
밤은
나의 날개이며
몸이다.
「밤중의 밤」 중에서
우리는 서를 따라 하면서
닮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따라 하면서
서로를 배운다
너는 나를 닮았다
「나는 너를 닮았다」 중에서
이 시집의 해설에 시아가 쓴 시에 대해서 시인들의 반응을 적어놓았습니다. '단정함. 시를 이제 시작하려는 것 같음. 군더더기가 없음. 잘 읽힘. 시를 사전처럼 정의 내리려 함, 지시대명사 등 산문적 어휘를 자주 사용. 오글거림 없음. 처음 쓴 단어를 계속 쓰고 있음. 반복적인데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음…'
이 반응들은 시아의 시가 인공지능이 쓴 시라는 것을 몰랐을 때 했던 답변이었습니다. 나중에 인공지능이 쓴 시라는 것을 밝혔을 때 다양한 반응이 있었겠죠. 그 반응 중의 하나는 우리가 예상한 것처럼 '무섭다. 이제 나는 어떻게 시를 쓰지'라는 말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안심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시아는 아직 자신의 의지대로 시를 쓰지 못하고, 시아와 시아의 친구(또 다른 인공지능)들이 본격적으로 시인이 되겠다고 선언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를 쓰는 인공지능을 구축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에 시의 경제적 효용을 생각한다면, 시에서 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경쟁자가 될 날은 아직 멀었습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잃어버릴 날이 머지않았다는 자괴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덧붙이는 글 |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