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사용자가 싼값으로 쉽게 쓰고 쉽게 자르기 위해 만든 프레임"
지난 7월 14일 방송작가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최초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MBC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MBC가 '뉴스투데이'의 방송작가 2명을 해고한 것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방송작가를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로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으로 의미가 크다.
MBC 뉴스투데이 방송작가 2명은 2020년 6월 MBC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10여 년 간 뉴스투데이 방송작가로 일했던 이들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언제든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이들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으나 '방송작가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며 각하되었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중노위는 2021년 3월 19일 지노위의 '각하' 판정을 취소하는 '초심 취소' 판정을 내리고 해당 방송작가들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는 방송작가가 노동자임을 인정한 것으로, 노동위원회가 방송작가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한 첫 번째 사례였다. MBC는 중노위의 이 판정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중노위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고, 올해 7월 패소했다.
방송작가들이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웠던 것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뉴스투데이 방송작가뿐만 아니라 방송계에서는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노동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뉴스투데이 방송작가들과의 소송에서 MBC는 '방송작가가 재량껏 창작 업무를 하는 프리랜서'라고 주장했지만, 해고당한 작가들은 업무의 매 단계마다 사측의 관리와 지시를 받았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르면,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노동자성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적 판단기준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지 여부이다(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
행정법원 재판부는 "원고 방송사(MBC)는 참가인들(두 작가)이 뉴스 아이템을 선정함에 있어 매우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또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이 명백한 회사의 사원도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분장과 관련하여 어떤 아이템을 선정하고, 어떠한 내용으로 보고서를 작성할지 등에 관하여 어느 정도 재량을 가진다"고 해 사측 주장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도 성명을 통해 "방송사의 기획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사가 편성한 시간에 송출하는 것 자체가 방송사의 관리와 지시를 받는다는 증거"라며 "프리랜서라는 타이틀은 사용자가 싼값으로 쉽게 쓰고 쉽게 자르기 위해 만든 프레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 마치 가사노동하는 여성들과 비슷해"
"방송작가들이 방송 제작의 중추 역할을 하면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 마치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온갖 차별 속에서 우리는 방송작가라는 자부심, 그리고 이 부조리를 스스로 끝내겠다는 다짐으로 모였습니다. 2017년 출범 이후, 20년 전 전국여성노조 선배들이 그토록 바랐던 노동자로서 방송작가의 권리를 향한 값진 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올해 3월 5일 서울 종로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제37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방송작가유니온 김한별 전 지부장의 수상소감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다수인 직업군의 노동환경은 여성의 노동을 사소화하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종사자의 대다수가 20~30대 여성인 방송작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며, 김한별 전 지부장은 그런 환경을 가사노동에 비유한 것이다.
방송작가의 노동권 찾기는 곧 여성노동자의 권리 찾기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근로자'를 '사업주에게 고용된 자'와 '취업할 의사를 가진 자'로 정의하여, 형식적으로는 사업주에게 직접 고용되어 있지 않으나 실제로는 사업주에게 종속되어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 중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직장 내 성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등을 적용받지 못해 경력단절에 시달리고 있다(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
2018 방송작가 모성보호 실태조사(방송작가유니온(2018), 2018 방송작가 모성보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가 '임신의 선택을 본인 자유의사로 결정할 수 없다'고 대답했고, 그 이유는 '높은 노동강도, 잦은 밤샘 등으로 일과 임신 및 출산을 병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가 66.1%로 나타났다. 또한 기혼자의 경우 3명 중 1명은 유산 또는 유산의 징후를 경험했으며, 출산휴가를 사용한 적이 있는 응답자의 66.7%가 1개월 미만의 기간을 출산휴가로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3개월 이상 출산휴가를 사용했다는 응답자는 3명(9%)에 불과했다.
방송작가들의 차별적이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 뿐만 아니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일터에서의 성차별적 인식에 대한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방송작가들의 노동조합 조직 노력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마산MBC에서 일하는 구성작가, 리포터 등이 전국여성노동조합 마산창원지부에 가입해 마산MBC 분회로 활동했다. 이들은 2001년 마산MBC에 원고료 인상과 고용계약서 작성 등을 내용으로 교섭을 요구했으나, 당시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이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했다(노컷뉴스(2019.8.5.), 방송작가 숨통 조이는 '유노무임' 악습…"이젠 노(NO)!", (검색일 2022.8.14.) https://www.nocutnews.co.kr/news/5193295). 2001년 전국여성노동조합에 가입된 구성작가들의 단체교섭요구에 지역 MBC와 지역 민영 방송사들은 하나같이 방송작가에 대해서는 노조법 상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
그 후 2017년 11월 11일 방송작가의 노동권 보장과 처우개선을 목표로 방송작가유니온이 출범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출범선언문에서 "방송사상 최초로 마산MBC 작가 선배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했던 때로부터 무려 16년 만이다. 16년 전에 비해, 프리랜서라는 미명 아래 불공정한 노동환경은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며 "개별화, 파편화된 방송작가들의 힘을 모아 우리의 절절한 목소리를 노동조합이라는 우산 아래 한 목소리로 외쳐보려 한다"고 출범의 취지를 밝혔다.
출범 후 방송작가유니온은 방송작가들의 고용안정과 노동권 보장, 임금 현실화 등 여러 문제를 공론화하며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MBC 뉴스투데이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 인정 판결 외에도 2018년 대구 MBC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해 방송작가들의 원고료(임금)를 인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2021년 고용노동부가 지상파 3사의 보도 및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중 363명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그 중 152명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방송작가유니온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 8월 8일 아침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서는 'MBC 뉴스투데이 해고 방송작가 복직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2020년 6월 부당해고 당한 이후 2년여 만에 일터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MBC가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항소를 포기함으로 방송작가들의 승소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방송작가유니온은 MBC의 공식적인 사과와 두 작가의 원직(방송작가) 복직, 정규직 전환, 방송작가유니온과의 단체교섭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복직 첫날 MBC는 복직하는 두 작가에게 정규직이 아닌 '방송지원직'으로 채용할 방침을 통보했다. '방송지원직'은 MBC가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보도·시사교양 작가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받고 올해 신설한 직군으로, 복직하는 방송작가들을 방송지원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법원의 원직 복직 판결 취지를 거스르는 차별적인 처우다.
최근 방송작가를 비롯해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판단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MBC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거스르는 꼼수를 그만두고 방송작가들의 제대로 된 복직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방송작가들의 노동권 보장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 법정 싸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여성의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방송작가유니온 홈페이지 http://www.writersunion.kr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
방송작가유니온(2018), 2018 방송작가 모성보호 실태조사 결과
노컷뉴스(2019.8.5.), 방송작가 숨통 조이는 '유노무임' 악습…"이젠 노(NO)!"(검색일 2022.8.14.)
미디어오늘(2022.7.20)'꼼꼼한 분석'으로 방송작가 노동자 인정한 사상 첫 판결문(검색일 2022.8.14)
경향신문(2022.7.14), "방송작가, 프리랜서 아닌 노동자" 법원 첫 판결(검색일 2022.8.14)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저자는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