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입추와 처서가 지났다. 낮 햇볕은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에어컨 바람이 차지하던 자동차 안을 가을바람으로 채운다. 치악산 둘레길 한가터 잣나무 숲길 주차장에서 안내판을 보고 출발한다. 이길은 치악산 둘레길 11코스인 한가터 길의 일부 구간으로 왕복 2.6km 원점회귀 코스다.
도심 가까운 곳이라 찾는 이들이 많다. 피톤치드를 느끼며 산림욕을 할 수 있으니 인적이 끊이질 않는다. 살짝 경사가 있는 아스팔트 길 시작부터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3코스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녹음 짙은 숲길이 반겨준다. 푸른빛에 눈이 반짝인다.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등줄기 땀을 식혀준다.
찌르르 풀벌레를 시작으로 짹짹짹 산새, 살랑살랑 산바람, 바람에 춤추는 나무가 반겨준다. 좁은 오솔길을 생각했는데 흙길 폭이 성인 2~3명은 거뜬히 지나가도 되겠다. 장마철이 지나서인지 길 중간중간에 쓰러진 나무들이 많다. 길을 내면서 야자수그물까지 설치했으나 속수무책이다.
나무를 보면서 '주객전도'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에게 걷기 좋은 길을 만들기 위해 잘 살고 있는 나무를 이렇게 죽게 했으니. 어쩌면 도로 위에선 사람보다 자동차가 먼저고, 자연 속에서는 사람이 우선시 되는 현실이라고 할까. 수년간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뎌낸 뿌리 깊은 나무를 지켜주는게 도리라는 생각을 한다. 모진 풍파를 견딘 나무는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천천히 걷는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라는 자연의 배려인지 길 가운데 성난 얼굴 모양의 바위가 나를 노려본다. 덜 익은 도토리, 푸른 밤송이가 흙길을 장식한다. 어떻든지 이렇게 시간은 흐른다.
안오릿골 정상을 지나 국형사로 향한다. 안오릿골이라는 지명은 치악산 안쪽에 있는 골짜기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울창한 숲과 데크로 꾸며진 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산새소리와 계곡소리가 어우러져 숲속 가득히 울려 퍼진다.
데크 아래쪽 계곡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낙원이 따로 없다. 치악산 둘레길 전체 코스의 종점이자 시점인 국형사의 이끼 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치악산의 품격을 말해준다. 한가터 잣나무숲길 5번과 6번 방향으로 돌아온다.
쭉쭉 뻗은 매끄러운 잣나무 군락지가 상처난 마음을 위로해준다. 붉은 흙길과 푸른 잣나무가 신호등 같다. 푸른 잣나무의 향이 힘을 준다. 반대편 길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마음의 짐을 내려 놓는다. 적당한 위치에 마련된 휴식처는 여유롭게 산림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르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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