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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럽고 북적거리는 도심를 벗어나 새로운 '고향'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가운데 55.8%가 '서울을 떠나 살고 싶다'고 답했습니다(잡코리아). 귀농귀촌 인구는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관련 통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30대 이하 청년 귀농귀촌 가구는 전년 대비 5.0%, 60대 이상 귀농귀촌 가구 수는 16.4%나 늘었습니다. 통계를 낸 농림축산식품부는 "30대 이하 청년농 증가는 청년 대상 농어촌 정착장려 정책의 성과로 보이며, 60대 이상의 경우 도시 거주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풀이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새로운 일과 쉼의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새로운 일과 쉼의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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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 '고향'을 선택하는 사람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복잡하고 오염된 도시를 벗어나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삶과 쉼을 누리려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질 것으로 내다봅니다. 최근에는 특정 지역을 수시로 방문하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관계인구'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농어촌지역으로 완전히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살며 관심과 애정을 가진 지역을 '선택적 고향'으로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1년 1월, 20대 이상 남녀 1628명을 대상으로 농산어촌 관계인구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농산어촌과 관계를 맺을 의향에 대해 도시민의 61.4%가 '관계를 형성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41.0%는 정기적으로 농산어촌을 방문할 의사가 있고, 9.7%는 일주일에 2일 이상 농산어촌에 거주, 10.8%는 완전히 농산어촌으로 이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조사에선 코로나19 확산 이후 도시민들의 귀농귀촌 수요와 농촌관광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아래 그림 참조).   
 
 그림 출처 : 성주인 외(2022), 농산어촌 관계인구 현황과 의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그림 출처 : 성주인 외(2022), 농산어촌 관계인구 현황과 의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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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일과 쉼, 여행의 방식

포스트코로나 시대, 변화하는 일과 쉼의 방식 또한 '관계인구' 증가에 한몫할 것으로 보입니다. 팬데믹 시기 전 세대가 다양한 온라인 환경을 경험했고, 원격근무와 온라인 교육‧회의의 효용을 톡톡히 실감했습니다.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탁 트인 자연에서 일하며 휴식을 취하고픈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일과 여가의 경계를 뚜렷이 구분해 삶의 균형을 찾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대신 출장 겸 휴가를 가는 '블레저'(Business+Leisure), 일과 여가를 동시에 즐기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이 각광 받고 있습니다.

워케이션은 팬데믹 초기 패쇄령이 내려진 유럽에서 원격근로가 가능한 근로자들이 비좁은 아파트 대신 여행지의 숙박업소를 이용하면서 유행하게 됐는데, 최근 국내에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근무 형태로 바라보고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매주 직원 10명을 추첨해 강원도 춘천이나 일본 도쿄에서 최대 4박5일간 워케이션을 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라인플러스는 시차 4시간 이내 해외에서 최대 90일간의 워케이션이 허용됩니다. 당근마켓은 팀원 3명 이상이 제주, 강원 등지에서 함께 일하면 숙박과 교통, 식비를 제공합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밖에 여러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을 사례로 들며 "IT플랫폼기업과 신생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워케이션 제도 도입이 활발해지는 추세"라고 전했습니다. 

'관계인구' 확보 나선 지방정부들

인구감소로 골치를 앓고 있는 지방정부들은 '관계인구' 확보에 나섰습니다. 경상북도는 지방소멸 위기에 맞설 생존전략으로 '듀얼라이프'를 꺼내들었습니다. '듀얼라이프'는 특정 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중장기적, 정기적, 반복적으로 순환 거주하는 '두 지역 살기'를 뜻합니다. 주중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엔 농어촌에서 휴식을 취하는 식의 '5도2촌'은 물론 일 년, 한 달, 한 주 살아보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을 체험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구축한다는 것이 경북도의 전략입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고향사랑기부금제도'는 본격적인 관계인구 시대를 열 기폭제로 보입니다. 고향사랑기부금제도는 국내 모든 지자체가 다른 지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최대 500만 원의 기부금을 모금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지방정부는 기부자들에게는 기부액의 최대 15%에 해당하는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고, 모인 기부금은 각 지방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입니다.

기부자의 입장에선 지역의 문제해결을 위한 '가치투자'를 통해 해당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셈입니다. 답례품으로 축제나 역사·문화, 일거리 등의 체험권으로 제공한다면, 기부자가 지역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지속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국내 지방정부들의 고향사랑기부금제도 추진 현황을 연구해온 희망제작소 연구사업본부의 박지호 연구원은 <희망이슈 : 고향사랑기부제 시행에 따른 행정의 대응방안 제안>(희망이슈 보러가기) 보고서에서 "어떤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할지 정하거나 지역을 홍보하는 것보다 지역의 미래(비전)와 연결 가능한 지리적 자원과 역사·문화 자원, 무엇보다 인적자원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특별하고 값비싼 답례품이 아니라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강점과 매력이 지속적이고 유의미한 관계인구 확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릉의 워케이션 서비스 ‘일로오션’ 참가자들, 일로오션 제공
 강릉의 워케이션 서비스 ‘일로오션’ 참가자들, 일로오션 제공
ⓒ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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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고향을 만드는 청년 소셜디자이너

일찌감치 지역살이에 도전한 청년들(지역에 풍덩 빠져 살아가는 청년 로컬다이버 만나보기)을 비롯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소셜디자이너들(소셜디자이너 자세히 알아보기)은 도시와 지역을 잇는 중요한 인적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도시민들의 취향을 공략할 식·음료와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소셜디자이너들은 지역에 새롭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지역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제안해 더 살기 좋은 곳, 가보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강릉 청년마을만들기 사업 '강릉살자!'를 추진 중인 최지백 '더웨이브컴퍼니' 대표는 관계인구 형성의 핵심이 '커뮤니티'에 있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역사문화 유적지는 한두 번 보면 다른 곳이 또 궁금해질 수 있지만, 그곳에 만날 사람이 있으면 자꾸만 가고 싶고 이웃에 살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강릉살자!'에 참여한 한 청년은 이런 후기를 남겼습니다. "혼자 조용히 글 쓰면서 지내야지, 결심한 강릉행이었는데 어느새 내 주변에 우당탕탕 사람들로 가득하다… 강릉이 연고지가 된 기분이다."

답답한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과 관계인구를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지역의 이해가 만나, 가고 싶고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고향'을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도시민이 '고향사랑기부금제도'를 통해 자신이 살고 싶은 고향의 모습을 지역민과 함께 만들어갈 여지도 생겼습니다. 오늘, 당신이 꿈꾸는 고향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고향사랑기부금제#관계인구#워케이션#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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