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에 9일 유성오일장이 섰다. 날씨는 쾌청하다. 명절을 하루 앞둔 재래시장 추석 대목은 냄새부터 다르다. 차가 붐비는 사거리 쪽 떡집에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직접 송편을 만들고 쪄서 파는 곳이다. 떡집과 기름집, 방앗간이 있는 곳도 때맞춰 붐빈다. 햇살이 따끈하다.
마트에는 채소가 랩이나 비닐에 담겨 있지만, 재래시장에서는 만져보고 살 수 있는 맨얼굴의 것들이다. 만져보는 채소를 장바구니에 담는 게 좋다. 양념거리로 붉은 고추와 대파, 무를 사러 왔다.
그동안 비가 자주 내려 채솟값은 재래 장에서조차 만만찮다. 장이 서는 골목을 돌다 보면 어느 땐 왔던 길을 또 오기도 한다. 한 바퀴 돌 때와 달리 두 번째는 보이지 않았던 괜찮은 물건들이 눈에 띄고 값도 만족스럽다.
점심때가 되자 시장 안쪽에 있는 국수와 보리밥을 파는 곳엔 자리가 꽉 찼다. 안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밖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을 지날 때 모서리에 앉은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국수 가락을 입에 넣는 걸 보았다. 한눈에 봐도 할머니는 부실한 치아 때문에 국수를 시킨 것 같았다. 나는 왠지 머리가 온통 백발이었던 엄마 생각에 뒤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걸었다.
사람들 손에는 거의 물건을 산 봉지들이 들렸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장사를 하기도 했다. 어떤 젊은 아빠는 자기 아이를 포터에 태우고 장을 보러왔다. 장에는 찬송가를 틀어놓고 배를 밀며 구걸하는 노인이 늘 있다. 돈을 넣는 바구니엔 동전과 1000원 지폐 두어 장이 들어있다.
노인이 배를 조금 밀다가 멈추더니 박카스 뚜껑을 열려고 했다. 엎드린 채로 한 손이 계속 뚜껑 옆으로 헛나갔다. 그걸 본 상인 한 분이 "이리 줘바요. 따드릴게"한다. 그 앞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되돌아와 지폐 한 장을 바구니에 넣었다. 한 개에 5000원 하는 무는 크고 실했다.
국수가게의 할머니
국거리에 한 번 넣기엔 너무 컸다. 게다가 비쌌다. 다시 골목을 돌아 아주 적당한 무를 발견했다. 가격도 만족스러웠다. 만들어 파는 반찬가게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시금치 한 근은 6000원, 시금치 나물은 한 팩에 8000원이다. 같은 양으로 마트에서는 1만 원이다. 어떤 손님이 '이번엔 시금치 먹지 말지 뭐'하며 지나갔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또 다른 곳은 녹두 부침개를 파는 곳이다. 부침개는 한 개 6000원, 포장 반죽도 6000원이다. 반죽을 집에서 부치면 두 개가 나온다. 나도 이곳에서 종종 녹두 부침개 반죽을 샀다. 엄마가 좋아했던 녹두 부침개, 기름 냄새도 뒤따라오는 것 같더니 국수골목에서 사라졌다.
국수가게에서 아까 국수가락을 빨아올리던 할머니를 정면으로 보게 됐다. 흘러내린 흰머리를 뒤로 넘기던 할머니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며 1000원짜리 세 장을 손에 쥐고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여기 앉았던 사람이 할머니 거 계산하고 갔어유."
할머니는 그 말을 잘 못 알아들었는지 엉거주춤 일어나며 되물었다.
"뭐라구? 내 국수 값을 누가 낸 겨?"
주인은 바빠서 말할 짬이 안 나는지 큰 소리로 말했다.
"암튼 할머니는 계산됐으니까 그냥 가시믄 돼유."
주인이 재차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먹은 국수를 나도 모르는 사람이 왜 계산했을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겼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등이 굽은 할머니는 오늘 같이 맑은 날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에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추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