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평범한 일상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팬데믹이라는 크나큰 충격의 시간을 보내왔다. 팬데믹 이후 굳게 닫혔던 저마다의 국경선이 열리고 지구촌은 값진 왕래의 자유를 다시 얻어냈다.
미국 국경선이 열리면서 가벼운 미국 여행을 생각해 왔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가 미국의 시애틀이다. 여행지를 시애틀로 계획하고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한국에서 귀국한 큰아들과 아내가 함께 동행을 했다. 집을 나선 지 이십여 분, 캐나다와 미국의 경계선인 보더(Border)에 도착했다. 휴가가 끝나고 평일이라는 환경 때문인지 미국으로 통하는 입국심사대는 기다림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미국 국경선을 통과했다. 캐나다와 미국이 비슷한 주변 환경의 탓 때문일까, 미국이 아닌 캐나다 새로운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다. 시애틀 도심 방향으로 한 시간 반 가량 차로 이동하다 보면 아웃렛을 만날 수 있다. 팬데믹 이전에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인근 지역에 사는 캐나다인들이 많이 애용하던 아웃렛이다.
아웃렛 맞은편에는 호텔이 하나 있다. 쇼핑을 뒤로 미루고 우선 점심 식사 해결을 위해 호텔로 향했다. 호텔 1층에는 대형 카지노와 뷔페식당이 있다. 호텔을 들어서는 순간 팬더믹 이후 상황이라 뷔페식당이 현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관심사였다.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경영난으로 뷔페식당이 문을 닫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호텔 직원이 귀띔을 해준다.
호텔에서 계획했던 점심식사가 착오가 생겨 행선지를 변경해야 했다.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시애틀 다운타운을 선택했다. 그곳에 가면 바다 요리가 유명한 맛집과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다.
아들은 잠시 자리를 떴다. 이전 출장지에서 쓰고 남은 미국 달러가 있어 게임 한 번 하고 돌아오겠다고 한다. 자리를 뜬 지 채 오분도 안되어 다시 돌아왔다. 본전을 제외한 오십 불을 손에 쥐고 휴게실로 돌아왔다.
차량의 흐름을 방해받지 않고 여유롭게 다운타운에 도착했다. 평일임에도 관광객으로 거리는 붐볐다. 우선 주차할만한 곳이 여유롭지 않았다. 도로이면 주차장에는 주차 여유 공간이 전혀 없었다. 부득이 주변 사설 주차장으로 주차를 선택했다.
차를 주차하고 주차요금을 정산 과정에서 순간 눈을 의심했다. 1시간에 15불이라는 경험해 보지 못한 터무니없는 주차요금을 요구했다. 주차를 포기하고 다시 도로로 나왔다. 도로이면 주차장에 차량 한 대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주차요금은 시간당 2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전의 주차요금에 비하면 상식선에서 이해 가능한 경이로운 가격이다.
시애틀 여행에 빼먹을 수 없는 대표적인 맛집인 시푸드 크랩팟(Crab Pot)에 걸어서 도착했다. 항상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만 먹을 수 있는 유명 맛집인데 오늘은 기다림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다의 향연(Sea Feast)이라는 메뉴가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다. 1인분에 57불, 서민이 먹기에는 사실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하다. 가격을 떠나 모처럼 여행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아들은 한턱을 쏟겠다고 인원수에 맞추어 3인분을 주문했다. 일단 비주얼부터가 먹음직스럽다. 커다란 그릇에 각종 해산물과 옥수수, 소시지, 감자 등이 가득 담긴 그릇을 테이블에 쏟아 낸다.
오래 전에 시애틀을 방문했을 때도 이곳에서 같은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먹던 맛은 사실 기억해 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줄을 섰다가 먹을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 맞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먹는 음식의 맛이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다만, 다른 식당과는 달리 먹는 방식이 독특한 이유에서 손님의 호기심을 집중시켰는지도 모른다.
식사를 끝내고 같은 건물 내에 있는 워터프런트(Seattle Waterfront)로 자리를 옮겼다. 바닷바람이 초가을 내음을 물씬 풍겨온다. 그곳에 바다는 넓은 가슴과 편안한 호흡을 내어 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느낌 때문일까, 사람들은 늘 바닷가를 찾고 동경해 왔는지 모른다. 아마도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쉬어가는 방법을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워가는지도 모른다.
워터 프론트 항구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번쯤 눈 여겨 볼만한 112년 전통을 자랑하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이 있다. 장인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있고 생선가게, 수제치즈, 꽃 가게 등 크고 작은 200여 개의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특히 꽃을 파는 가게가 비교적 눈에 많이 띄었다. 피시 마켓(Fish Market) 생선가게에서는 생선을 이용한 퍼포먼스로 관광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마켓(Market) 바로 옆 건물과 건물 벽 사이에는 껌 벽이 형성되어 있다. 껌 벽은 1990년대 초부터 인근 market Theater 매표구에서 줄 서서 기다리던 관람객들이 씹던 껌을 벽에 붙이기 시작하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동전을 벽에 붙이기 위해 껌을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동전을 제외한 껌만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껌 벽 입구를 들어서면 껌 냄새는 물론 벽에 붙어 있는 껌의 색깔도 다양하다. 처음에는 건물 주인이 벽에 붙은 껌을 제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강행했지만, 관광객들이 계속 껌을 붙이는 행동에 결국 감당해 낼 수가 없어 결국 포기상태로 방치했다고 한다. 골칫거리로 대두되었던 껌 벽은 지금에 와서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물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Market 건너편 쪽으로 걷다 보면 오래된 건물에 스타벅스가 있다. 전 세계 커피 지도를 구축한 최초의 스타벅스 1호 점이다. 이미 50개국에 28000여 개의 매장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가끔은 여러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셔보지만 1호점은 다른 매장의 커피 맛과는 차별화된 또 다른 맛일지도 모른다는 특별한 의미가 먼저 생각 속에 다가왔다. 스타벅스 마니아들의 성지와도 같은 이곳, 많은 사람들이 커피맛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짧은 하루의 여정, 한정된 짧은 시간 내에 강행군이었다. 캐나다 국경선에 도착할 때쯤 붉은 노을이 감성을 적셔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