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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진화하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 동물과 달리 지성을 갖춘 인류이기에 '학문'이라는 영역이 생기고, '일'은 점점 더 정교하게 분화하고 발전해 '기술'로 진화했다. 이와 함께 남들보다 지식이 더 많거나 특별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새로운 기계를 만들거나 그 기계를 잘 다루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두드러지는 사회가 됐다. 이들은 집단에서 권력을 잡거나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됐다.  

이 발전 과정에서 인류는 '전문가'로 칭하는 집단을 구분하게 됐다. 어떤 사안이 문제가 되는 경우, 그에 대해 많은 지식과 능력을 지닌 사람을 '전문가'로 인정해 그들의 의견에 따라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많은 경우, 특히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이런 '전문가'를 초청해 의견을 듣고, 정책을 제안하도록 하고,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자문'을 받는 일이 아주 많다. 우리나라에서 전문가는 흔히 'professional'로 지칭한다.
 
 전문가.
전문가. ⓒ pexels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그 외에 'specialist' 'expert' 등으로 조금씩 의미에 차이를 두고 사용하며, 'master'나 'pundit'이라는 단어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professor'라는 영어 단어와 'professional'이라는 단어가 지닌 상관 관계 때문인지 모르지만, 우리 정부가 초청하는 전문가 대부분은 대학 교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들을 자문 대상으로 선정하는 것이 절차나 국민 정서상 문제가 될 일은 없다.

교수를 뜻하는 'professor'는, 'pro'와 'fess'로 구성한 어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이 지닌 지식을 당당하게 나서서(pro) 주장(fess)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연구에 더해 도덕적 상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즉, 자기 지위나 명예를 걸고 의견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정부에서 정한 방향에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전문가'를 경험하거나 들은 바는 별로 없다. 이는 정부에서 그들의 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학문적 배경을 지닌 전문가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해당 정책이 지닌 작은 문제점이라도 조언할 수 있어야 진정한 professor인 것이다.

특별한 의견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자문위원이라는 직위를 유지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일부 교수들로 인해 이들에게 어떤 특별한 의견을 기대하는 것이 참 어려운 현실이다. 몇몇 교수들은 수없이 많은 부처의 자문위원이라는 사실을 훈장처럼 자랑하곤 한다.

이들이 안건을 미리 검토하는 시간을 할애할 가능성은 당초에 없기 때문에, 참석하는 회의 시간만을 계산해도 이들이 본연의 연구와 교육에 사용하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걱정이 앞선다. 그들의 직업은 호칭 그대로 '교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이 속한 학교 입장에서는 정부와 가까운 인연이 있는 교수가 여러 가지로 학교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학생들이다. 즉, 국민들 전체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이 기준을 교수들이 아니라 직업 전문가에게 적용하면 더 심각한 상황이 된다.

공공기관이나 정부 부처에서는, 특정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형평성과 공정성이란 논리로 이들 직업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선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한 필자를 포함한 많은 직업 전문가들은 자신의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 소신을 펼칠 수 없기도 하다.

사실, 규모와 관계없이 한 회사의 경영진이 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니라 경영인이 될 수밖에 없다. 작은 규모라도, 회사를 경영해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은 것이기에 그들의 일탈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더 이상은 '전문가'라는 분류에서 스스로를 제외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전문가로서 내려야 할 결정이나 의견을 자기도 모르게 경영인으로서 내리곤 한다. 전문가로서의 양심이나 지식보다는 경영인으로서 자기 회사의 이익과 자신의 안위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이들 고위 경영직 전문가의 발언이나 주장, 동의 여부가 그들이 그때까지 배우고 익힌 학문적 팩트와 결을 같이하거나 부합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갖춰야 할 자세

무엇보다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서는 자신의 정책 방향에 적합한 전문가를 초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한 문제, 여론에서 비껴간 문제, 일반인이 인식하지 못한 문제를 찾아 장기적으로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보완 의견, 더 나아가 반대 의견을 제시할 전문가들을 초빙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이에 더해 필자는 어떤 종류의 심의나 심사든, 심지어 자문회의까지도 참가한 '전문가'들의 발언 내용을 모두 기록하여 투명하게 공개하고, 경우에 따라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법률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건축 관련 심사나 심의에서, 논리는 당연히 없고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의견으로 민원인을 괴롭게 만드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경험했기에 그들에게 당시 주장이나 의견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면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에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유념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정면씨는 (주)사람.터 건축 대표입니다.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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