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인 남부 헤르손 주와 자포리자 주, 동부 친러 분리주의 미승인국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시크인민공화국(LPR)에서 러시아와의 병합 찬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군이 주민들의 집에 직접 방문해 투표를 종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투표의 내용은 지역별로 상이하다. 미승인국인 DPR과 LPR의 주민들은 "연방 주체로서 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에 가입하는 것을 지지하는가"라는 내용의 투표용지를 받는다. 헤르손 주와 자포리자 주의 주민들은 "우크라이나로부터 이 지역의 분리, 독립국가 창설, 그리고 이후 러시아에 연방 주체로 가입하는 것에 찬성하는가"라는 내용의 투표용지를 받는다. 전자의 경우 러시아어로만, 후자의 경우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함께 써져 있다.
영국 국영방송사 BBC의 23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자포리자 주 에네르호다르 시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집을 찾아온 무장한 러시아 군인에게 구두로 주민들이 찬반 의사를 밝히면 군인이 이를 투표용지에 받아 적고 보관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포리자 주 멜리토폴시의 거주하는 한 여성은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에 러시아 군인 두 명, '지역 협력자' 두 명이 찾아와 투표용지를 전달했고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러시아와의 병합에 반대하는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군인들이 병합 반대에 투표해도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어머니는 투표로 인해 박해를 받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BBC에 전했다.
반면 DPR과 LPR 측은 투표가 투명하고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외국인 참관인을 투표장에 초청했다고 주장했다.
옐레나 크라브첸코 LPR 중앙선관위원장은 외국인 참관인의 투표장 참관 신청서를 받아 고려 중이라고 밝혔지만 어느 국가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마리나 자카로바 헤르손 주 선거위원회위원장 역시 많은 국가에 참관 초청을 보냈다고만 밝혔다.
러시아 중앙선관위는 주민투표를 감독하기 위해 자체 참관인을 배치했고 러시아 의회는 의회에 속한 모든 정당이 주민투표 모니터링에 참여할 것이라 발표했다.
러시아 국영 언론 '병합 찬성 비율 압도적' 여론조사 발표
러시아의 이러한 주민투표에 유럽 지역의 선거를 감시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OSCE는 20일 성명을 발표해 "우크라이나의 점령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하는 군대에 의해 혹은 지원을 받아 계획된 모든 소위 '투표'는 국제 표준 및 국제 규정에 따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법적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또한 23일 "세계는 가짜 주민투표에 대해 정당하게 반응할 것이다"라며 "러시아는 명백한 비난을 받을 것"이라 비판했다.
한편 러시아 국영 통신사인 타스(TASS)에 따르면 23일부터 26일까지 화요일 동안 방문 투표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투표 기간의 마지막 날인 27일에만 투표소에서 직접 투표가 진행될 것이라 밝혔다.
23일 투표가 진행되는 네 개 지역의 주민들 4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도 공개했다. 전러시아 여론조사 센터가 실시한 해당 여론조사에 따르면 투표 참여 의사의 경우 DPR과 LPR은 87%의 주민이, 자포리자 주와 헤르손 주는 각각 80%와 69%의 주민이 투표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와의 합병에 찬성하는 비율은 DPR과 LPR은 97%, 자포리자 주와 헤르손 주는 각각 87%와 89%이며 반대하는 비율은 자포리자 주와 헤르손 주에만 2%에 불과했다고 타스는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