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여성이 일상 곳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아동이나 여성을 향해 성기를 노출하고 음란 행위를 하는 성범죄 때문이다. 지금껏 이 범죄는 '바바리맨'이라 불리며 웃음거리로 소비되기도했지만,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오마이뉴스>는 이 문제를 세 차례에 걸쳐 다뤄본다. [편집자말] |
"우리나라 법이 성범죄에 매우 관대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달았어요."
성기 노출 범죄 피해자 이아무개(20·여)씨가 <오마이뉴스>에 한 말이다. 이씨는 두 달 전 귀갓길에 성기 노출 범죄를 당했다. 피의자는 이씨 외 미성년자 2명에게도 유사한 범행을 저질렀으나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정말 이씨의 말처럼 성기 노출 범죄자에게 "관대한 처벌"일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처벌이 내려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판결문 분석을 진행했다. 올해 5월 22일부터 7월 22일까지 성기 노출 음란행위를 하여 공연음란죄로 확정판결이 난 판결문 69개를 분석했다(분석 시작 시점인 9월 20일에 열람 가능했던 최신 판결문이 7월 22일 자였던 점을 고려해 2달의 기간을 설정).
분석 결과, 피고인이 '공연음란죄'로만 처벌받은 사건은 47건이었다. 공연음란의 피해자가 18세 미만의 아동이라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2건 있었다.
'공연음란죄로만 처벌받은 경우 대부분 벌금형 혹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47건 가운데 23건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19건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5건만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각각 징역 3월, 4월, 8월, 10월, 1년 형으로 대체로 형량이 낮았다.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 2건도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피고인은 아동인 피해자 D(여, 8세)를 발견하고 피해자를 향해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꺼내 만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틀 뒤, 피해자 F(여, 8세)에게도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3주 뒤쯤에는 피해자 H(여, 9세)에게 다가가 윗옷을 펄럭거리며 바지를 내려 성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피고인은 아동인 피해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행위를 하였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고단OOOO
이 사건 피고인에게는 징역 6월의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중학교 교문을 바라보며 학생들이 하교하는 것을 보고 바지와 팬티를 내려 성기를 노출한 상태에서 자위행위를 하던 중,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피해자 E(가명, 여, 14세)와 F(가명, 여, 14세)이 피고인이 데리고 온 흰색 강아지가 귀여워 가까이 다가오자, 성기를 노출한 채 자위하고 있는 모습을 피해자들에게 보여주었다. - 울산지방법원 2021고단△△△△
이 사건 피고인에게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두 피고인에게 각각의 재판부는 '초범'이고 사건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를 근거로 이같은 형을 선고했다.
한편, 공연음란 외 다른 죄도 더해진 사건은 20건이었다. 공연음란이 강제추행으로 이어졌거나,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 앞까지 쫓아가 음란행위를 해 주거침입죄도 추가된 사건이었다.
"정신질환 등을 이유로 감경해 법적 형을 낮추는 것을 지양해야"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이처럼 낮은 형량에 대해 "현재로서 성기 노출 음란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공연음란죄 외 존재하지 않는데, 공연음란죄 자체에 형의 한계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이 행위를 강제추행으로 기소하여 다퉜던 사례는 있으나, 결국 인정되지 않았다"라며 "실제 신체 접촉이 있거나 정액이 여성의 신체에 닿는 등의 물리적인 접촉이 없다면 강제추행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란 활동가는 "법이 부족하거나 형량이 낮은 문제보다, 정해진 법이라도 확실히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그대로 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가령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등을 이유로 감경해 법적 형을 낮추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해자를 온정적으로 판단하는 법조계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라며 "성기 노출 행위는 정신질환자나 소수의 특수한 범죄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나, 범죄통계를 보면 실제 그렇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2021년 경찰 범죄통계 결과, 국내 성 풍속 범죄 검거 건수는 1만3988건이었고 이 중 공연음란은 2034건이다. 성 풍속 범죄는 공연음란 외에도 간통, 음란물 유포 등 14개의 죄를 포함한다. 반면 같은 기간 '정신 장애 범죄자'가 저지른 성 풍속 범죄 건수는 330건에 그쳤다. 해당 통계는 성 풍속 범죄의 세부 종류를 나눠놓지 않아, 이 중 공연음란 범죄가 몇 건을 차지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대로 설정해도 '정신 장애'를 가진 범행이 330건이라는 것이다.
최란 활동가는 "성기 노출 음란 행위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성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라며 "수사기관과 법원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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