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
퇴사 후, 글쓰기와 함께 빼먹지 않는 한 가지는 바로 운동이다. 중요한 이 두 가지는 매일 오전 시간에 완료한다. 오전에 다른 일정이 생기면, 그날의 글쓰기도 운동도 하지 못한다.
오전의 일정은 대부분 이렇다.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오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글을 쓴다. 이후 9시까지 가족들 아침식사를 챙기고, 아이들 등교 후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이후 빨래와 설거지 등 밀린 집안일을 하고, 11시쯤 운동하러 간다. 간혹 집안일을 다 하지 못하거나, 설거지를 다 마치지 못했어도 11시에는 꼭 현관문을 나서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운동을 유지할 수 있더라.
이 루틴을 갖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엄마의 시간은 대부분 가족을 위해 쓰이고, 워킹맘의 시간은 일하는 데 쓰인다. 글쓰기와 운동은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운동을 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지만, 일을 하다보면 '지금 당장 돈이 아닌'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긴 쉽지 않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이었다.
운동할 때는 '운동에만' 집중
글쓰기의 루틴은 모두 깨어나지 않는 새벽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떡하니 새벽에 자리 잡고 있으니 운동하는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운동시간 루틴을 잡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오늘은 바쁘니까 저녁에 하자거나 오후에 짬 내서 하겠다고 결심하지만,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다 보면 어느 새 밤이었다.
오전, 오후, 저녁... 시간대를 옮겨 다니며 운동을 해 본 결과 오전 시간대에 운동을 해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오전이 가장 적당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고, 퇴사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대였다.
가끔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풀타임 워킹맘으로 일할 때는 점심시간도 아껴가며 운동을 해야 했고, 퇴근 후에는 운동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시간을 좀 더 촘촘히 나누어 썼던 것 같은데, '지금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리는 '이 호사스러운 운동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운동할 때는 이어폰을 끼고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오디오북을 들었다. 한 세트 끝나고 잠시 몇 초 쉬는 시간이 아까웠고,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다. 헬스장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나왔지만, 나의 이어폰에서는 강사나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여러 개의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몇 권의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이 있었다. 강의와 오디오북을 들었더니 운동에 집중할 수 없었다. 몸의 감각을 익혀야 하는데, 감각보다는 계속 뇌를 쓰니 몸에 집중을 못해 자세가 흐트러졌다.
웨이트는 자세가 중요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운동이다. 운동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집중하고 감각을 익히는 시간인데,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후 운동하는 시간에는 되도록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사실 고민이 많은 날에는 운동을 쉬고 싶기도 한다. 매출이 떨어지거나,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자괴감과 함께 불안한 생각들이 나를 지배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눌러버릴 것 같은 상상에 휩싸이곤 한다.
그런 날은 만사가 귀찮다. 당연히 운동 갈 마음도 줄어든다. 심리적인 땅굴을 파느라 이미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운동을 쉬어보니 그 시간 동안 더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엔 고민이 많은 날에도 운동을 하러 간다.
'오늘은 딱 30분만 하는 거야.'
신기하게도 30분 운동은 대체로 1시간으로 연장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몸만큼이나 내 생각도 변하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그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마음 쓰지 말자'라거나 '이번 일은 포기하지 말자'라고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무언가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통해 내 안에 있던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이었다.
포기하는 게 아니라 쉬는 것
누군가 어떻게 매일 그렇게 혼자 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오랫동안 운동을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다고. 꾸준히 운동하려면 운동친구를 만들라는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난 혼자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어차피 중량은 혼자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치 인생의 무게처럼.
매일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난 혼자서도 꽤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혼자서 오랫동안 앉아서 글을 쓰거나, 혼자서 1시간 넘게 운동을 해도 별로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운동의 좋은 점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그런 생각은 한다.
'아우, 힘들어 죽겠네.'
그러나 나는 운동하면서 죽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조금 쉬고 나면 다시금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게 된다. 물론 횟수가 더해질수록 번뇌에 시달린다. 특히 8번, 9번 회수에서 '10번 넘겨 말어?', '한 번만 더?'라는 생각이 오간다.
이런 번뇌와 세트의 반복 속에서 죽을 것 같더니 다시 무게를 들어 올리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런 반복 속에서 무기력감이나 불안함은 '괜찮아질 거야'로 바뀐다. 잠시 쉬고 나면 다시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처럼, 사업도, 글쓰기도 어쩌면 지금은 쉬는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쉬고 나면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침묵 속에서 운동을 했다. '힘들어 죽겠네'와 '한 번만 더?'의 번뇌 속에서 고민의 무게를 덜었다. 애시당초 나라는 인간은 불안과 함께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호사로운 운동시간을 즐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