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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러니까 동네를 슬슬 걷거나 물에서 첨벙거리기만 해도 마음은 이전보다 나아진다. 상쾌해지고 가벼워지고 가뿐해진다.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좋아진다.

문제는 잘하고 싶을 때다. 그냥 동네 산보가 아니라 마라톤 10km 부문에 출전해 완주하고 싶거나 수영장 50m 레인을 쉬지 않고 왕복하고 싶을 때. 그때는 마음이 먼저다. 마음을 먼저 잘 먹어야 몸이 따라온다. 나에게 마음을 잘 먹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몸치에게 운동 욕심이 생긴 것이다.

내 마음과 싸우며 뛴다

10km 마라톤을 다섯 번 정도 나가자, 기록을 조금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숨은 고수와 일반인을 연결해주는 앱을 깔고 마라톤 고수를 만나 수업을 받았다. 목표가 뭐냐고 묻는 고수의 말에 대답했다.

"10km 마라톤을 한 시간 내에 들어오는 거요."

고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실 달리는 연습만으로는 되지 않아요. 기초 체력이 중요해요."

헬스를 권할 것 같아 미리 선수를 쳤다.

"전 헬스는 재미없어서 싫은데요. 체력을 올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고수는 또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헬스가 싫으면, 여러 운동을 돌려서 해도 체력 향상에 도움이 돼요.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루는 달리기, 하루는 자전거, 하루는 수영, 이런 식으로요."

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하루는 달리기, 하루는 테니스, 하루는 수영, 하루는 필라테스.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 운동마다 다른 재미가 있어 하나씩 더 하다 보니 여러 운동을 하게 됐다.
 
10km 마라톤을 다섯 번 정도 나가자, 기록을 조금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10km 마라톤을 다섯 번 정도 나가자, 기록을 조금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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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두 초보 수준이다. 그중 하나라도 잘하면 그 노하우를 다른 운동에 적용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어쨌든 고수께서 이렇게 하는 게 체력 증진에 좋다고 했으니, '난 이미 잘하고 있는 거야' 하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무턱대고 여러 운동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금세 알게 됐다.

물을 좋아하지만 수영은 못한다. 좋아하니 잘 하고 싶어 토요일 아침마다 친구와 수영장에 간다. 가장 붐비는 초급 레인으로 가서 자유형을 한다. 호흡을 잘하지 못 해 항상 숨이 가쁘다. 물속에서 뽀글뽀글 내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곧 숨이 차겠지' 그러다 숨이 차면 '역시 숨이 차는군' 또는 '벌써 숨이 차는군' 한다. 만에 하나 숨이 덜 차면, '왜 숨이 안 차지? 숨이 찰 때가 됐는데 말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수영을 하니 결과적으로 매번 숨이 가빠 중간에 멈춰 선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마라톤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뛰는 걸 좋아하지만 내 생각 때문에 힘들 때가 많다. '이제 1km 뛰었는데 언제 다 뛰지. 이렇게 더운데 계속 뛰다가 또 피부병이 도지겠군' 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과 싸우며 뛴다.

테니스는 최근에 배운 운동이기도 하고 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더 힘들다. 예전의 코치가 운동은 자신감이라고 했는데, 나에게 자신감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요즘엔 테니스 클럽을 옮겨 남편과 함께 테니스를 다닌다. 내가 먼저 30분 강습을 받고 남편이 그다음 30분 강습을 받는다. 항상 그렇게 하는데 선생님은 가끔 물으신다.

"누가 먼저 할 거예요?"

난 손을 들고 "저요!" 라고 말하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죠."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말을 뱉고 나서 생각했다. 왜 테니스 강습을 매라고 생각하지? 배운 걸 까먹어서 혼날까 봐? 연습을 안 해서 버벅댈까 봐?

"아. 잘 안 될까 봐 걱정되세요? 뭐 다시 배우면 되죠!"
 
선생님의 공을 라켓으로 받아치려고 노력 중이다.
▲ 테니스 강습  선생님의 공을 라켓으로 받아치려고 노력 중이다.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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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학창 시절, 운동을 배울 때 혼나거나 놀림을 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새로운 운동을 배우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수영할 때도 나 때문에 길이 막혀 뒷사람들이 수영을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자꾸 조급해진다.

마음이 잘 먹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난 마음을 먹는 상상을 한다. 흐물흐물한 내 마음을 냠냠 입으로 먹는다. 윗니 아랫니를 딱딱 부딪쳐 먹는 흉내를 낸다. 흐물흐물했던 마음은 목구멍으로 쑥 넘어가 다시 하나로 뭉쳐 아주 커다랗고 단단한 마음이 된다.

흐물흐물한 마음을 씹어 먹는다는 건 (연약한 마음을 없애는) 연습과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잘 되지 않았던 열 개 중 긍정적인 결과 하나, 하나가 뭉쳐 단단한 마음을 만드는 거라고 상상한다. 잘 되지 않은 실패의 경험은 배설물이 되어 몸 밖으로 빠져 나갈테니 괜찮다고 여긴다.

긍정적인 경험 하나 쌓기

이번 주 자유 수영 때는 긍정적인 결과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마음은 두 갈래로 나뉘어 '할 수 있어', '숨이 찰 걸'이라는 상반된 메시지를 보낸다. 마음은 그냥 두고 입을 크게도 벌려보고 입을 벌리는 타이밍을 조금씩 다르게 해 보기도 한다. 고개를 돌리는 위치를 조금 위로 해보기도 조금 내려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50m를 쉬지 않고 왔다. 긍정적인 경험 하나가 쌓였다.

테니스 강습 때는 레슨 시간 조금 전에 가서 전 시간에 배운 걸 라켓을 휘두르며 반복했다. 공에 달려들지 않기, 공 옆으로 가서 치기, 잔발로 가기, 상체 고정하기. 연습에 근거한 자신감을 가지고 레슨을 받는다. 선생님이 던져주시는 첫 공을 라켓으로 받아냈다. 그렇게 몇 번 공이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한다. 오, 랠리가 된다. 아하하. 웃음이 났다. 좋은 경험이 또 이렇게 쌓인다.

아직 초보라 고수의 조언대로 여러 운동을 하는 것이 체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운동에서 알게 된 깨달음은 다른 운동을 할 때도 적용하게 된다. 이를테면 좋은 마음가짐 같은.

필라테스 선생님께 내가 운동에 실패한 경험을 이야기하면 웃으며 물으신다.

"정말 신기해요. 못 하는데도 운동이 재미있어요?"

난 고개를 끄덕인다. 운동만큼 마음과 몸의 작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없다. 몸이 먼저 가고 마음이 따라갔다가 마음이 먼저 가고 몸이 따라갔다가. 결국엔 몸과 마음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함께 나아간다. 못해도 하면 나아진다.

오늘 아침엔 달리기 앱 알람이 울린다. 11월 마라톤을 대비한 달리기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좋은 마음가짐을 달리기에 적용할 차례다.
 
달리기 훈련 알림.
▲ 달리기 앱  달리기 훈련 알림.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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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태그:#몸치 , #운동 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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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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