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의 대부 vs 배신자'
남과 북에서 고 황장엽을 설명하는 극과 극의 키워드다. 극명한 평가만큼 그의 삶도 파란만장했다.
평양상업학교, 도쿄 주오대학 야간 전문부 법과 2년 재학, 삼척 시멘트 광산에서 강제징용, 모스크바종합대학 철학연구원 유학,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모스크바 유학,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상 비서와 11년간 제6·7·8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 이 중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 국회의장과 같은 직책이다. 특히 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최고인민회의 의장보다 훨씬 중요한 자리다.
그의 이력 중 가장 눈에 띄는 행적은 '주체사상 정립'이다. 그는 북한에서 주체사상연구소장, 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상 비서 등을 맡아 북의 사상통제와 교육을 책임지는 상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는 1997년 숙청 위협을 받자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직후 그의 일성은 "북한의 핵 개발계획이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고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폭로였다.
자신이 정립한 주체사상을 비판하던 그는 2010년 10월 10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공교롭게도 10월 10일은 북한의 노동당 창건일이기도 하다.
사망 당시 그의 남한 내 호칭은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주체사상의 대부'였다. 그런 그가 사망하자마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국립묘지법상 훈장을 받는 등의 공적이 없어 현충원에 안장될 대상이 아니었다. 어찌 된 일일까?
"현충원 안장 당연" vs. "잘못된 결정"
이명박 정부는 그가 사망하자 이틀 뒤인 12일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 훈장이다. 이어 같은 해 10월 14일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현충원에 안장하기 위해 훈장을 추서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당시 맹형규 행정자치부 장관은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알려 안보 태세 확립에 기여하고, 북한 민주화 발전과 개혁개방에 헌신한 것을 인정해 무궁화장을 추서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고인의 민족통일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았다.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황 선생님의 좌우명은 '개인의 생명보다 민족의 생명이 귀중하며, 민족의 생명보다 전 인류의 생명이 귀중하다'는 것"이라면서 "개척하신 인간 중심철학을 많은 분께 가르쳐 주셨다"고 애도했다. 국무회의에서도 "이의 없이 훈장 추서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인권 악화를 초래한 장본인이 남한으로 넘어와 김정일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훈장을 주는 건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이낙연 민주당 사무총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분단의 희생자로서 애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훈장이나 현충원 안장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동아일보> 역시 보수 성향이 대북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보수진영이 북한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황 전 비서의 죽음을 활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며 "정부의 대응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그로부터 22년이 흘렀다. 황장엽의 대전현충원 안장에 대한 지금의 평가는 그때와 다를까? 근래 대전현충원에서 만난 시민들의 의견은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이잖아요. 현충원 안장이 당연하죠." (A씨)
"여기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대다수분들이 자유민주주의 체계를 지키기 위해 북한군과 싸우다 숨진 분이잖아요. 저의 조부도 그 중 한 분입니다. 한평생 북한 정권을 위해 최고위층에 활동한 사람이 이곳에 함께 묻혀 있는 건 잘못됐다고 봅니다." (B씨)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