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도저히 용서 못할 일입니다. 일본 시민, 특히 젊은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127년을 맞아 8일 오전 10시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한일문화교류센터 구마모토에서 명성황후 추모식이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재일 대한민국 민단 구마모토현 지방본부(단장 정영진)와 일본인이 주도해 만든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모리모토 이쿠히로, 森本 育博)이 공동주최했다. 역사 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다나카 노부유키(田中 信幸) 씨 등 평화헌법을 살리는 구마모토와 교과서 네트 구마모토 회원들도 참석했다.
구마모토현에서 명성황후 추모식이 개최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48명의 일본인 중 21명이 구마모토현 출신이다. 당시 한성신보사(일본의 한국 침략을 위한 선전 기관지로 1895년에 창간. 일본 외무성의 기밀보조금으로 창간됐다) 사장 아다치 겐조가 구마모토 출신이었다. 그는 미우라 고로(명성 황후 시해를 지휘한 배후 조종자) 공사의 의뢰에 따라 구마모토 낭인들을 동원했다.
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가해자들이 몰려 있는 이곳에서 추모식을 주도하여 열게 되었다. 지난 2004년 가해자의 땅 구마모토현에서는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 발족했다. 모임을 주도해 만든 이는 카이 도시오(93)씨였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1980년대 어느 날 아소산 국립공원에서 한 한국인 소녀를 만났어요. 그 한국인 소녀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알고 있느냐고 묻더군요. 역사 교사인데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으니까요. 한 나라의 국모를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죠. 특히 시해에 가담한 대부분이 구마모토현 출신이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죠."
카이씨는 이때부터 수십 권의 책과 논문을 찾아 읽었다. 교사 퇴직 후에는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발족해 일본 사회에 진실을 알리고 시해범이 누구인지를 추적하고 명성 황후를 추모하는 일에 몰두했다.
2005년을 시작으로 지난 2019년까지 매년 10여 명의 회원을 이끌고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홍릉을 찾아 참배했다. 특히 지난 2005년에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후손을 찾아 설득해 함께 참배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부터는 코로나19로 경기도 홍릉을 방문하지 못하게 되자 구마모토현에서 기신제(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지난해까지 추모식에 참석해 '남은 생 동안 명성황후 시해범을 추적하겠다'고 밝힌 카이씨는 이날 추모식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우에무라 후미오(93, 上村 文男) '평화헌법을 살리는 회' 공동 대표가 강연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역사를 숨기려고 합니다. 한·일이 진정한 평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역사를 알리고 시해범들을 쫓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추모식에 참석한 30여 명의 회원이 그의 강연에 박수로 화답했다.
정영진 민단 구마모토현 지방본부 단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구마모토에 사는 여러 일본 시민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명성황후를 추도하며 참된 우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아는 가운데 진정한 한일 우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도저히 용서 못 할 일입니다. 일본 시민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역사를 배우고 이 속에서 한일 우호를 추진해 나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