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수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최근 한국 경제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팬데믹으로 풀린 과다 유동성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에 따른 물가 급등, 이를 제어하기 위한 미 연준과 각국 중앙은행의 연쇄적인 금리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기술과 안보 동맹 추진에 따른 공급망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에따라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금융, 외환시장 교란 가능성이 커져 각국 정부가 대응책을 세우느라 애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 김병곤 박문숙 기념사업회(장영달 이사장, 아래 사업회)는 지난 14일 오후 6시 30분 서울시 중구 충무로에 있는 '공간 채비'에서 '윤석열 정권 경제정책과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주제로 제2차 한국민주사회포럼을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개최하였다.
사업회는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고 김병곤, 박문숙 부부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두 사람의 민주화운동 동지들을 중심으로 2021년 8월 창립했고 지난 6월 '윤석열 정권에서 한일관계는 어떻게 될까'라는 주제로 제1차 한국민주사회포럼을 개최한 바 있다.
포럼은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먼저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기조발제를 하고 이후 전재주 전 외환은행노조부위원장과 박용석 전 민노총 민주노동위원장이 지정토론자로 나서 의견을 발표했으며 마지막으로 참석자 전원의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장영달 사업회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1974년 4월, 민청학련사건이후 민주주의를 세우려는 줄기찬 투쟁으로 거듭되는 투옥과 고난을 겪다가 떠난 두 동지가 기억난다"며 "오늘 우리들 마음 속에 살아있는 두 동지를 기억하고 악독한 세파가 또 우리 앞에 닥친다해도 김·박 두 동지와 어깨걸고 나아가면서 바람직한 조국의 내일을 토론하는 자리가 되기 바란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부자감세와 결합된 긴축은 한국경제의 발목 잡을 수도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기조발제를 통해 "새정부는 경제운용 4대 기조로서의 자유, 공정, 혁신, 연대, 그리고 경제운용 목표로서의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 선순환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의미 없는 추상적인 선언에 불과하고 자유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시장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노동이나 인권, 생태, 건강 등 사회적 가치에 비해 기업들 돈 벌 자유가 우선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부자 감세와 규제 완화는 영세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들의 열악한 경제적 현실을 도외시하는 전형적인 대기업 위주의 경제관이며 '이명박근혜' 정부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한편으로는 감세를, 다른 한편으로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추진하는 모순적 행태, 즉 감세와 결합된 긴축은 최악의 정책 조합으로 향후 한국경제의 전환기에 제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해 나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사태와 중미갈등 여파로 공급망 불안정이 심화되는 가운데, 매파 성향이 강화된 연준의 정책 실패가 세계경제의 회복을 크게 둔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연준의 급격한 긴축 전환이 1930년대 경험한 더블딥이나 국제금융시장의 포트폴리오 조정 과정에서 신흥국 경제의 금융위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각국이 에너지 안보에 나서고 물가상승 압력이 구조화되면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둘러싼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하면서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물가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결국 실업자를 의도적으로 늘리는 정책이고 금리 인상처럼 수요를 죽이는 정책으로 인해 자칫 물가는 제대로 못 잡고 실물 경제의 침체만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이고 세계화의 진전으로 각국 경제의 연계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세계경제 내적으로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 배제를 제도 경쟁 중심으로 압박하기 위해 인플레감축법이나 CHIP4, 메가 FTA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약계층 지원하는 '적극재정, 부자 증세' 바람직
이같은 불안한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대응 방안에 대해 나원준 교수는 "미국은 고금리를 밀어붙여 달러가치를 높임으로써 한국 등 타국에 인플레이션 부담을 떠넘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플레감축법을 통한 공급망의 자국 내 집중으로 한국의 일자리도 앗아가려는 것이다. 이에 따른 영향은 계층별로 부문별로 비대칭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과도한 부채와 채무상환능력이 낮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부실화 위험이 더 커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당장 취약 차주의 이자부담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며 과거와 같은 금융위기시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에 대한 대책 또한 필요하다. 경제위기라는 엄중한 현실에서 재정정책의 모범답안은 사회안전망과 공공인프라를 확충하고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하는 '적극재정 + 부자 증세'이다"라고 강조했다.
기조발제 후 이어진 토론회에서 전재주 전 외환은행노조부위원장은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2022년 6월)를 참고로 '바젤Ⅲ 시스템이 금융 및 가계에 미치는 영향과 금융위기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바젤III 체제에 진입한 금융기관은 국제회계 기준인 IFRS9 (일반 금융기관)과 IFRS17(보험사) 회계기준을 따르게 된다. 이에 따라 자본금 규제, 레버리지비율 규제,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유동성규제, DSR LTV등 신용리스크 규제, 자본보전 및 경기대응 완충자본 적립, 23년 이후에는 자산의 미래위험까지 평가하여 충당금 적립을 강화하는 시장리스크 규제 도입 등 첩첩의 규제 도입으로 강화된 각종 자본규제를 받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에따라 금융기관의 대출은 축소되거나 회수가 불가피하며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대출차주의 경우에는 위험가중치(RW)를 감안한 대손충담금 적립 상향분을 원가상승에 반영하여 대출가산금리가 상승하는 등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한국사회는 대출자산을 디레버리징하는 고통스러운 자산재조정 불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는 '대차대조표 불황'이라 하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불황과 성격이 같고 최악의 경우엔 대출축소 + 금리인상 + 이자율 인상이라는 3가지 요소가 결합된 복합충격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대응책 준비에도 불구하고 가처분소득 대비 168% 수준의 개인대출을 연착륙시키기 어렵고 바젤III에 의한 위의 3가지 복합충격을 겪게 되면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연체, 경매, 파산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국토연구원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금리가 정점에 이르는 23년 경에는 부도위험 가구수가 전체 대출가구의 18%인 148만 가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하여 한국의 연말 기준금리가 3%를 넘어 4%를 초과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는 개인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에 이르는 '항복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항복금리에 도달하면 기존 대출자는 원리금 상환부담증가로 대출상환을 포기하게 되어 연체와 경매로 담보자산을 넘기게 되고 신규대출자는 대출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기준금리가 4%대로 상승하여 금융위기 발생시 예상 손실금액 추산액은, 자산가격 10% 하락시 개인대출은 186조원, 자영업자대출은 62조원, 전월세자금은 100조원으로서 총 자산(3,480조원)에서 348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이 손실규모는 2008년 서브프라임사태 당시의 충격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4% 이상의 상황이 1년간 지속하게 되면 경매에 넘겨지는 부동산 매물량은 급증하게 되고 바젤 III 시스템에 진입한 금융기관은 연체대출에 대한 충당금을 쌓게 되어 자본금이 감소하고 대출을 더욱 축소하게 된다. 더해서 신규대출자는 DSR 규제를 받게되어 대출액이 축소되거나 대출이 어려워지게 된다. 그 결과 경매물량 급증과 경매가 폭락으로 인한 자산시장 멜트 다운이 발생하면 자금회수 곤란으로 제2금융권 등으로 부동산 익스포져가 높은 금융기관의 파산 가능성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 부위원장은 기준금리 4% 상승과 금융위기 발생시 대응방안으로는 "과도한 대출과 연체경매로 파산하거나 전월세 보증금을 잃게 되는 취약 계층에 대한 정부차원의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금융기관의 여신 건전성을 상대적으로 안전한 제1금융권에 대해서만 언급하지만 금년부터 바젤III 규정을 신규로 적용받는 제2금융권과 보험사들의 경우엔 건전성 현황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부는 효용성이 떨어지는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을 중심으로 부실 금융기관 지원보다는 취약계층 보호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용석 전 민노총 민주노동위원장은 "최근 고환율, 고물가, 무역적자 등 거시지표 악화, 글로벌 공급망과 금리인상 등 불안한 기조에 윤석열 정부는 시대착오적 대응으로 한국경제의 취약성이 크게 드러나고 있다고"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신정부는 공공이 아닌 민간 활성화 중심 경제정책을 들고 나왔으며 이는 MB모델의 부활이라 볼 수 있고 감세와 긴축재정 운용전략이 기조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또 "무리하고 편향적인 경제동맹 추진과 외교참사로 국제정세에 무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윤정부의 국정운영 한계를 공론화하면서, 단기적으론 취약계층에 대한 확장 재정과 국익위주의 중립 외교를 추진하고 장기적으론 수출 대신 내수 중심, 공공서비스의 국가책임 강화,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 노동자의 임금 현실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업회 임성래 사무국장은 포럼이 끝난 후 "사업회는 최근 대내외적으로 정치 경제 안보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를 마련하고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유익한 포럼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