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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바야흐로 찬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다. 날씨가 급격하게 변하다 보니 체감으로는 가을도 없이 바로 겨울로 넘어간 느낌이긴 하다. 날씨가 바뀌거나 계절이 바뀔 때가 되면 생각 나는 음식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음식들은 개인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또 대체로 비슷하기도 하다.

여름이 되면 냉면이 생각 나고 겨울이 되면 뜨끈한 국물이 생각 나는 것처럼 말이다. 복날에는 삼계탕을, 이사하거나 짐을 옮긴 날에는 중국 음식을 먹어줘야 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를 먹어줘야 한다는 것은 암묵적인 합의에 가깝다.

계절이 혹은 날씨가 급격하게 바뀐 그런 날은 점심을 함께 먹는 동료들과 메뉴 선정에 어려움이 없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계절이 바뀔 때 생각나는 '그것'을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순위권에 드는 날
 
국물의 계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국물이 생각난다
국물의 계절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국물이 생각난다 ⓒ Photo by Jennifer Schmidt

요즘처럼 바람이 차가워지는 날에는 근처의 유명한 닭칼국수 집이 떠오른다. 아니면 뜨끈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맑은 국물이 일품인 쌀국수도 좋다. 누군가가 제안한 굴국밥은 조금 더 추워지면 먹기로 미루어둔다.

번개처럼 빠르게 메뉴를 정하고 식당으로 이동하면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던 것인지 식당 앞에는 이미 몇 팀이 줄을 서 있다. 이런 날은 모름지기 아웃사이더의 노래 가사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움직여야 했던 것을. 물론 운이 좋아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인 날이면 모두가 합의한 그 메뉴를 먹을 수 있다.
 
 날씨가 바뀌거나 계절이 바뀔 때가 되면 생각 나는 음식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추운 날 생각나는 만두 같은.
날씨가 바뀌거나 계절이 바뀔 때가 되면 생각 나는 음식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추운 날 생각나는 만두 같은. ⓒ 최은경
 
날씨에 걸맞는 메뉴를 먹는 것도 행복한데, 먹는 동안 문 앞으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순위권(?) 안에 들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역시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희열마저 느낀다. 점심 시간 자체가 직장 생활의 활력소이지만, 이렇게 모두가 원하는 메뉴를 '득'한 날이면 왠지 그 행복이 배가 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그때부터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 식당에서 웨이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빠르게 다른 식당으로 향할 것인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점심 먹기 눈치 대작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단 우리 앞에 몇 팀 정도가 대기 중인지를 파악한 후, 식당 안을 재빠르게 스캔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은지, 먹고 있는 손님들이 더 많은지를 확인한 후 기다릴지 말지를 정한다.

손발이 척척 맞는 밥 친구와 함께라면 내가 대기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동안 그는 이미 근처의 다른 식당을 검색해 두었을 것이다. 대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촉박한 점심 시간에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근처의 다른 식당을 차선책으로 선택한다.

차선책은 빠르고 치밀하게
 
샌드위치와 스프 쌀쌀해진 날씨에 먹기 좋은 따뜻한 샌드위치와 스프
샌드위치와 스프쌀쌀해진 날씨에 먹기 좋은 따뜻한 샌드위치와 스프 ⓒ 김지영
 
이때는 "남들과는 다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이미 한 번의 실패로 시간이 지체되어 모두가 생각했을 법한 메뉴를 파는 식당은 벌써 대기가 한창일 것이라고 봐야 한다. 과감하게 날씨에 따른 메뉴가 아닌 다른 메뉴를 선택해야만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다. 즉, 이 계절에 생각날 것 같지 않은 음식으로 골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추워진 날씨에 냉면 같은 음식을 먹을 수는 없으니, 적당한 중립점을 찾는 것이 새로운 과제가 된다. 이것 저것 다양하게 파는 분식집에 가서 김밥에 우동이나 라면을 먹으면서 국물을 섭취할까? 아니면 파스타를 파는 이탈리안 식당에 가서 국물이 자작한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끈한 리조토를 먹어볼까? 정 안 된다면 샌드위치 전문점에 가서 따끈하게 구운 토스트 샌드위치에 뜨끈한 스프를 곁들여 먹어도 좋다.

그 중에서 샌드위치 집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아니나 다를까 다이어트의 계절인 여름이 지나가고 난 후라서 그런지 조금은 한산하다. 원하는 빵을 고르고 내용물을 골라 토스팅을 해 달라고 요청한다. 오븐을 거치면서 치즈는 녹아들고 빵과 햄 혹은 닭가슴살 따위의 육류는 따뜻하게 데워진다.

스프를 시킬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시켜 본다. 바깥 날씨는 서늘하고 나는 따뜻한 국물이 (동양 국물이든 서양 국물이든) 필요하니까.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햇살이 따사롭다. 스프를 아무래도 괜히 시켰나 후회를 하던 차에 한 수저 떠 먹으니 속이 사르륵 녹는 기분이 든다. "그래. 이 계절엔 역시 국물이지."

쌀쌀해진 날씨에 제일 첫 번째로 생각난 '그 메뉴'는 못 먹었지만, 추운 속을 녹여줄 '남들과는 다른' 음식을 먹었으니 오후를 살아낼 힘을 내본다. 아직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그 식당 앞을 지나 사무실로 복귀를 한다. '내일은 꼭 누구보다 빠르게 '그 메뉴'를 먹기 위해 부지런을 떨어 봐야지, 라는 다짐을 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SNS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우리들의점심시간#점심식사#국물요리#샌드위치와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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