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겨울, 긴가민가 마주한 코로나19 시절이 이렇게 길게, 몹쓸 시간을 마련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 2020년 봄, 너희(학생)가 와야 학교는 봄날이란다, 라는 말로 일상의 간절함을 드러냈었다. 모두가 낯설고 처음인 코로나19 시절, 6월이 되어서도 입학을 미룬 신입생들이 벌써 중학교 졸업반, 3학년이 되었다. 우리는 방역과 교육 사이를 오가며 널뛰기하듯 바뀌는 교육 현장에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지난한 과정을 잘 견뎌왔다.
2022년, 마스크가 우리 얼굴을 아직도 반이나 가리고 있는 현실이지만, 때때로 긴 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렇게 바라던 학교의 봄날은 2022년, 가을이 되어서야 제대로 나타난 듯하다.
2021년에 비해 원격수업보다는 대면 수업이 주를 이루었고, 3월 입학식은 원격으로 치렀으나 체육대회, 축제 등 대부분의 학교 행사를 코로나 19 이전의 모습으로 돌이키려 애쓰고 있다. 마스크 쓰고 달리기 하느라, 응원하느라 고달픈 하루였지만 체육대회를 위해 운동장에 모두 모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5월의 하늘은 날아갈 듯이 푸르렀다.
복도에서 친구를 만나도 아는 체할 수 없었던, 급식실에서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없었던, 모둠 수업조차 할 수 없었던 지난 2년여 시간! 그때를 아프게 기억하기에 올해의 봄, 여름, 가을은 살만한 소중한 계절이었다.
작년까지 원격으로 겨우 유지하거나 사라졌던 학교의 활동이 살아나고 있다. 덩달아 아이들 얼굴도 생기를 되찾은 듯 밝고 예쁘다. 모처럼 열리는 축제 준비로 학교가 떠들썩하다. 전시마당, 놀이마당, 공연마당으로 이어지는 축제, 당일은 물론이고 준비기간에 아이들은 더 빛나고 기특하다. 특유의 열정과 공감이 어우러진 간석여중 39회 축제, 꿈오름제는 완벽 그 자체였다.
학생자치회에서 주관하는 각각의 놀이마당 부스는 아이들과 선물꾸러미로 가득한 가운데 할머니 바지 빨리 입기, 춤으로 말해요, 일일 노래방, 반대 손으로 그림 그리기, 타투 등 다양한 놀이로 흥성거렸다. 우리 국어과는 예년처럼 시화전을 준비했다.
순수한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하고픈 말, 가족이나 친구, 자연을 향해 전하고픈 마음.... 감사, 사랑, 노력, 우정, 쓰라림, 슬픔, 좌절, 어둠, 배려, 힘듦, 사춘기 등등!
1회 고사가 끝나자마자 가진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아이들은 각자 생각할 거리를 찾아 진지한 자세로 시상에 빠져들었다. 열다섯 살, 중2 학생다운 시선으로 고치고 고치는 과정 속에서 어설픈 글은 한 편의 시가 되어 반짝거렸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힘든 친구관계를 풀어낼 방법을 찾고, 가까스로 피어난 꽃에게 응원을 보내고, 즐거운 학교생활에 가락을 붙이고, 부모님께 미처 전하지 못한 사랑을 부끄럽게 드러내고, 자신의 꿈을 격려하고 다독이는 등등...
아이들의 시어들은 리듬을 타고 날아올라 우리 마음을 적셨다. 진실한 마음을 담은 아이들은 그대로 멋진 시인이 되었다.
아이들의 모든 작품은 교실 창문에 걸렸다. 누구도 빠지지 않고 시인이 되어 자신의 작품을 드러낸 복도는 꽂길 만큼 예쁜 길이었다. 전교생의 작품이 모인 시화 전시장은 그림과 색깔까지 더해져 화려한 잔치마당이었다. 1학년은 1학년답게, 3학년은 3학년답게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드러낸 시들은 각자의 날개를 달고 펄럭였다. 아이들의 고운 마음이, 진지한 생각들이 전해져 시화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공연마당은 말할 것도 없이 갈채와 환호와 축제의 최고 절정이었다. 2008년생인 아이들은 30년 된 노래 '잘못된 만남'을 멋들어지게 불러 제치고, 20년 된 'Tears'를 고음불가 없이 목청껏 노래했다. 색소폰, 우쿨렐레,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 벨리댄스, 코믹댄스, 사제동행 공연 등, 늘 교실에서 보던 아이들이 어쩜 저리 무대 위에서 더 멋지게 빛나는지!
체육대회 운동장에서, 축제 무대 위에서 아이들은 펄펄 날아 춤추며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교사로서 가장 많이 웃는 행복한 순간들이다. 코로나 시절을 넘어 맞이한 탁 트인 축제여서 더 감격스러웠나 보다.
지난주에 이렇게 아이들 마음을 연 축제가 있었다면, 다음 주에는 아이들을 날아가게 할 현장체험학습이 기다리고 있다. 놀이동산에서 활개 칠 아이들 모습을 미리 그려보니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오늘은 3년 만에 찾아온 학부모 공개 수업의 날! 학교가 문을 열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수업을 공유하니 예전 일상을 제대로 회복한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학생과 교사가, 교사와 학부모가 만나기 어려웠던 그 어둠의 시절이 절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학교는 단풍으로 물들고, 호랑가시나무 꽃으로 향기롭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나무 아래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경쾌하다. 그렇게 바라던 학교의 봄날은 2022년, 가을이 되어서야 제대로 나타났다. 이번 겨울을 곱게 지나 내년 봄에는 진짜 학교의 봄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