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각 지역의 교육청마다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때 이른 대학입시 대비 컨설팅이 한창이다. 2023학년도 수능을 코앞에 두고, 내년과 내후년에 수능을 치를 고2와 고1의 대입전형에 대해 안내하는 자리다. 고2와 고1 담임교사들의 진학 상담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인 서울 대학' 입시의 성패는 고1 때 결정된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컨설팅의 요점은 이것이다. 수능에 '올인'해야 하는 고3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과정이 선택과목 중심으로 운영되는 고2 때 시작해도 이미 늦다는 것이다. 내신과 수능의 핵심 과목인 국영수는 고1 때 끝내야만 '인 서울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괜히 겁주려는 건 아님을 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교내 시험 성적이 그대로 고3 때까지 이어지고, 첫 모의평가 성적이 별다른 변동 없이 3년 뒤 수능 성적이 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은 고등학생들의 성적 추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들어선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이미 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지는 느낌이다. 교육과정이 달라 언뜻 무관할 것 같은 중학교 내신 평점과 고1의 그것이 큰 차이가 없어서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중학교가 위치한 학군이 어디냐에 따라 약간 들쭉날쭉하다는 점뿐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실은 정글
고1 때 국영수를 끝내야만 한다는 강사의 사자후가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다. 30여 년 전 나의 학창 시절 귀에 못박이도록 들었던 조언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전쟁 같은 대학입시와 숨 막히는 학업 스트레스로 그때도 고등학교 교실은 정글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정글이다.
조변석개하듯 대입 제도가 바뀌었고, 이수해야 할 과목 수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는데도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그대로다. 복장과 두발 규정이 자율화하고 등교 시간이 늦춰졌으며 강제적 야간자율학습도 사라졌지만, 지금의 아이들도 이구동성 학교생활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노래가 울부짖음처럼 나돌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꺼낸다면 천둥벌거숭이 취급받을 게 뻔하다. 이젠 행복은 학벌 서열순이고, 그 순서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이 공정하다고 믿는 세상이 됐다. '민주주의는 합리적 차별'이라는 말을 그렇게 오용한다.
아이들이 공유하는 '공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강퍅하다. 각자의 능력을 증명하는 건 공인된 시험의 성적이고, 성적에 따라 학벌이 결정되면 그 서열에 따라 본분을 지키는 게 공정하다고 믿는다. 곧, 그들에게 시험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제도다.
그러다 보니 시험 성적은 대인 관계를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시쳇말로 '끼리끼리 어울리는' 아이들의 면면을 보면, 출신 학교나 사는 곳, 성격보다 대개 성적이 엇비슷한 친구들이다. 그들끼리 친해진 이유를 부러 물어보면, 서로 말이 통한다고 답한다. 이심전심이라는 거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아이들이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다. 교실 내에서 성적이 극단적으로 양극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성적 경쟁이 소수 상위권에서만 치열하게 벌어지고 대다수의 중하위권에서는 자포자기하는 분위기가 날로 팽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점수 분포상 중위권 줄고 하위권 늘어나는 이유
시험에 애면글면하고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건 상위권 아이들 이야기다. 하위권은 아예 관심이 없고, 중위권 아이들조차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긴장의 끈을 놓은 상태다. 점수 분포상 중위권 아이들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대신 하위권만 늘어나는 이유다.
교육청이 주관하는 대학입시 대비 컨설팅조차 상위권 아이들만을 위한 시간이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4등급 이하는 논외로 치부된다. 이는 '인 서울 대학'과 지방 국립대 외엔 별도의 컨설팅이 필요 없다는 의미다. 거칠게 말해서, 4등급 이하는 '도토리 키재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상대평가에서 23%까지가 3등급이다. 얼추 상위 4명 중 1명에 해당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인 서울 대학'과 지방 국립대 진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아이들로부터 불공정의 상징으로 일찌감치 낙인찍힌 상태다.
수능과 학생부교과전형은 물론, 성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잠재력을 반영한다는 취지의 학종조차 등급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도 4등급 이하라면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특히 지방대의 경우는 학령인구의 격감으로 찬밥 더운밥 따질 겨를이 없다.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은 같은 등급의 상위권 아이들을 다시 세분화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마저 워낙 '인플레'가 심해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힘든 실정이다. 불가피한 정성평가의 한계라고 눙치지만, 우리 교육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입 컨설팅은 상위권 아이들을 상위권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한 효율적인 방안을 교사들에게 제공해주려는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소수의 상위권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교육청까지 나서서 학벌 의식을 공공연히 조장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인 서울'을 목표로 하는 건, 이미 고정상수다.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진로와 진학 상담은 불가능하다. 어느덧 '지잡대'는 보통명사가 됐고, 지방대생 스스로 '루저'라고 여긴다. 아이들은 서울 명문대의 '과잠'을 입고 거리를 활보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다.
부디 교육청에 바란다
"한때 서울의 명문 사립대와 어깨를 겨루던 대구 경북대의 재학생 자퇴율이 2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다시 수능에 도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지방 국립대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인 서울'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이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지방 국립대가 이럴진대, 숱한 지방대의 상황은 물어보나 마나다. 강사는 이러다 얼마 못 가 지방의 대도시조차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되레 현실에 편승할 것을 주문했다.
머지않아 지방대는 문을 닫고 '인 서울 대학'만 살아남게 될 거라고 한다. 심지어 아이들 입에서 사람 대접받으려면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지방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청까지 나서서 '인 서울 대학' 운운하는 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처사다.
모두가 '인 서울 대학'을 지향하는, 이른바 '엑소더스'의 현실을 멈춰 세우기 위해 궁리하기는커녕 더 많은 청년 세대를 올려보내지 못해 안달하는 교육청이 안쓰럽다. 지방대가 문을 닫고 청년 세대가 죄다 떠나면 교육청도 무탈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지방 교육청이 흡사 서울 교육청의 지방 출장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디 교육청에 바란다. 애꿎은 밤에 교사들 불러 모아 대학입시 컨설팅을 하기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방대를 살릴 방안을 모색하는 편이 낫다. 지역 인재의 양성 운운하며 '인 서울 대학'에 많이 보내라고 종용하는 건, 단언컨대 지방 교육을 황폐화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