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 산신제 보존회는 지난 28일 서산시 부춘산 옥녀봉 산신당에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56-2호 내포앉은굿 보존회 주관으로 서산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16회 부춘산 옥녀봉 산신대제를 올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완섭 시장을 대신해 유광균 문화예술팀장과 이수의 서산시의회 부의장 및 동료 의원들, 내포앉은굿 명예 보유자 정종호 선생 및 회원 100여명이 참석했다.
부춘산 옥녀봉 산신대제는 시민의 평안과 지역의 경제 발전 등이 잘 될 수 있도록, 특히 인적·물적 무사고와 산불이 일어나지 않게 도와달라며 기도를 올리는 행사다.
최정자 옥녀봉 산신제 보존회 회장은 "서산시민들께서 편안히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서 부춘산 옥녀봉 산신령님께 일심정기로 지극정성을 드리는 것"이라며 "이 험난한 시국에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서산시가 더욱 발전되고 경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 산신당은 먼저 가신 스승 대보살님의 뒤를 이어 저희 시어머님께서 서산의 안녕을 기원해 오셨고 그 뒤에 소생이 10여년을 지켜오면서 계승해 나가고 있다"며 "모르는 게 많은 저에게 이 소중한 자리를 이어 나아가라는 뜻으로 선생님들께서 막중한 책임을 맡겨 주셨으니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성일종 국회의원은 축전을 통해 "정성 들여 올리는 기도가 하늘에 닿아 서산시민의 안과태평과 물가경제회복이 모두 이루어지길 기도한다"고 전해왔다.
이어 조부환 예능보유자는 "모든 일이 잘되도록 정성 들여 기도를 올리기 위해 옥녀봉 산신제 보존회와 서산시, 서산시의회,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서산시연합회가 같이 협력하여 도와주고 있다"며 "많은 분이 오셔서 마음 놓고 앉아서 (음식)드시고 또 축하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옥녀봉에 운동 왔다가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는 시민은 "산신대제하는 모습을 처음 접하게 됐다"며 "전통문화를 계승시키고 지킨다는 것은 외롭고 힘겨운 일"이라고 했다. 또 "오징어게임 등 민속의 중요성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이때, 우리에게 소중했던 전통문화를 다채롭게 가꾸고 다듬어가는 일은 상당히 의미 있다"고 했다.
산신제는 서산시민의 명순희 부회장의 산신축원과 조부원 예능보유자의 신장봉청, 김영숙 부회장의 신장대잡이, 모선미씨의 불사거리, 박연숙 선생의 대감거리, 작두타기, 장군거리, 복드리기, 음복, 퇴신으로 이어졌다.
한편, 부춘산 옥녀봉은 서산의 진산으로서 예부터 고을의 주민들에게 숭배를 받아 온 영산이다. 옥녀봉은 옥녀가 거문고를 켜는 형국, 곧 '옥녀 탄금형(玉女彈琴形)에 해당되며, 예로부터 길지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산 아래 살고 있는 주민들은 매년 정월에 산신제와 당제를 지내며 무사태평을 기원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 극심한 한발이 들면 읍민과 고을의 수령이 함께 옥녀봉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1927년 발간된 <서산군지>에는 동문리와 읍내리 주민이 매년 정월 14일에 제를 지낸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주민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마을에서 모시던 옥녀봉 산신제는 6·25 전쟁 무렵에 중단되고 제당도 소멸되었다.
그 뒤 1987년 10월 제1회 서산문화제 전야제 때 옥녀제를 지냈지만, 향사와 궐사(闕祀)(제사를 거름)가 거듭되었다. 그러다가 서산 지역의 유림을 중심으로 옥녀봉을 숭모하는 모경회(慕敬會)를 조직하여 산 정상에 옥녀 제단을 설치하고 매년 정월 14일 오후 4시경에 국태민안과 시화연풍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7년 이민영이 편찬하고 중앙인쇄소에서 간행한 <서산군지>에 따르면 "옥녀봉 상봉의 불당에 목상(木像) 수십 기가 있는데, 몇 년 전에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박사가 연구용으로 한 개를 가지고 일본에 돌아가 동경대학교 문리과대학 내에 불당을 만들고 그 밑에 단을 설치했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에 따르면 약 60여 년 전까지도 나무로 깎은 부처가 당집에 남아 있었으나 제의가 중단되면서 없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