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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밤에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집 밖을 나왔다가 찬 공기에 깜짝 놀랐다. 낮 공기를 생각하고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치고 나왔더니 꽤 추웠다. 최대한 추위를 피하려고 점퍼를 단단히 여미었다. 나까지 감기에 걸릴 순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주변에 반갑지 않은 손님, 감기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콧물을 훌쩍이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우리 아이들과 같은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꼬박 한 시간을 대기하고 나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열흘간 감기를 앓았다. 그동안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반찬들을 만들어주고, 약도 잘 챙겨 먹였다. 특히 둘째는 기침이 심해서 유치원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이 좀 나을 무렵, 이번엔 내가 기침이 나오고 코가 막히기 시작했다.

나를 살린 냉동 뭇굿
 
 아픈 날은 입맛도 없고 이불 속에서 누워있는 것만 하고 싶다.
아픈 날은 입맛도 없고 이불 속에서 누워있는 것만 하고 싶다. ⓒ unsplash
 
나는 어른이니 금방 낫겠지, 생각하고 종합감기약을 먹으며 사흘을 버텼다. 하지만 나흘째가 되어도 감기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집 근처 병원 문을 두드렸다.

"감기 증상이 심하시네요. 밥 잘 챙겨 드시고요, 약은 식후에 드시면 됩니다."

코로나 재감염일까 우려했으나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증상이 심해진 지 꽤 된 것으로 보이는데 괜찮냐고 물으셨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이상하게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하면 바로 병원에 가면서, 엄마인 내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왜 인색해지는지 모르겠다.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받은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눕고 싶고, 자고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엉망인 집 상태를 뒤로하고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렇게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약을 먹어야 했다.
 
 엊저녁에 냉동실에서 한 덩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더랬다. 솔솔 풍겨오는 국 향기가 좋았다.
엊저녁에 냉동실에서 한 덩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더랬다. 솔솔 풍겨오는 국 향기가 좋았다. ⓒ 최은경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침부터 빈속이었다. 약을 먹으려면 뭐라고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플 땐 음식을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일이다. 뭘 시켜 먹어야 하나? 혼자 먹을 건데 배달료가 좀 아깝네. 그냥 집에 있는 거로 대충 만들어 먹을까? 그렇다면 뭘 먹지? 죽? 죽은 먹기 싫은데. 그럼 라면? 아픈데 라면은 좀 그렇지 않나.

몸은 좀체 이불 안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고민만 계속됐다. 아프니까 입맛도 없는데, 그냥 먹지 말까. 그러다 문득, 냉동실에 얼려둔 고깃국이 생각났다. 국에 밥 한술 말아먹는 거면 속도 편하고, 밥 차리기도 편할 것 같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가스레인지 불 앞에 서서 국을 끓였다. 지난 추석에 엄마네 집에 갔다가 받아온 소고기 뭇국이었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해서 이미 다 먹은 줄 알았는데, 엊저녁에 냉동실에서 한 덩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더랬다. 솔솔 풍겨오는 국 향기가 좋았다.

밥과 국, 김치로 구성된 단출한 점심 메뉴가 완성되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국을 호호 불어 한 숟갈 떠넣었다. 속이 뜨끈해졌다. 분명 입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밥은 생각보다 잘 넘어갔다.

밥을 먹다가 문득 주말에 친구와 한 약속이 생각났다. 감기에 걸려서 아무래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곧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많이 아파?'
'응. 생각보다 감기가 심하네. 오늘 아침엔 꼼짝을 못하겠더라고.'


워낙 친하고 편한 친구라 괜찮다는 말 대신에 나 정말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아쉽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였기에 나 또한 손꼽아 기다리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미안해할 필요 없다며, 우리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쓰는 사이였냐고 했다.

나는 그새 야금야금 밥 한 그릇을 다 비워가고 있었다. 밥을 먹으니 좀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이게 어릴 적 엄마가 그토록 강조하던 밥심이라는 건가. 밥을 먹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래도 일어나 밥 챙겨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 건강은 내가 챙겨야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조금 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확인해보니 죽 교환 쿠폰이다. 아까 그 친구가 보내온 것이었다.

'아플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 너 잘 먹고 안 아픈 게 제일 중요한 거야. 알았지?'

갑자기 멀리 있는 친구가 가까이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오늘 밥상도 엄마가 끓여준 국이 팔 할이었다. 엄마도 분명 내가 아픈 걸 알면 내 친구와 같이 말해주셨으리라. 네 건강이 최고라고. 나 말고도 내 몸을, 내 끼니를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고 축축 처지는 느낌은 계속됐다. 그렇지만 나는 부지런히 밥을 챙겨 먹었고, 약도 빼먹지 않았으며, 아이들과 내 일정이 없는 시간이면 틈틈이 눈을 붙였다. 며칠 뒤,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많이 호전되었다고 반가워하셨다.

사실 아픈 날 홀로 챙겨 먹는 밥상은 좀 버겁다. 차리기도, 먹기도, 치우기도 힘들다. 하지만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휴식만큼이나 영양소도 중요하니까. 좀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친구가 나에게 전해준 마음처럼, 나도 무거운 몸을 붙들고 밥상 앞에 겨우 앉은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플 때일수록 잘 챙겨 드세요. 잘 먹고 안 아픈 게 제일 중요한 겁니다. 빨리 회복하세요.'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점심시간#아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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