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
정신없이 일하고 있을 때였다. 모니터 속 메신저가 노랗게 깜빡였다. 함께 점심을 먹는 동료 여직원들과의 채팅방에 빨간 1이 떠 있었다.
"오늘 부서에서 일이 생겨 밥 같이 못 먹겠는데. 미안. 점심 맛있게 먹어!"
다른 부서로 이동한 지 2달째. 종종 밥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흘끗 시계를 보니 12시 10분 전이다. '구내식당에 갔다 올까, 아니면 바깥에 나가서 모처럼 혼밥을 할까?' 갑자기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평소에는 외식을 싫어하는 선배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기도 하고, 구내식당 밥도 맛있어서 점심 메뉴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주말이면 주로 아이가 먹고 싶다는 것 위주로 먹느라 내가 먹고 싶은 걸 떠올릴 기회가 잘 없고.
가끔 동료들과 바깥에서 점심을 먹기도 한다. 정말 싫은 게 아니라면 웬만해선 남들에게 맞추는 편이라 의견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정하는 메뉴를 수용한다. 그렇게 10여 년을 지내다 보니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거나 너무 많은 생각들로 꽉 차는 결정장애를 얻게 됐다.
갑자기 혼자 먹게 된 점심
12시. 사무실을 나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바깥은 가을이 한창이었다. 큰 병원을 끼고 아파트와 다양한 상업시설이 공존하고 있는 거리를 걸어갔다. 보리밥, 돈가스, 칼국수... 늘어선 간판을 바라보지만 뭘 먹어야 할지 내 마음을 나도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일이 단지 점심 메뉴를 정하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편의를 해결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가족에게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고 요구를 챙기느라 미루고 양보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짬짬이 하고 싶은 일, 지극히 나만을 위한 일을 하려고 애써보지만, 그 시간은 실수로 깨트려버린 거울처럼 모서리는 대충 맞아도 매끈하고 단단하게 도로 붙지는 않는다. '남'을 우선하여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다 보니 나는 어느새 조각조각 분절되어 역할에 흡수되고, '내 취향', '내 방식'은 자꾸만 뒤로 밀려난 채 희미해져만 간다.
고작 점심 밥 한 끼인데 아무 거나 먹자는 마음과 그래도 모처럼 금요일의 혼밥인데 특별한 걸 먹고 싶은 욕심으로 갈등하며 조금 더 걷다 보니 작은 가게 앞에 다다랐다. 간판 없이 유리문에 대표메뉴를 세로로 써놓았다. 지나치기만 했을 뿐 들어가 볼 일 없던 분식집이었다. 분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우연치고는 반가운 발견이었다.
"오늘은 여기로 하자."
가게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문에 쓰여 있던 김밥과 라면을 시킬까 하다가 벽에 붙은 메뉴를 꼼꼼히 읽었다. 김치볶음밥이 눈에 들어왔다. 몇 초 고민하다 주인아주머니께 외쳤다.
"여기 김볶(김치볶음밥) 하나 주세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평소 점심을 먹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찰랑찰랑 차오르기 시작했다. 유쾌한 수다가 오가는 옆 테이블과 달리 딸랑 나 혼자지만, 대신 마음 속 감정들과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평소 동료들과 밥을 먹을 때는 놓쳐버린 즐거움이었다. 처음 맛 볼 김치볶음밥을 기다리는 설렘이 지글거리는 소리,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점점 커져만 갔다. 오랫동안 잊은 채 지냈던 감각이 와락 몰려들었다.
몇 평 남짓의 작은 식당은 낯선 여행지가 되었다. 나는 낯선 도시의 낯선 식당에서 처음 먹어볼 음식을 고대하며 기다리던 오래전 심정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경험하며 나를 만들어 가던 그때로 돌아갔다.
20,30대에는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았고 혼자 여행도 많이 다녔다. 물론 친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지만 여행지에서든 일상에서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럴 때 자기 자신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나를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 보게 된다.
많은 것이 처음 하는 경험이라 서툴렀지만 남이 주는 정보나 의견이 아닌 나의 감각과 의지로 선택하고 부딪히며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나를 알아가던 시절이었다. 선택에서 비롯된 작은 성공도 실패도 차곡차곡 쌓이며 내가 되었다.
요즘은 내 감각보다 남의 의견을 먼저 묻거나 찾는 게 습관이 됐다. 작은 선택조차 핸드폰을 열어 검색부터하고 별점을 찾아 그 정보에 의지한다. '남들 좋다는 거 하면 되지 뭘', '이 정도면 괜찮은데...'라며 경험을 쌓을 기회를 상실하다보니, 작은 선택 앞에서도 아득해지는, 취향도 의견도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은 내 선택과 의지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드디어 김치볶음밥이 왔다. 갓 볶아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밥 위에 깨소금이 듬뿍 뿌려져 있고 잘게 썰린 볶은 김치에는 윤기가 짜르르 흐른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적당히 떠서 입에 넣어봤다.
신맛 도는 묵은지로 볶은 밥이었다. 요즘의 유행처럼 단맛도 강한 매운 맛도 나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김장 김치로 볶아 살짝 간만 한 것 같은 자연스런 맛이었다.
각각 시킨 메뉴를 사이좋게 나눠 먹고 있는 옆 테이블에서는 일에서 개인사로 또다시 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평소 나의 점심시간도 저럴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라 누리는 외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나만의 점심을 누리고 있다.
누군가와 의견을 조율하고(대체로 맞추고), 먹는 속도를 신경 쓰며, 한정된 주제로 반복적인 대화를 하는 대신 밥에 집중했다. 한 번도 김치볶음밥을 먹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허기가 가득한 사람처럼 싹싹 비우면서 생각했다. 종종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멈췄던 나와의 대화를 이어나가 보자고. 잃어버린 나를 조금씩 되찾고 새롭게 발견해 보자고.
식당을 나섰다. 근처에 벚꽃 명소가 있는데 지금쯤이면 가을의 손길이 그 나뭇잎들을 노랗고 빨갛게 바꿔놓았을 것 같았다. 가는 길목, 아이스 바닐라 빈 라테와 스콘 하나를 포장해 손에 들고 걸었다. 배는 부른데 자꾸만 허한 기분이 들어 채우고 싶었다.
평소라면 곁의 사람들의 의견을 살피느라 주저했을테지만, 이젠 모처럼 하고 싶은 것이 떠올랐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금요일의 점심이 아닌가. 주말이 바로 코앞에 닥쳐와 있었다.
그곳에 다다라 늘어선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물이 다 들지는 않았지만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입안에서 달달한 바닐라 빈 시럽과 쌉쌀한 커피의 조화를 느끼며 떨어진 낙엽들 위를 천천히 걸었다. 스콘을 먹지 않았지만 어느새 허한 기분은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조만간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난 뒤 "우리 저쪽으로 산책하지 않을래?"라고 제안해 볼 생각이다. 늘 다른 사람들이 가자는데로 따랐지만 이제는 조금씩 내 의견을 말해 보려 한다.
더 짙게 물들 그날의 나무들을 상상하며 다시 왔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만약 내게 저 나뭇잎처럼 색깔이 있다면 분명 점심을 먹으러 나섰을 때보다 살짝 짙어지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