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준비하는 달, 11월이다. 요즘 사람들은 겨울을 준비한다고 하면, 두꺼운 외투나 스웨터를 옷장 깊은 곳에서 먼저 꺼낼 것이다. 오랜 옛날에는 땔감부터 준비했다. 겨우내 방을 따뜻하게 해줄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가는 것이다. 과거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땔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가스가 공급되는 도시 아파트에 살아, 보일러 실내온도만 올리면 언제든 가스배관으로 연료가 공급된다면 땔감 따위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 주택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도시가스가 아직도 공급되지 않는 곳이 있냐고? 물론이다. 상당히 많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은 곳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도시가스 이름에 도시를 넣은 게 도시에만 공급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을 들여다보면 이름을 괜히 저렇게 지은 게 아니구나 싶어 한숨부터 나온다.
지난 10월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개한 <도시가스 보급률 현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의 평균 도시가스 보급률은 76.9%에 그친다. 이 가운데 평균 보급률에 미치지 못하는 시도는 9곳이나 된다. 보급률이 가장 낮은 곳은 제주 지역으로 고작 11.7%의 보급률을 보인다. 그 다음으로 낮은 곳은 강원으로 54.1%, 전남 54.3%, 경북 67.1%, 충북 69.1%, 충남 71.1% 순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도시가스 보급률 차이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나, 여전히 유독 보급률이 뒤처지는 지방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난방을 할 때 무슨 연료를 사용할까? 주로 회색 가스통에 담기는 LPG나 등유다. 가스 보일러를 설치하면 LPG를 쓰게 되고, 기름 보일러를 설치하면 등유를 쓴다. 화목 보일러를 사용하는 경우 땔감인 나무를 준비해야 하고, 간혹 전기로 난방을 하는 집도 있다.
바야흐로 고유가 시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줄을 모르고, 유럽은 실내온도를 법적으로 지정하는 등 올 겨울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가계에 부담이 될까하는 염려에 여러 유류세 감축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연료인 휘발유와 경유가 이에 해당한다. 한때 차 끌고 다니기가 겁날 만큼 기름값이 올랐지만,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로 차는 이제 끌 만해졌다. 지난 7월부터 12월까지 유류세 인하는 역대 최대 폭인 37%에 달한다.
가계 부담을 걱정하는 정부의 지극한 마음은 난방비까지 뻗어나갔다. 동절기 난방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도시가스인 LNG, 그리고 LPG에 대해 내년 3월 말까지 할당관세 0%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LNG 현물가격은 지난해 1분기 100만BTU(열량단위)당 10달러에서 올해 3분기 47달러로 급등했다. 이에 따라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은 올해 들어서만 4차례 인상돼 3월 메가줄(MJ)당 14.224원에서 10월 19.960원으로 40% 가량 올랐다. 이번 할당관세 인하로 가구당 월 1400원 수준의 도시가스 요금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난방비 인하 정책에서 빠진 등유
의아한 건 정부의 이 같은 꼼꼼한(?) 가계 부담 완화 정책 어디에도, 등유에 대한 인하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등유는 도시가스가 보급되지 않은 지역의 주 난방 연료 중 하나다. 지방의 시골 주택에 산다면 등유로 겨울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난방비 인하 정책에 등유는 빠져 있다. 등유의 경우 원래 낮은 기본세율을 적용받아 리터당 90원의 세금이 붙는데, 현재는 탄력세율을 적용받아 리터당 63원의 개별소비세가 적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등유가격은 인하 정책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개별소비세는 현재 0원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1월 4일 기준 전국 실내등유 평균값은 1602.76원이다. 지난해 같은 날의 실내등유 전국 평균값은 1067.74원이었다. 1년 만에 50% 넘게 급등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내등유는 한번에 한 드럼, 즉 200L를 주유한다. 가정에 따라 사용량 편차가 있긴 하나, 보통 한 드럼을 넣으면 한 달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이를 토대로 보면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는 한 가정의 동절기 난방비는 한달에 무려 32만 원이 넘어간다. 11월을 제외하고 12월부터 3월까지만 난방비를 계산해도 한 가정당 이번 겨울 동안 무려 128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지방 시골 주택에는 주로 누가 살까. 연세가 많은 노인이 주로 거주한다. 지역 특성과 연령을 고려하면 월별 수입이 일정치 않은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아파트는 집이 위아래 옆으로 밀집돼 있어 난방효율이 좋은 편이다. 때문에 겨울철 실내 난방을 하지 않아도 일정 온도가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주택은 다르다. 사방으로 뚫려있기 때문에 여름은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원하지만 겨울은 무척 추울 수밖에 없다. 아파트처럼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기 어렵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등유에 대한 유류세 지원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의 주범인 자동차에 들어가는 휘발유나 경유 유류세는 대폭 인하하면서, 정작 서민들이 겨울을 나는데 필수라고 할 수 있는 등유의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는 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는 도시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애초에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겨울을 목전에 두고 등유 가격에 시름이 깊어가는 서민들이 많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