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청년여성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이에 호응해 ‘페미니스트’를 내세우는 여성청년 정치인들의 도전과 실패도 가늘지만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여성혐오에 기초한 반페미니즘 백리시가 기승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6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며 출마한 후보들이 50여 명이나 존재했고, 이들 중 절대 다수가 여성청년이었다. 이들 여성청년에게 페미니즘과 성평등은 자신이 하고 있는 그리고 지향하는 정치를 설명하는 핵심 가치이자 키워드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에게 한국정치의 구조와 문화는 페미니즘/성평등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보다는 반대와 배제, 억압의 장이며,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 공간이다. 이로 인해 정치를 떠난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들도 있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는 정치인으로서 최악의 조건이고,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은 이 모두를 갖고 있다. 반대로, 이들은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를 모두 포괄하고 대표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배제의 정치가 아닌 포용의 정치가 가능한 사람이다. 이들이 해왔던 하고 있는 정치가 페미니스트 정치를 구성하는 주요내용이 될 수 있다. 이에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지금 여러 정당에서 페미니스트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여성청년 정치인 9명을 만나 이들이 생각하는, 만들고 싶은 페미니스트 정치의 내용을 기록해 소개하고자 한다.[기자말] |
*이가현(페미니즘당 창당모임)의 정치활동경력
: 알바노조 활동가, 노동당 당원,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2020년 21대 총선 동대문구갑 무소속 후보 출마, 2021년 4·7 재보궐선거 팀서울 성평등부시장 후보 출마,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
이가현: "알바노조 활동을 할 때 선배들이 공동의 목표를 정치(활동)를 통해 이루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정당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노동당에 가입을 했고, 청년학생위원회와 마포 당원협의회에서 정당활동을 시작했다."
- 페미니즘정당(이하 '페미당')을 창당하려 하고 있다.
이가현: "당시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여성당원 캠프나 강의를 개최했는데 당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여성위원회 활동이 중앙당 차원의 변화, 즉 남성 중심의 인적 구성이나 문화의 변화로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중장년 남성당원과 청년 여성당원 간에 감수성 차이가 커서 크고 작은 성희롱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지만 문제제기하기도 어려웠고 당 차원의 대책 마련도 되지 못했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즈음 청년 남성당원의 데이트폭력 사건들도 공론화됐다. 그리고 당직선거에서 정규직 해고노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당대표에 출마했던 남성후보에게 '여성청년 비정규직을 대변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했는데 "내가 그들을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역차별"이라는 방식으로 답했다. 당시에는 노동을 이야기할 때 여성 노동자가 배제된다고 느꼈고, 당의 인적 구조와 문화를 성평등하게 바꾸지 않고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동당 내에서 젠더의제나 페미니즘 관점의 노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이게 됐고, 이 사람들과 노동당을 탈당했고, 당 밖의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페미당을 준비하게 됐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게 더 확장성이 있다"
- 페미당이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이가현: "페미니즘은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다. 페미니즘 정치는 소외된 사람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세계관을 풍부하게 확장시킨다. 페미니즘이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페미니즘을 여성의 일로 한정해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전문성을 가지고 그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바꿔내려고 시도하는 게 더 확장성이 있다."
- 페미당이 아직 창당되지 않았다. 현재는 정치실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지금의 시도가 어떤 의미가 있나.
이가현: "이전에는 정의당이나 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들한테 젠더의제를 다뤄달라고 요구했다면, 이제는 페미당을 만들어 이 안에서 젠더의제를 다루면 되겠구나라는 상상과 실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페미니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다른 정당에서 고군분투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와 당원에게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여러 정당의 페미니스트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아직 창당을 하지 못한 페미당의 현 상황은 정당법과 같은 정치제도가 소수 정치집단의 세력화를 막는 제도적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정당으로 등록을 하려면 5개 광역시/도에서 각 1000명씩, 전체 5000명 이상을 당원으로 모집해야 하고, 반드시 수도에 중앙당 사무소를 두어야 한다. 왜 5개 지역이고, 5000명을 모아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등록을 못하면 정당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으니 사실상 정당 설립의 자유가 제한받고 있는 셈이다."
- 페미당보다 여성의당이 먼저 창당됐다.
이가현: "여성을 위한 여성의 정당을 만들려는 초기단계 모임에 참여했는데 페미당의 정체성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 페미당 활동가들도 여성의당 창당과정 초반에 참여했는데 함께 정당 목표를 설정하는 모임에서 참가자 몇 명이 '젠더론 아웃' 등의 혐오발언을 했다. 여성의당 창당주비위 일부에서는 이것이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던 것 같지만 구성원들의 일탈로 치부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여성이라는 빈 기표에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으니, 일단 페미당도 합류해서 창당한 후에 바꿔보자는 식이었다.
또한 먼저 창준위에 돌입한 페미당과의 통합절차에 있어서도 페미당을 존중하지 않았다. 페미당 활동가들이 여성의당에 합류한다 해도 목소리를 내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여성의당으로의 일방적인 통합을 주장하는 여성의당 창당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당원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당원전체회의를 열었다. 당원들의 논의와 투표를 통해 여성의당 창당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당을 그릇이라고 했을 때, 여성의당은 일단 그릇부터 만들자는 목표가 있었다면, 페미당은 어떤 그릇을 만들어야 할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 부분이 달랐고, 그래서 여성의당이 먼저 창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찌됐든 여성의당이 여성정치 세력화의 구심점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개혁을 외치는 대안세력이라면, 조직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 했을 때 제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의당에서 있었던 여러 논란들을 바라보면서 문제를 인정하고 책임지려고 한다기보다는 문제를 감싸고 정당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당은 여성을 대표하겠다고 나온 집단이었다. 때문에 모두가 이들을 대안세력이라고 인정할 수 있도록 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페미당 창당을 위해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
이가현: "저를 부르는 곳이나 필요로 하는 곳에 열심히 참여하고, 그 공간에서 기회가 되면 페미당 홍보를 한다. 제가 감독이나 당사자로 참여한 영화들이 몇 편 있는데 그 영화와 관련된 상영회에 참여해 정치 이야기하면서 페미당도 언급한다. 그런 자리를 통해 회원이 한두 명씩 늘어가고 있다.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페미당 강령이 좋아서, 논평이 좋아서, 정치인이 좋아서 가입하는 사람이 한 사람씩 늘면서 창당이 될 것이고, 그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페미니즘이라는 선명성이 더 필요한 시기"
- 2020년 총선과 2021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가현: "어렸을 때부터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2018년 지방선거 때 신지예씨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전면에 걸고 나온 것을 보면서 '저렇게도 정치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봤다. 20대가 끝나기 전에 출마를 해서 젊은 여성이 페미니스트 정치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이 과정에서 젊은 여성들이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는 구호는 여전히 시민들에게 유효한가.
이가현: "페미니즘에 기초한 우리의 언어가 페미니즘에 관심 없거나 모르는 유권자의 언어와 다르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선거운동 당시에 '평등'을 이야기하니, '그거 공산주의 아니야?'라고 말하는 분이 계셨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있어 페미니스트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기 어렵다고 느꼈고, 발언이나 정책, 행동에 페미니즘 관점과 성평등 가치를 녹여내는 게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미니스트들이 선명성을 드러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페미니즘이라고 선명하게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도 하고, 다른 후보와 차별성도 가질 수 있다. 또한 페미니스트 후보를 견제하고자 하는 후보들로부터 성평등(정책)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팀서울'의 득표율이 좋지 않았다.
이가현: "'미투선거 시국회의'를 진행하면서 4·7 재보궐선거를 '미투선거'로 규정하고, 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페미니스트들 내에 형성됐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80여 명의 청년여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출마로 결론이 났다. 제 개인적으로 '팀서울'의 목적은 보궐선거가 전임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때문에 열린 선거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책임져야 할 세력이 책임지지 않는 것을 문제제기하는 데 더 중요한 목표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득표율이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니었다."
- 주목과 지지를 받았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게 된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이 있다.
이가현: "갑질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매번 문제제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발생한 후에 제대로 대처를 하는 게 필요한데 대부분 대처를 잘하지 못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정치생명이 끝나는 방식으로 대부분 처리되었던 것 같다. 정치인 개인의 잘못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조직 차원에서 이런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중 앞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총알받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런 정치인을 정당이 제대로 보호해주고 있을까. 당 안팎의 모든 젠더의제를 페미니스트 정치인 혼자 감당하게 되면, 개인의 생존이 곧 페미니즘의 생존이 되어버리고, 개인의 실패가 곧 페미니즘의 실패가 되어버린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게 되고,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 지워지는 분위기가 안타깝다."
청년여성을 결집시키는 새로운 구심력 필요
- 청년여성의 최근 (온라인) 페미니즘 경향을 어떻게 보고 있나.
이가현: "여성의당을 지지했던 청년여성이나 대선 이후 민주당에 가입했던 청년여성 모두 결집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동시에 흩어진 청년여성을 결집시킬 수 있는 다른 구심점도 보이지 않는다. 트위터의 특성상 분노할 때 결집이 일어나는데 분노를 통한 결집은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른 대안 모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어떤 지역이든 청년여성이 각자의 자리와 위치에서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참고할 수 있는 정보나 교류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소통의 창구 자체가 없다. 이런 역할을 여성단체나 정치인이 해야 하지 않을까."
- 정치인으로서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이가현: "여성과 청년의 정치참여를 어렵게 하는 제도적 장벽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현재 시민단체도 정당도 아닌 둘 사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이 과정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주고 있는 측면도 있고, 페미니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계속 버티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주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 자신을 계속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이가현: "활동을 통해 상호 간에 쌓이는 동료애, 애정, 친밀감, 신뢰 등이 동력이 된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 속에서 저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그 믿음으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