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4년 만에 하원 다수당 자리를 되찾았으나, 기대한 만큼의 압승은 아니었다.
8일(현지시각)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개표가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공화당이 근소한 차이로 하원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미 NBC 방송은 한국시각 10일 오전 5시 기준으로 공화당이 하원에서 222석을 차지하며 과반 확보를 위한 218석을 넘겼다고 집계했다. 민주당은 213석을 확보했으며, 총 215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상원은 총 100석 가운데 민주당이 48석, 공화당이 49석을 차지한 가운데 최대 격전지로 꼽힌 조지아주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나오지 않아 12월 6일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되면서 다수당 결정도 미뤄졌다.
만약 나란히 50석씩 나눠 갖게 되면 당연직 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기 때문이다.
공화당 압승 예상됐으나... 낙태권 논쟁 덕에 민주당 선전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은 일단 하원을 공화당에 내주게 됐다. 그러나 중간선거가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진한 지지율을 감안할 때 예상보다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AP통신은 "상원 결과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압승은 아니다"라며 "참패를 대비했던 민주당은 오히려 고무된 분위기"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40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 비호감 대통령 등 민주당에 끔찍한 여건 속에서도 공화당은 최소한의 승리만 거뒀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보수화된 연방 대법원이 지난 6월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은 것이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며 "50년 넘게 당연한 권리로 누려오던 낙태권이 위태로워지자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할 이유를 찾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민주당의 선전 덕분에 조기 레임덕을 피할 수 있게 됐지만, 국정 운영이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새로운 하원의장으로 유력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까지 언급하며 강공을 예고했다. 공화당에서도 '매파'로 꼽히는 그는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지원, 이민 정책 등도 손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다만 공화당이 압승을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행정부의 발목을 잡다가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하원에서 의석수 격차가 크지 않으면 공화당의 행동 반경도 제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 잠룡' 디샌티스의 급부상... 트럼프 '당혹'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고, 2024년 차기 대선 출마로 연결하려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당혹스러운 결과다. 자신이 지지했던 공화당 후보들이 탈락하거나 고전하면서 당내 입지가 줄어들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통 보수층의 지지를 업고 '트럼프 2.0', '합리적인 트럼프주의자' 등으로 불리며 트럼프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20%p 가까운 득표율 차로 대승하면서 공화당 경선 구도를 뒤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당일 밤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개표 방송을 시청하는 파티를 열었으나,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자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고, 연설도 없이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CNN 방송은 "이번 중간선거의 최대 승자는 디샌티스 주지사"라며 "그의 압도적인 승리와 득표율은 전국 선거(대선)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강조했다. 반면에 최대 패자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꼽았다.
<워싱턴포스트>도 "선거는 어떤 정당이 이기느냐가 중요하지만, 어떤 후보가 이겼는지가 중요할 때도 있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디샌티드 주지사가 경합지인 플로리다에서 거둔 압승은 그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강력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라고 강조했다.
다만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게 되면서 지난 1월 6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연방 의사당 난입 사태를 조사하는 '1·6 폭동 조사위원회'를 해체할 길이 열렸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15일 중대 발표를 하겠다"라고 예고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날 선거 결과로 기세가 한풀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