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작 <꽃>
가을, 시리게 푸른 날에 문선미 작가만의 따뜻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 '시를 그리다 꽃'이 서해미술관(관장 정태궁)에서 11월 14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
문 작가는 "올해 김춘수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그림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을 준비해 왔고,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작업은 계속 이어져 왔다"며 "시인이 존재적 탐구와 가치를 찾던 시기에 쓴 대표적인 시 <꽃>은 나에게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해왔고 나는 긴 시간 동안 시를 읽으며 머뭇거려야 했다"라고 작가노트에 고백했다.
그림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던 그 질문 뒤에는 늘 '시인은 존재의 관념을 담을 유추로 릴케의 장미를 가슴에 안고 집념의 포로가 됐다. 그는 그것이 실재를 놓치고, 감각을 놓치고, 지적으로는 불가지론에 빠져들어 끝내는 허무를 안고 뒹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적었다.
시인 김춘수는 대상의 즉물적 제시, 후반에는 허무를 무의미 시로 승화시킨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 미래에 한 축을 담당했다. 시인과 문 작가와의 만남이 교차하는 지점은 존재의 깊이를 관찰하고 확인하는 시 <꽃>으로 귀결된다.
문선미 작가는 "나의 그림 속 인물이 들고 있는 꽃 역시 유한한 삶 속에서 완미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의 꽃"이라며 "그렇다면 그간 나를 찾기 위함의 하나로 너를, 우리를 만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를, 우주를 뒤져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선미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했고 서울 교보문고에서 '김춘수 탄생 100주년 시 그림전'을 열기도 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서산시 첫 공식 미술관인 서해미술관(충남 서산시 부석면 무학로 152-13)에서 휴일 없이 관람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