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이다> 중에서)
지난 16일 충남 홍성문화원 강당에서 '노무현이 남긴 숙제, 정치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한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는 오는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들이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을 갖고 반드시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는 이날 강연에서 유럽의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모델로 제시했다. 또한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표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1등만 당선되는 구조라 표심이 왜곡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선거구 쪼개기로 2인 선거구가 늘면서 무투표 당선도 속출했다. 물론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양당 체제는 더욱 공고화됐다.
이와 관련해 하변호사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자가 508명에 달했다. 두 명 뽑는 선거구에서 거대 양당이 한명씩 추천을 하다 보니 선거가 필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방선거뿐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표심 왜곡' 현상은 심각하다. 국민의힘이 영남을 싹쓸이하고, 반대로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한다.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투표 결과가 반복되는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선거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승자독식, 지역주의, 표심왜곡이 나타나지 않으려면 다당제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며 "300명의 국회의원이 있다면 300명 전체 의석을 득표율로 나눠주는 제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표를 계산하는 방법이 바뀌면 결과가 바뀔 수 있다. 지역주의는 깨지고 정당이 받은 의석수대로 나뉠 수 있"고 덧붙였다.
하 변호사는 선거제도 개혁의 대안으로 독일식 연동형비례대표제(독일식 정당명부제)와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소개했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 당선된 당선인 숫자를 그대로 인정한다. 다만, 정당 득표율에 따라 선거 결과를 보정하는 과정에서 비례대표 의석수가 기존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국회의원수를 늘리는 것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실제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하승수 변호사는 "독일은 지역구 299명 비례대표 299명을 뽑는데도 결국 비례대표 숫자를 더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시민들과 선거제도 개혁을 이야기하다가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반대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의석수는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총 300석이다. 현 의석수 그대로 적용 가능한 모델은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검증된 권역별 비례대표제이다. 하 변호사가 선거제도 개혁 '대안2'로 꼽은 모델이기도 하다. 이 모델은 선거구를 권역으로 묶고 1개 선거구에서 6명 이상을 선출하는 제도이다. 물론 조정의석을 통해 선거결과를 보정한다.
하변호사에 따르면, 덴마크에는 175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이 중에 135석을 권역에서 뽑는다. 나머지 40석은 조정의석이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해도 의석을 배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가령 1개 선거구에서 10명을 뽑는다고 가정할 때 10%의 지지율을 받아야 1명의 의원으로 선출된다. 10% 미만의 지지를 얻은 정당은 국회의석을 한 석도 받지 못할 수 있다. 이 부분을 40석의 조정의석에서 배분하는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대통령 선거도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는 "50%가 안 되는 지지율로 당선돼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대표제도가 필요하듯이 대통령도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 결선 투표가 도입됐다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도 바뀌었을 것"이라며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37%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결선 투표제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