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한국어를 못한다.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원래 언어도 더 쉽게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 게다가 고령의 나이도 한몫을 했으리라. 혹자는 서로 양쪽 언어를 다 써야 공평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부부간에 공평을 따지지 않는다. 부부는 거래를 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더 잘하는 부분으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한국어 전수하기를 접은 지 오래였지만, 이번에 한국에 가면서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본 문장 두 가지를 가르쳤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어디 가든지 사용할 일이 너무나 많은 이 두 표현을 남편은 두 달 전부터 꾸준히 노력해서 한국에 갈 즈음해서는 제법 그럴듯하게 발음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한국에서는 이 두 문장을 말할 일이 많았고, 이 문장들 때문에 때론 칭찬도 들었다.
"오, 한국말 잘하시네요!"
하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물론 불가능했다. 내가 필요에 따라 옆에서 통역을 해주었고, 어차피 둘이 계속 같이 다녔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보디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내가 방에 들어가 어머니의 재킷을 수선하는 동안, 남편과 어머니는 손짓과 표정을 통해 뭔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남편이 뭔가를 집어 드리기도 하고, 사진을 보여주며 함께 웃기도 하였다. 언어가 달라도 서로 아끼는 마음이 있으면 이렇게 신기하게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와 맞닥드릴 때에는 엉뚱한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어머니와 동생네 식구까지 모두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 식당은 정육점 주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가격 대비 고기 양이 넉넉하고 맛도 좋았다. 물론 인심도 좋았고... 우리 식구들은 모두 푸짐히 잘 먹었고, 많이 웃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산할 때가 되면 늘 그렇듯이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꼭 자기가 사고 싶다고 했다. 결국 어머니가 양보하시기로 하고 남편이 계산대로 갔다. 카드로 하는 계산이니 뭐 그리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싶어서 혼자 하게 두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계산 하고 영수증 필요하냐고 묻는 줄 알고 'No'라고 대답했는데 영수증을 주더라. 그럼 나한테 도대체 뭘 물어본 거지?"
식사가 끝나고 나올 때 계산이 끝나면 보통, "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묻곤 해서, 남편은 이번에도 대충 그런 말인 줄 알고 "됐다(no)"고 했다는 건데, 그런데도 직원이 영수증을 주어 남편은 직원이 무슨 말을 했던 것인지 계속 궁금해했다. 나는 뭔가 오해가 생겼을 것 같아서 계산한 직원에게 가서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여쭸더니 'No'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면서, 상처받은 듯 장난스레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에게 나는 재빨리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야했다. 남편은 영수증을 달라는 말인 줄 알고 그런 것이라고.
사실 남편과 식당에 다니면, 음식을 먹어 본 남편의 반응을 많이 궁금해하는 편이었다. 특히 시내가 아닌 경우 외국인이 방문하는 일이 드물다보니, 저 외국인의 입맛에 우리 식당 음식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는 것 같다.
몇 번씩 와서 괜찮냐고 체크해주기도 하고, 젓가락으로 잘 먹을 수 있는데도 포크가 필요하냐고 묻기도 한다. 아마 그 직원도 남편의 반응이 궁금했으리라. 의문이 밝혀지고 우리는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해는 언제나 어디서나 생길 수 있다
남편도 내가 그 사람의 오해를 풀어줘서 다행이라고, 집에 오는 길에 몇 번씩 말을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오해는 언제나 생긴다. 꼭 외국어가 아니더라도 사실, 같은 언어끼리 대화를 해도, 각자 사용하는 표현이 다르다 보면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오해가 생긴 것을 안다면 재빨리 오해를 풀도록 다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뒤늦게 정정하자니 민망하다고 모르는 척 지나가면 나중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오해가 생겼는지 모른다면, 비슷한 오해가 반복되면서 앙금이 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격에 따라 나나 남편처럼 그 자리에서 반드시 오해를 풀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편한 마음에 그 자리를 황급히 피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정말 힘들다. 오랫동안 좋았던 관계도 작은 오해로 말미암아 서먹해지고, 결국은 멀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영어로 남편과 대화하면서도 많은 이해를 서로 나누고, 또 때로는 오해가 생기기도 하듯, 우리는 사실 모두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셈이다.
각자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쭉 다져온 언어 실력으로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 불가피하게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상대가 누구든 오해는 풀면서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같은 글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