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
잔소리 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이 악물고 참는 부모는 있을지 몰라도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잔소리는 결국 덕담이고 조언이고 인생을 좀 더 살아온 인생 선배의 경험담이지만, 아이들은 불필요한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 많이 혼났다. 예민한 아버지였지만 훈육에 있어서는 이성적이었다. 매를 댈 때도 신문지를 종아리에 대고 회초리로 때렸다. 잘못한 것만 알면 된다는 취지였다. 두꺼운 솜바지 위에 매를 대기도 해 전혀 아프지 않았다. 다행이었지만 역효과도 있었다. 누나와 아픈 척 연기를 펼치다 둘이 눈이 마주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또 혼났다.
잔소리 들을 일이 별로 없었던 누나와 달리 나는 아버지께 많은 훈계를 들었다. 돌이켜 보면 참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자라는 동안 피가 되고 살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섣부른 감정을 배제한 진심 어린 아버지의 조언이자 걱정이었다.
잔소리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언제 끝나지?', '친구들 기다리는데 늦겠네...' 등 잡생각은 이어지는 시간과 비례해 늘기만 했다. 가끔은 편지로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 따듯한 의도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친구가 6학년 딸에게 심각하게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딸이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가 흥분해서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말하는 모습이 웃겼다고. 역시 잔소리든 훈화든 연설이든 길어지면 역효과다.
글로 잔소리를 예습하는 아빠
아이들이 커갈수록 하고 싶은 말은 차고 넘친다. 입 안에서 늘 맴돌지만, 섣불리 내뱉지는 못한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듣기 싫은 마음도 십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다. 아빠의 직무 유기라고 생각한다. 분노가 피어나면 내적으로 심한 갈등이 일어난다. 충분히 내면과 싸움을 마친 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발사한다.
순간적인 감정에 상처를 주고 아이들과 사이가 멀어질까 봐 잔소리에도 '노하우'를 담으려 노력한다. 일단 삼십 분 후, 한 시간 정도 후에 이야기 하자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 잘못은 사라지지 않지만, 절정에 치달았던 화는 충분히 가라앉을 시간이다. 특히 반복되는 잘못일 때는 더욱 화가 난다.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도 똑같은 잔소리를 듣는 것도 모두에게 곤욕이다.
최근 아이들 귀가 시간이 늦어 좋은 말로 많이 타일렀다. 태권도가 오후 10시에 끝나는데, 11시가 다 되는 시간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늦게 들어와 엄마와 한바탕을 벌인 다음 날, 아이들이 연락도 없이 또 늦었다. 휴대폰도 꺼져 있었다.
걱정되고 초조했다. 11시 반에 들어와 하는 말이 인근 아파트 야시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작심삼일도 아니고 어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은 아이들에게 화가 치솟았다. 막말이 쏟아질 거 같아 둘 다 씻고 와서 얘기하자고 했다.
아이들과의 대화를 기다리는 동안 메모장에 딸, 아들 이름을 각각 적고 하고 싶은 말의 요점만 남겼다. 아이들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도록 짧게 끝내려는 노력이다. 우선 잘못한 내용을 요약해 전했다. 늘 반복되던 일이라 말하기 수월했다. 이전에 좋게 타일렀다는 것을 알리며 괜한 잔소리가 아니라는 걸 상기시켰다.
다음번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룰을 정했다(태권도를 그만두든지, 오후 8시 부로 옮기는 것, 8시는 초등부다). 그리고 너희가 미워서가 아니라 잘못한 행동만을 나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이 중요하다. 억울함이 있을지 모르니 아빠가 오해한 부분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잘못을 인정했고, 일주일 동안 오후 8시 부에 나가는 걸로 책임을 지기로 했다.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아빠의 만족, 아빠의 착각
요점만 담은 최대한 짧은 잔소리. 너무 아름다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메모장을 힐끗 보면서 잔소리하는 내 모습이 웃길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래! 감정적이지 않게 잘했어!'라며 스스로 마음에 위안을 얹는다.
착각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침착하게 타이른 다음 날 아이들은 "어젯밤에 아빠가 난데없이 화를 냈어요!"라고 요약해 엄마에게 전했다는 걸 들었다.
결국 엎어치나 매치나 아이들에게는 잔소리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좋은 소리도 계속 들으면 무감각해지고 싫은 소리를 매번 듣기 싫은 게 사람이다. '아빠의 난데없는 화'에 순간 욱! 했지만 섣부른 감정으로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며 서운함을 삼켰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잘못에 대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가 참 어려운 과제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감정 그대로 전할 때도 있었고, 참고 참다가 한번에 터뜨린 적도 있었다. 화내는 아빠 앞에서 보이는 아이들 눈물은 잘못을 뉘우친다기보다 서운한 감정이 더욱 컸을 것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들, 딸의 감정은 더 예민해질 때가 되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충분히 알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기도 하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잔소리를 퍼부으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뻔한 결과가 나타날 뿐이라는 걸 잘 안다.
아동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는 "아이의 진정한 마음을 안다면 세상의 어떤 부모도 아이를 오해하지 않아요. 아이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에 큰 힘을 얻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알아주길 원하는 부모가 많다. 그래서 잔소리가 더 늘어만 가는 게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수십 년 전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한다. 아이들도 시간이 흘러야 아빠의 진짜 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촉하지도 다급하지도 않아야 서로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다.
학창 시절이 여전히 선명하다. 아버지께 혼나면 며칠간 아버지를 슬슬 피했던 일도 떠오른다. 비록 아이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잔소리를 글로 적는 연습을 하는 건 아이들과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히려는 X세대 아빠의 노력이다. 과거를 수시로 소환하면 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아이들이 마음에 괜한 오해나 상처를 새기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오늘도 '잔소리 노하우'를 업그레이드 해본다. 세상 어려운 직업, '아빠' 역할에 조금 더 충실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