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
내가 믿을 거라곤 유튜브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수영 강습 받는 시간을 활용해서 운동을 하자니 자유수영 밖에 선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스승 삼아 수영을 익히자!라는 당찬 각오로 자유수영을 등록했다. '비록 수영은 못하지만 물에 뜨는 건 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수영 가기 전날 엔 유튜브를 검색했다. 자유형 팔 돌리기, 자유형 호흡법 등 지금 나에게 필요한 동작을 찾고 몇 번씩 영상을 돌려봤다. 처음엔 자세 잡는 법을 배우며 방법과 순서를 머릿 속에 새겼다. 다음엔 디테일한 동작을 하나씩 따라해 봤다. 물 속에 있다고 상상하며 내 몸을 움직였다.
수영장에 도착하면 전날 유튜브로 배운 동작을 연습했다. "고개를 어깨에 기대며 옆으로 눕듯이 몸통을 돌립니다. 자연스레 얼굴이 물 밖으로 나가면 입으로 숨을 들이 마시고 오른팔과 함께 제자리로 옵니다." 머릿속에서 영상을 재생하며 하나씩 따라했다.
유튜브에서는 물 속 호흡법을 단 두 문장으로 설명했다. 동작은 단순했고, 그냥 따라하기만 하면 됐다. 참 쉬웠다. 계산대로라면 쭉 뻗은 팔에 머리를 기대고 옆으로 누운 자세로 여유롭게 레인 끝에 닿아야 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옆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푹 가라 앉는 몸을 가누지 못해 허우적거리며 민망한 자세를 연출했다.
호흡법 하나를 익히는데도 몇 주가 걸렸다. 고개를 자연스레 어깨에 기대기, 그 상태를 유지하며 옆으로 몸을 돌리기, 가라앉지 않고 옆으로 누운 자세를 유지하기, 다시 몸을 제자리로 돌리기 등 호흡 동작을 자잘하게 나누었다. 몸이 하나의 동작을 배우고 기억하는데만도 여러 날이 걸렸고, 이마저도 완벽하지 않았다.
수영을 빨리 배우고 싶어 매일 수영 유튜브를 끼고 살았다. 그만큼 수영 실력이 빠르게 늘 줄 알았다. 머리로 이해 한다고 몸이 수영을 잘 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영상을 보고 빠르게 진도를 뺀다고 해도 내 몸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물 속에 들어가면 머리로 배운 건 모두 제로였다. 이론과 실제를 오가며 알게 됐다. 수영을 잘하고 싶다면 유튜브를 볼 시간에 물 속에 뛰어 들어야 했음을!
내가 만든 것만이 나의 것이다
물 밖에서 배운 수영을 말하다보니 애증의 영어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영어는 내게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였다. 영어가 필요한 직장에 취직할 것도 아니고, 영어 못해도 내 삶은 불편이 없는데 왜 그렇게 포기가 안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엄마가 되어 또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엔 영어 공부하는 아이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어떤 공부를 시작할 땐 책부터 찾아본다. 먼저 시도해 본 사람의 이야기,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이다. 영어도 그랬다. 영어 공부에 성공했다는 책은 모조리 읽기 시작했다. 듣기만 했는데도 귀가 뚫리고 입이 트였다는 말에 솔깃했고, 골치 아픈 영문법 없이도 영문법을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에 팔랑거렸다.
"방법이 조금 틀려도 끈기가 있으면 성공하나 방법이 좋아도 끈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영어 공부법 탐독 끝에 만난 백신 영어라는 책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방법만 찾고 정작 실천하지 않는다는 맥락의 글이었다. '너 말이야. 너!' 공부는 안 하고 영어 공부법만 탐하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 길로 영어 공부법을 말하는 책과 이별했다.
바로 영문법 책을 사서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든 문장을 영작했다. 매일 영어 원서를 소리 내어 읽고, 영어 일기를 써 나갔으며,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책에서 배운 영어 공부법을 적용하기 보다, 영어를 익히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닥치는대로 시도하고 몸으로 익히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이렇게 영어 실력을 올리는 노력을 하며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놀이터에서 만난 노란 머리 아이의 부모와 수다도 떨어보고, 여행 박람회에서 외국인 가이드에게 원하는 질문을 하며 무려 30분이 넘는 긴 대화를 해 보기도 하고, 서울에 놀러온 외국인 친구의 투어 가이드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외국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남의 영어 공부 수기만 쫓았더라면 전혀 얻을 수 없는 경험이며 능력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알게 됐다. 책에서 말하는 영어 공부법은 그들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님을. 나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물 속에 뛰어들 듯 풍덩 그 세계로 뛰어 들어 하나하나 내가 얻어내야 한다는 것을.
몸이 알아야 진짜다
"접영 한 번 해 보세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요?"
"그럼 안 하실 거예요?"
독학으로 수영을 배운 후 처음으로 강습에 갔다. 실력 파악을 위해 네 가지 영법을 한 번씩 해 보라 하셨는데, 접영에서 막혔다.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물만 먹다가 포기 했던지라 해 본 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했다. 다른 영법을 충분히 잘하고 접영도 본게 있으니 가능할 거라며 강사님은 무작정 출발을 외쳤다.
못한다는데 왜 자꾸 그러나 싶었지만 열심히는 했다. 영상에서 본 기초 자세, 다른 사람들이 멋지게 물을 차고 나가는 모습 등을 떠올리며, 돌고래가 된 것처럼 두 다리로 물을 찼다. 계속 발로 물을 밀다보니 무언가 알 것 같았다. 두 발이 물을 누르고 올라가는 느낌, 몸이 S자를 그리며 웨이브를 타는 느낌, 두 팔로 동시에 물을 밀어내는 느낌과 그 순간 몸이 앞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온 몸에 전해졌다. 오! 이건가봐!!
잘 모르겠던 감각들이 밀려옴과 동시에 평영을 배울 때가 생각났다. 평영은 발바닥으로 물을 밀어내는 능력이 관건이라 했지만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그 느낌을 알 수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나고 평영이 익숙해진 다음에야 그 설명과 느낌을 이해하게 되었다.
몸으로 배우는 일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백번 설명을 해봐야, 머리가 아는 것이지 몸이 아는 것이 아니니까. 강사님은 물 속에서 직접 부딪치며 얻는 감각이 진짜란 걸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연말 결산 시즌을 맞아 한 해를 리뷰하자니, 지나간 일들이 한 올 한 올 일어난다. 특히 배움에 관한 생각들인데, 올해의 키워드가 배움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배웠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지식과 정보를 흡수했는데, 공부하러 다니느라 피곤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분주히 움직여 얻은 게 무어냐는 질문엔 마음이 무겁다. 지난 1년의 나는, 수영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유튜브만 반복해서 보든, 영어를 빨리 배우고 싶어서 남의 공부법만 탐하든, 과거의 나와 별 다를 게 없어서다. 내가 원했던 건 머릿속을 꽉 채운 지식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공부에 열심인 나에게 왜 현장에 뛰어들지 않느냐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다시 보니 '뛰어들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힘들고 싶지 않아서'가 나의 진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진심을 마주하며 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음을, 뛰어들어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다시 시작하기 좋은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uccessmate) 및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