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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4일 오후 2시 25분]

카톡에서 내 생일을 안 보이게 한 지 두 해째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생일이 연동되면서 생일이 마치 '○○데이'처럼 상품화 돼 버린 데 대한 반항심이 있다. 두 번째는 회사를 그만둔 시점부터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기에 선물 없이 축하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애매한 사이까지 내 생일이 동네방네 알려지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이 전국민 메신저는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을 모두 '친구'라고 눙쳐버리면서 '생일인 친구'를 무려 최상단에 보여준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의도는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친구라고 묶인 사이란 일로 만난 사이, 기억 안 나는 모임과 동호회에서 한 번 만난 사이, 연락 안 한 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지인 사이, 전 남친과 전 여친 사이 등이라 속사정이 아주 곤란한 것이다. 

이미 주변에는 조용히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꺼둔 사람들이 있었다. 어려운 사회와 이웃을 생각해 자기 자신만 축하받는 무드가 되고 싶지 않다는 사회운동가 같은 사람도 있고, 아예 알림 서비스가 나왔을 때부터 꺼두고 한 번도 켠 적 없다는 반골들,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생일 알람이 안 뜨면 어떻게 될까?
 
 카카오톡 '친구의 생일을 확인해보세요'
카카오톡 '친구의 생일을 확인해보세요' ⓒ 카카오톡 캡처

알람을 끈 첫 해는 거의 사회 실험을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될까? 호기심이 앞섰다. 타인의 생일은 굳이 신경 쓰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365일 중 하루일 뿐이다. 가족 연락처도 기억하지 못하고 핸드폰에 아웃소싱하는 디지털 시대인데, 하물며 생일은? 메신저가 알려주는데 이미 길들여지고도 남지 않았을까?

그런데 첫 해, 신기하게도 축하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과 오랜 친구들이었다. 어떻게 생일임을 알고 연락해온다. 소수의 가까운 사람들과 축하를 나누니 쌓인 메일을 처리하듯 기계적으로 답하지 않아도 되고, 축하의 마음이 희석되지 않아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의외인 것은 서로 안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축하를 해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사귀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평소 남을 잘 챙기는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축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업무상의 이유로 연락처만 등재된 피차 애매모호한 관계에서는 나도 영혼없는 축하나 의례적인 답례를 하지 않아도 되어 깔끔했다. 그중에서는 축하해주고 싶어도, 내가 일방적으로 알림을 꺼두었기 때문에 축하금지를 당했던 사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은 순전히 나의 이기심 때문이다. 

문제는, 정말 '친구'라고 생각해 축하해줄 것이라 기대했음에도 연락이 안 온 사이들이었다. 모든 지인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은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바쁘기라도 하면 축하할 기회를 며칠이나 지나쳐 버리곤 한다. 그런 점에서는 생일 알림의 도움을 받는 셈이다(대신 수수료를 조금 받고). 그래도 조금 씁쓸함은 남는다.

공교롭게도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아이 키우면서, 일하면서, 요즘엔 대학원 입학 준비까지 하며 주경야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로 이해는 하면서도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바빠도 가까운 사람도 잊어버리나?' 싶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은 쪼개서 내는 것!'이라는 시간관리론을 실천하던 친구였기에 더 아연했다. 바쁘더라도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한 톨 정도는 해줄 수 없었던 것일까?

이걸 친구에게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궁리하느라 코를 씩씩거리고 마음을 들썩였다. 내적 관종이라고, 관심이 싫으면서도 관심이 없으면 바라게 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뭔 심술인지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나 스스로가 알림 하기를 쿨한 척하며 지운 후에도 실은 여전히 생일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일이 뭐라고. 365일의 아름다운 날들 중 하루인데, 단 하루만으로 십 년 우정을 실추해버릴 일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친구와 진심을 나눈 추억의 날들이 더 많았다. 며칠 지나자, 친구는 놀라며 생일을 왜 얘기 안 했냐고 몹시 미안해 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올해는 실험을 멈출까 고민했다
 
 내 생일이 동네방네 알려지는?것이?몹시 부담스러웠다.
내 생일이 동네방네 알려지는?것이?몹시 부담스러웠다. ⓒ elements.envato
 
나조차도 메신저에 알림이 없는 생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안 알려 주는데 어떻게 축하를 전할 수 있을까 억울한 사람들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두 번째 해에도 알람을 다시 켜지 않았다. 

놀랍게도 작년에 축하해줬던 사람들이 모두 축하해주었다. 기대가 줄어드니 받는 기쁨은 배로 늘어났다. 고마움에 축하해준 사람들에게 답례를 했다. 챙겨야 할 사람이 많지는 않아 금전적으로 부담될 것은 없었다.

어쩌면 금전적 부담은 사실 마음의 부담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돈 쓰기가 아깝지 않은 이유다. 받는 기쁨과, 주는 기쁨까지 더해 두 번째 해에는 더 행복한 생일을 보냈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 끄기'라는 사회 실험을 통해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1. 복잡도가 늘어날수록 삶은 힘들어진다. 생일날 많은 선물을 받는 것은 고맙지만, 받은 것은 꼭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감, 생일선물 비용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고민할 거리가 심플해지니 행복해졌다.

2. 기프티콘 대신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라는 귀한 선물을 얻을 수 있었다. 카카오톡 생일을 안 보이게 하자 따뜻하고 진심 어린 마음을 느꼈다.

3. 생일을 안 챙긴다고 해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많은 사람 대신 친구 사이에서 진심 어린 축하를 나눴을 때 가장 기뻤다. 생일에 큰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소에 나누는 배려와 헌신, 따뜻한 말 한마디, 친구와의 추억 등 작고 소중한 일상일 테니까.

꽤 거창했지만, 이렇게 써놓고 소심한 나는 스마트폰 달력에 따로 적어 놓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이 없나 다시 한번 점검해본다. 아무튼 생일 알림 끄기 사회 실험은 꽤 재밌었있다.

#카카오톡#생일#선물#사회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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