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바람만 불지 않으면 참 견딜 만한 기분 좋은 계절이다. 아름다운 계절, 그 이름 겨울이 왔다. 봉화 춘양을 혹자는 '한국의 시베리아'라고 부를 만큼 매섭지만, 그래도 적응하면 살 만하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 마을, 나의 집도 그 사이에 있다. 집주인 어르신이 미장하시는 분이라 부부가 직접 흙과 시멘트를 섞어서 집을 지으셨단다. 벌써 60년이 지난 집이니 오늘날의 최첨단 단열하고는 단연코 거리가 있다. 봉화 춘양에서는 세 번째 겨울이고 이 흙집에서는 첫 번째 겨울이다. 머리가 벗겨질 만큼 뜨거웠던 한여름에 이사한 나를 보러 앞뒤 옆집 할매들이 몰려들었다.
"아파트 두고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려고 왔니껴. 겨울이 웃풍에 세서 못산다. 아이고. 우예 살라 그러나 젊은 사람이 겨울에...."
"겨울 오기 전에 비닐로 벽을 다 치고, 마루 창문들 싹 막아서 비닐로 치라. 창 하나만 열고 닫고 나머지는 밖에서 비닐로 아예 막아야 한다 알겄나? 안그람 겨울에 병난다...."
그렇다. 내가 이사 들어오기 전 이 집의 외벽은 비닐로 덮여 있었다. 마치 비닐봉지 속의 작은 케이크 상자처럼 말이다. 창을 막으면 들고 날 수가 없고, 햇살도 들어오기 어렵고, 무엇보다 맑은 공기를 쐴 수 없으니 난 할매들의 충고를 듣지 않기로 했다. 현재 온도는 영상 10.5도이다. 물론 난방 온도다.
싸리빗자루 100개씩 준비하는 춘양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할매들은 내년 여름까지 먹을 김치를 담가놓고 집에 연탄과 땔감을 쌓아놓고 기름보일러에 기름도 한 드럼씩 가득 채운다. 기름값이 비싸니 연탄과 기름보일러를 같이 쓰신다.
집집마다 바닥 식는다고 거실 바닥을 이불로 덮어놓고 가족들이 텔레비전을 보며 이불에 모두 함께 발을 묻는다. 이불 위에서 귤을 까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릴 적 보았던 겨울의 풍경이다.
봉화 춘양은 눈이 많이 내리는 산간지역이라 겨울이면 남자들은 산에 올라가 산싸리를 베어다 100여 개씩 빗자루를 준비했단다. 대가족인 데다 눈을 쓸면 금방 닳아지니 날 좋을 때 미리미리 준비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나일론 끈이나 철사로 묶지만 1960~1970년대에는 칡으로 끈을 동여맸다고 하니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안주인 되시는 우리 할마마마님들께서는 장에서 밍크 수면 내복을 사신다. 옛날, 그러니 할매들이 한창 젊으셨던 1970년대만 해도 엄마들은 집에서 솜을 틀어 이불을 새로 만들고 손뜨개로 겨우내 입을 스웨터를 뜨셨다. 집집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밤 껍데기를 까거나 곰 인형에 눈을 붙여 부업을 했던 때이니 벌써 오래된 옛이야기다.
내복이라곤 빨간 내복이 나오기 전 일명 '개샤쓰'라고 불리던 머스타드와 올리브그린의 중간쯤 되는 색깔의 실로 뜬 내복이 다였다. 그마저도 있는 집에서나 입었지 일반 가정에서는 여전히 솜바지로 겨울을 났으니 격세지감이다.
"개샤쓰... 그것도 감지덕지지. 내복이 뭐여! 아이고, 그런게 어딨어. 근데 개샤쓰는 손으로 떠서 구멍이 숭숭 나 있는데 글로 바람이 솔솔 들어와서 정말로 추웠어. 꺼슬꺼슬해서 살에 닿으면 가렵기도 하고... 하이고... 없을 때니까 그래도 그렇게 살았지!"
"이름이 왜 개샤쓰에요?"
"실로 뜬 거라서 입다 보면 축 늘어지거든. 그럼 밑단이 풀어져서 소매 밑으로 기어 나오는 거지. 고래 우리는 개샤쓰라고 불렀지. 올이 계속 풀어지면 엄마가 대바늘로 실을 엮어서 옳게 해줬지!(봉화에서는 음식이 상하거나 모양이 틀어졌거나 하는 등 정상과 다를 때 '옳지 않다'라고 표현을 한다. 참 고운 표현이다)"
그렇다. '개샤쓰'는 솜바지와 '빨간 내복' 사이에 나왔던 내복이다. 물론, 빨간 내복이 출시되었을 때도 경제가 어려운 서민들은 그 내의 한 번 입기도 어려웠다. 겨울이면 양말까지 꿰어신고 살아야 했고, 쥐 털로 변신한 '코리아 밍크'를 수출해서 외화벌이를 해야 했을 때이니 그럴 법하다.
참으로 지금은 좋은 세상이다. 보드랍고 윤기가 잘잘 흐르는 밍크 코트는 부잣집 사모님들이나 구경할 법한 물건이었고, 일반 서민들은 대신 밍크 담요를 장기 할부로 끊어 마련했다.
화려한 꽃무늬, 학, 사슴 등이 그려진 보들보들한 밍크 담요는 당시 엄마들의 로망이기도 했고, 혼수 답례품으로도 썼을 만큼 몸값이 제법 나갔다. 그런 밍크 담요는 집안을 화사하게 빛내기도 하고 열을 품고 있다가 쑥 들어오는 발들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 가면 밍크 담요 밑에 밥공기를 묻어두었다가 주셨던 기억도 선연히 난다. 뚜껑을 열면 물방울이 '또르륵' 하고 떨어졌던 그때가 말이다.
빨간 내복을 지나 한국에는 '메리'들이 참 많이도 나왔다. 보온메리, 몽고메리, 에어메리, 슈퍼메리.... 강아지 이름도 메리가 많았다. 메리는 좋은 뜻이니까.
춘양의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다
한겨울을 밍크 담요와 메리들로 보냈던 그 시절은 저 너머로 가고, 이제 이들을 대신한 극세사 이불과 밍크 수면 잠옷이 탄생했다. 수면 잠옷은 외출복으로만 입지 않을 뿐 나도 어르신들도 일상복으로 입는다. 보들보들하고 폭신하고 따시다.
장에 나가면 5천 원이면 바지 한 장을 살 수 있다. 겨우내 입으면 닳아서 따뜻하지 않으니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 장만한다. 빨랫줄에 널린 고무줄이 늘어난 수면 바지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돈 아낀다고 고무줄 늘어난 바지에 옷핀을 꽂아 입던 할매들은 모처럼 장에 나가 수면 바지들을 하나씩 장만하신다.
억지춘양시장에 가면 털신은 2천 원, 바지는 5천 원, 밍크 버선은 3장에 5천 원 주면 살 수 있다. 나도 밍크 잠옷 여러 벌과 할매들과 나눠 입을 수면 바지 몇 개를 더 산다. 털신과 버선도 덤으로 말이다.
아랫마을 미경네는 고무통에 고양이 대가리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내어 길고양이들을 재운다.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왔다 갔다 한단다. 일정 온도 19.1도다. 고무통 안에 안 쓰는 담요를 듬뿍 넣어주고 열선도 안전하게 감아주었단다. 사기 그릇에 사료와 영양제도 챙겨준다. 상추 하우스 안에 깔아놓은 까데기가 폭신한지 햇살에 늘어지게 잔다.
우리 집에 비하면 고양이들 사는 겨울 형편이 훨 낫다. 사람의 적응력은 참으로 놀랍다. 난방을 해도 웃풍이 세서 집안 온도는 10.5도이다. 등은 뜨겁고 머리는 시리다. 얼굴에 팩을 하면 정말이지 뺨이 얼얼하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다. 추우니 아침에 일찍 눈을 뜨게 된다. 마루 안에 들여놓은 식물들도 낮은 온도에 적응하며 옹기종기 나와 함께 춘양의 겨우살이를 하는 중이다.
"집도 좁은데 풀떼기 키워서 뭐할라고. 사람 다닐 틈도 없네. 웬 꽃을 그리 많이 키우나?" 하시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는 것은 사실 내겐 경이로운 기쁨이다. 창가에 붙어 아직도 얼어 죽지 않고 살아준 나의 식물들에게 고마울뿐이다.
봉화 춘양의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 겨울이 제법 좋다. 껴입고 온풍기도 조금씩 돌리면서 알뜰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겨울나는 법을 나는 배웠다. 양말 위에 꽃버섯도 신으면서 말이다. 도시에서 겪어보지 못한 놀라운 변화다.
코리아 밍크를 제작(?)해서 수출까지 했던 우리 대한민국이다. 겨울 앞에 움츠러들게 하지 않을 도톰한 꽃버선과 밍크 바지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생각나는 계절이네요. 좋은 것은 나눌수록 배가 된답니다. 모두들 옹기종기 이불밑에 발을 묻고 웃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