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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랭면'을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저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외식하면 평양랭면만 고집한다. 냉면을 대할 때 그는 마치 '신성한' 의례를 치르듯 자세를 바로 잡는다.

주문한 냉면이 식탁에 놓이면 우리처럼 먼저 면발을 집는 게 아니라 그는 입을 깨끗이 헹구고 육수부터 천천히 맛본다. 육수 맛이 아니다 싶으면 주방장을 불러 '한수' 가르칠 정도로 '마니아'다. 냉면집에서도 긴장하는 그의 '깐깐한' 모습은 이제 내게 익숙한 장면이다.

그가 평양랭면 '광팬'이 된 것은 고향이 평양인 실향민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냉면집에 자주 데려갔는데 함께 먹다 보니 어느새 평양랭면 고유의 맛을 거의 전수한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돌아가신 부친은 자식에게 은연 중 이북 고향을 알리고 대를 이어 냉면 맛을 기억하길 기대했던 것이다.
 
 옥류관 양종철 평양랭면 달인이 만든 평양랭면
옥류관 양종철 평양랭면 달인이 만든 평양랭면 ⓒ 이혁진
 
평양랭면은 북한의 전래 음식으로, 북한은 2018년 남북한 정상회담 시 옥류관 평양랭면을 제공해 주목 받았다. 평양랭면에 대한 북한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평양랭면은 비록 북한에서 유래했지만 북한보다 남한에서 더 각광받는 음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양랭면 만큼 남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도 드물다. 향수(鄕愁)를 달래는 전형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평양랭면 전문집이 남한에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평양랭면의 명성이 높아진 배경에는 해방과 6.25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실향민 따라 내려온 평양랭면은 남쪽에서 여러 종류로 변형 진화했다. 부산밀면은 피난민이 많은 부산에서 개발됐다.

이처럼 이북실향민들에게 냉면은 음식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냉면은 실향민들의 단합과 유대를 돈독히 한다. 실제 평양출신이 아니라도 이북실향민들은 모임을 가질 때마다 평양랭면을 즐기고 있다.

최근 '평양랭면 풍습'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실이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평양랭면을 즐기는 고유한 식문화 전통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필자는 2019년 2월 '평양랭면 옥류관' 출신의 양종철 조리장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옥류관에서 만 30년 가까이 일한 '평양랭면 달인'이다. 탑처럼 감아올린 평양랭면을 앞에 두고 그에게 '냉면 잘 먹는 법' 설명을 부탁했다.

그의 답은 의외였다. 옥류관의 정형화된 레시피(고명+메밀면+육수)로 만든 냉면 그대로 음미할 것을 권했다. 식성에 따라 식초나 겨자를 간혹 곁들이지만 잘 빚은 메밀면과 맑은 육수의 풍미를 온전히 즐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평양랭면에 얼음을 띄우는 건 남쪽의 풍습이라 한다. 북한에서 평양랭면이 주로 겨울 전통음식인데 남한은 여름에도 즐기면서 얼음을 얹혀 먹는다는 설명이다.

북한주민들도 옥류관 평양랭면을 먹을 수 있다. 당에서 배급한 식권으로 사먹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릴 때는 몇 시간도 기다려야 한다.

이북실향민들은 평양랭면 등재소식에 마치 상을 받은 마냥 환영하고 기뻐하고 있다. 고향음식에 대한 삼삼한 그리움과 반가움의 표현이다. 이는 음식을 매개로 남북한이 하나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예부터 우리는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음식 베푸는 걸 미덕으로 삼았다. 대접받는 사람 또한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평양랭면을 화제 삼아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에게 대접하면 어떨까.

한편, 북한은 이번 평양랭면 풍습에 앞서 민요 '아리랑', '김치 담그기 풍습' '씨름'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해 이제 총 4건이다. 대한민국 인류무형문화유산은 '판소리' '한국의탈춤' 등 22건이다.

#평양랭면#이북실향민#북한평양#인류무형문화유산#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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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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