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히 뛰어온 한 해의 끝자락. 온전히 나를 위해 밀양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아담하지만 정겨운 밀양에서 얽히고설킨 올 한해를 돌아보며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밀양으로 들어서자 창문을 내렸습니다. 묵은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점차 시내가 가까워지자 찬 공기가 더욱 시원하게 우리 곁을 맴돕니다.
밀양강이 저만치 다가오자 차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너머로 영남루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영남루를 마주 보는 곳에 차를 세우고 강변을 걷습니다.
'날좀 보소' 정겨운 팻말이 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시를 따라 물길을 따라 너머 영남루를 벗 삼아 걷습니다. 곱고 따사로운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집니다.
기분 좋게 거닐다 영남루로 향합니다. 차는 영남루를 지나 밀양 관아 터 근처에 차를 세웠습니다. 조선 시대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관아 터 입구에는 공덕비 19개가 손님을 맞듯 서 있습니다.
내삼문 옆에는 1919년 3월 13일 당시 밀양 장날을 맞아 밀양 만세 의거가 일어났다는 표지석이 보입니다. 밀양면과 부북면의 인쇄기를 훔쳐 아북산에서 병풍으로 빛을 가린 뒤 인쇄하고 장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고 합니다.
내삼문에는 삼지창을 든 포졸 마네킹이 오가는 이들을 무심한 듯 바라봅니다. 동헌 뜨락에는 햇살이 드는 자리입니다. 밀양 도심이지만 주위는 음 소거된 듯 조용합니다. 덕분에 마치 사또라도 된 양 주위를 넉넉하게 거닙니다. 북별실 납청당에 올라 툇마루에 앉았습니다. 숨을 고르자 마음에 평화가 밀려옵니다.
밀양관아터를 나와 영남루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영남루는 5~10분 이내 거리입니다. 전통시장인 <밀양아리랑시장>이 길 건너에서 유혹합니다. 유혹을 뿌리치고 영남루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섰습니다. 걸음이 불편하다면 옆으로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둘러 가는 길을 찾아 나서도 됩니다.
계단은 경사로를 품고 있어 지그재그로 걷어도 좋습니다. 등 뒤로 밀양 도심이 자꾸만 돌아보게 합니다. 계단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영남루가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이끕니다.
영남루는 신라 경덕왕(742~765) 세워졌던 영남사라는 절의 부속건물이었습니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년) 당시 밀양군수 김주가 신축하며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고 조선 세조 5년(1459년) 밀양부사 강숙경이 규모를 크게 했습니다.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때 불타고 인조 15년(1637년) 중건했습니다. 순조 때 불탄 것을 헌종 10년(1844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속 건물로 능파각과 침류각, 객사(客使)인 천진궁(天眞宮) 등이 있습니다.
영남루는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편히 쉬어가게 한 누각에 오르자 파노라마 같은 풍경이 와락 안깁니다.
햇살 드는 곁에 앉자 멍을 때립니다. 올 한해의 묵은 감정을 털어냅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랑각으로 향했습니다. 강가로 내려가는 입구에 밀양아리랑 표지석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걸음을 이끕니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 동지 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
표지석 옆 노래 버튼을 누르자 흥겨운 아리랑이 흘러나옵니다. 절로 어깨가 들썩입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강으로 내려가자 푸르른 대나무들이 댓잎을 바람 장단에 맞춰 사각사각 춤을 춥니다.
조선 명종 때 정절을 지키려다 억울하게 죽은 전설의 주인공 아랑을 모신 사당인 아랑사가 나옵니다. 강바람에 살랑살랑 당시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아름다운 밀양 부사의 딸이 영남루에 달구경 갔다가 관청 잔심부름꾼에게 성폭행 당하려 하자 강에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이후 밀양에 부임하는 사또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청하려 나타나자 귀신에 놀란 사또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담력이 센 이상사가 사또로 부임해 아랑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자 원혼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랑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다시금 언덕으로 올랐습니다. 영남루를 에워싼 아북산은 밀양읍성이 있습니다. 읍성 아래 강변을 따라 천년 고찰 무봉사가 있습니다. 일주문으로 가는 길에 '사람은 태어날 때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 숫타니파타' 좋은 글귀가 되뇌게 합니다. 경내에는 들어가지 않고 잠시 낙엽 따라 강 풍경을 구경했습니다.
묵은 마음을 비워내자 육신의 배가 지나왔던 아리랑시장의 먹거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2일과 7일이 장날인 밀양 아리랑 시장은 상설시장입니다. 밀양의 유명한 먹거리는 많습니다. 뷔페식으로 다양한 나물을 비벼 먹을 수 있는 보리밥집 등 떠오르는 맛집이 시장 내에는 많습니다. 추운 날씨에 뜨거운 국물로 몸을 녹이고 싶어 돼지국밥을 떠올리자 입안에 벌써 침이 고입니다.
시장 내 돼지국밥 잘하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1시, 평일이라 다행히 줄 설 필요가 없습니다. 입식 테이블 5개와 좌식 테이블 3개가 있는 그냥저냥 작은 식당이지만 국밥 맛은 결코 얕볼 수 없습니다.
한 숟가락 떠먹자 목젖을 타고 뜨거운 국물이 시원하게 넘어갑니다. '좋구나'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국밥은 속을 부드럽게 채우며 마음마저 다독다독 달래줍니다. 한겨울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허전함을 뜨겁고 졸깃한 돼지국밥이 헛헛한 몸을 달래줍니다.
밀양돼지국밥으로 몸과 마음을 채운 듯 시장에서 멀지 않은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로 향했습니다. 밀양 시내 가운데를 흐르는 해천 곳곳에 쉬어가기 좋습니다. 600m 해천을 따라 다양한 볼거리가 있지만 이 중에서도 항일운동테마거리가 으뜸입니다.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며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 선생이 한 말입니다. 항일 독립 무장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했던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해 국내의 일본제국주의 요인 암살과 수탈 기관 파괴 등 투쟁을 헸던 약산 김원봉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밀양의 항일 독립운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태극기의 종류와 변천사, 조선의용대 설립 기념사진,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명단과 윤세주 초상 등 볼거리가 다양합니다.
약산이 태어난 집터에 있는 <의열단 기념관>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의 큰 산맥과 같은 의열단의 활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의열단 공약 10조 중 '1이 9를 위하여, 9가 1을 위하여 헌신함'은 글귀는 여러 번 되뇌게 합니다.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의열단 단장 약산의 초상화가 어서 오라며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의열단 기념관> 옆으로 밀양 3·13만세운동 독립선언서 제작 청동상과 밀양 독립 만세운동 기념비가 있습니다. 거리를 거니는 것만으로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와 의지를 담을 수 있습니다.
밀양에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갈 삶의 힘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