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1년이 이처럼 빨리 흘러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이에 비례해 시간의 체감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을 들었지만 올해는 유독 삶의 진실처럼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타일>이라니 크리스마스 카드도 아니고. 아리송한 제목이었지만 크리스마스에 마음을 빼앗겼다. 12월의 한가운데서 시의적절한 제목에 끌렸다. 김금희 작가의 전작을 몇 권 읽은 터였다.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와 같은 단편집을 좋아한다.
김승옥 수상작품집,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같은 곳에도 자주 이름을 올려 내게는 친숙한 작가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면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엔 연작소설이라고 한다.
장편, 단편 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단편소설의 짜임새를 좋아한다. 원고지 100장 분량 안에 하나의 완결된 세계가 단정하게 마무리 되는 느낌이다. 어떤 분위기만 느낄 때도 있고, 삶의 이면을 볼 때도 있다. 게다가 60페이지 남짓 안에 이야기를 매듭지으니 읽는 부담이 적다.
김금희 작가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간의 작품을 보면 소재가 신선하고, 도회적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소재로 등장하지만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연애소설로 치닫지 않는다. 남녀 사이의 여러 결을 세련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남녀 사이에 애정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 모습이 정형화 되어 있지도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연작소설로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은 제각기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옴니버스 영화와 비슷하다고 느낀다면 비약일까? 옴니버스 영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를 주제나 인물로 연관성을 가지도록 하여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든 영화'라고 되어 있다. 나 같은 경우 이 소설이 옴니버스 영화 또는 드라마와 맥을 같이 한다고 느꼈다.
<은하의 밤>은 암 치료 후 복직한 은하와 보도국 출신인 태만의 방송 에피소드를 담았고, <크리스마스에는>에서는 맛집 알파고를 매개로 한 지민과 현우의 재회 이야기가, <데이, 이브닝, 나이트>에서는 한가을과 병원 동료 안미진의 푸드 스튜디오 촬영기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오빠가 걸었던 마지막 전화 역시 돈 얘기였고 은하가 거부하자 더 이상 연락은 없었다. 전에는 이따금 은하의 생일이나, 은하가 만든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연락해 오기도 했는데 그마저 끊긴 것을 보면 그간의 관계 역시 어떤 보상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보상이 너무 확실하고 정확해서 슬프지도 않다고 은하는 허탈해했다.
옥주는 일단 누군가를 가까이하면 최선을 다해 그를 좋아했으니까. 실제 어떤가 보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더 중요한 사람들이 있고 옥주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일상에서, 사회에서, 다양한 관계 속에서 놓치기 쉬운 장면을 예민하게 포착해 정제된 언어로 표현한 소설이다. 그 마음과 그 상황을 표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 작가는 유려한 솜씨로 그려내 내 앞에 펼쳐 보인다.
읽다 보면 인간관계의 그 미묘한 뉘앙스를 발견하고 곳곳에서 무릎을 치게 된다. 어렴풋이 느낀 것들을 언어로 명징하게 표현하는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따뜻한 7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받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