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한 문장을 뽑자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요? "올해 당신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편집자말] |
작년 연말에 올해는 기필코 3kg을 빼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마흔 중반이 넘어서부터 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하더니 당최 줄어들 줄 몰랐다. 특히 복부는 한없이 팽창되어 이러다간 풍선처럼 터져버리는 것이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
가장 불편한 점은 옷이었다. 일상복이야 어찌어찌 입었는데 양복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다. 상의는 억지로 쑤셔 넣어도 바지 단추를 잠글 수 없었다. 회사에서 중요한 자리가 있으면 입어야 했기에 궁여지책으로 단추는 풀고 벨트만 채우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 또한 신경 쓰였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요즘 편한가 봐. 얼굴 좋아졌네", "왜 이리 살쪘어", "바지 터지겠다" 등 농담을 빙자한 뼈있는 진심을 건넸다. 겉으로는 웃으며 넘겼지만,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전에는 마음먹으면 2~3kg 정도는 쉽게 뺐는데, 단 1g조차 어려운 현실을 목도하곤 씁쓸했다. 평소보다 더 먹지도 않는데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몸무게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나잇살이란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기엔 아직 일렀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신경 그만 쓰고 편하게 살라는데 '관리하는 꽃중년'이 나의 꿈이기에 포기할 순 없었다.
살을 빼려는 필사의 노력
인터넷에 떠도는 무수히 많은 다이어트 비법이 있었지만, 정공법을 선택했다. 덜 먹고, 운동하기였다. 우선 운동 계획을 세웠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걷기를 선택했다.
하루에 만 보만 걸어도 살이 빠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실천해보기로 했다. 차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지하철까지의 거리, 지하철에서 갈아타는 거리, 내려서 회사까지 걸어가는 거리만 따져도 이천오백 보 정도였다.
회사 특성상 야근이 많아서 저녁에는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과감하게 점심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점심도 먹지 않고 1시간여를 회사 주변을 걸었다. 근처 공원도 가고, 뒷산에도 오르며 꾸준히 실천했다. 그 거리가 대략 팔천 보가 넘었다. 퇴근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에 돌아오면 합쳐서 만 삼천에서만 만 오천 보 정도가 되었다. 많이 걸을 땐 이만 보도 되었다.
꾸준히 5개월 넘게 실천했다. 계절은 어느덧 봄에서 여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집에 체중계가 없어서 정확한 몸무게 감소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 살이 빠진 듯한 확신이 들었다.
단 1g도 빠지지 않은 현실에 꺾일 뻔한 마음
코로나로 인하여 대중목욕탕을 한동안 가지 못했었다. 이미 코로나에 걸렸었기에 몸의 변화도 확인할 겸 주말에 시간을 내서 갔었다. 탈의실에 옷을 넣고 떨리는 마음으로 네모난 체중계 앞에 섰다. 심장이 주체 없이 쿵쾅거렸다. 실눈을 뜨고 파란색 숫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드디어 00.0kg이란 소수점 자리까지 공개가 되었다.
순간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정말 단 1g도 빠지지 않고 지난 연말 몸무게 그대로였다. 지난 5개월의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되었다. 한동안 계기판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몸 안에 주체 없이 끓어오르는 열을 식히고자 계속 냉탕 속에서 머물렀다. 차가운 물마저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포기해 버릴까. 아내 말처럼 생긴 대로 살까. 살을 빼리라는 의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는 꺾인 마음만 남았다. 괜히 저녁에 폭식만 했다. 어딘가에는 분한 마음을 풀어야 살 것 같았다. 퉁퉁 부은 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배가 차서인지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운동보다는 음식이 문제였다. 초반에는 점심 대용으로 삶은 달걀이나 고구마 등을 싸갔는데 귀찮기도 하고 먹을 시간도 없어서 나중에는 아예 굶었다. 오후가 지나면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때 눈앞에서 나를 유혹하는 사악한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회사 탁자 위 간식들이었다.
과자, 사탕, 초콜릿 등등 정신없이 입에 넣으며 주린 배를 달랬다. 어디 그뿐이랴. 저녁도 많이 먹게 되었다. 반찬부터 서둘러 먹기 시작하면서 밥양까지 전보다 1.5배 정도는 되는 듯했다. 그래도 주중에는 꾸준히 운동했으니 어느 정도 상쇄가 되었으나 주말이 문제였다.
이상하게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움직이기 귀찮았다. 만 보는커녕 이천 보도 걷기 힘들었다. 그리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겨서 하루는 반드시 피자, 떡볶이, 라면 등을 먹었다. 주중과 주말의 몸무게 차이는 1~2kg은 족히 되지 않을까.
음주도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 1회 정도는 되었다. 알코올이 뇌를 마비시켜 안주를 폭풍 흡입하게 했다. 술 자체에도 열량이 높은데 기름진 안주까지 먹으니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나니 꺾였던 마음이 올곧이 바로 섰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점심 때 허기짐을 덜기 위해서 아침도 간단히 먹었다. 밥은 아니어도 선식이나 달걀부침 정도로 챙겼다. 점심도 시간이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먹었다. 이렇게 하고 나니 저녁도 덜 먹게 되었다.
주말엔 밖으로 나가려 노력했다. 처음엔 혼자 산책했는데, 그때 마침 아들도 걷기에 맛을 들여서 둘이서 저녁에 나가 동네 주변을 돌았다. 만 보까지는 아니어도 돌아오면 칠천 보 정도는 되었다.
주 1~2회 정도는 새벽에 일어나 사내 헬스장에서 러닝머신도 뛰었다. 대략 30분 정도였다. 갈 때마다 몸무게도 쟀다. 확실히 아침에 뛰고 난 후 미세하나마 몸무게의 변화도 있었다. 음주는 피할 수 없기에 최대한 적게 먹고 마시려 노력했다. 그렇게 또다시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살 대신 찾은 건강... 내년에 한번 더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 과연 목표 달성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실패였다. 최근에 몸무게를 쟀을 때 1kg 정도가 빠졌다. 들였던 노력에 비해서는 미미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빠졌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려 한다.
허나 꾸준히 운동해서인지 몸은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전에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었는데, 요즘은 웬만한 거리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활력이 넘치니 주말이 되어도 소파와 한 몸이 되지 않고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 건강검진을 받았었는데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특히 콜레스테롤은 눈에 띄게 낮아져 뿌듯했다. 그동안 그토록 낮추려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것 같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비록 원하는 만큼 살은 빼지 못했지만, 덕분에 건강을 찾았다. 그때 만약 꺾인 채로 포기했다면 얻을 수 없었으리라. 나 자신에게 토닥토닥 칭찬을 해주었다.
연말에는 연례적으로 가족들과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맨 위 상단에 어김없이 '몸무게 3kg 빼기'가 위치할 것이다.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건 나의 꺾이지 않은 자존심이다. 그래도 내년에는 '성공'이라는 두 단어를 꼭 들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