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성연면에서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서산여고를 거쳐 어릴 적 꿈이었던 간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하반신을 쓸 수 없었던 우리 할머니를 보며 어릴 때부터 꼭 간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아픈 일이 있어도 이 길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다시 태어나 내게 또다시 길을 묻는다면 저는 여전히 간호사를 선택할 겁니다."
충청남도 서산의료원 수간호사 차미영 씨를 만난 것은 무대 위였다. 그녀는 민요를 부르면서 관중을 사로잡았고 우리는 뜨거운 박수로 환호했다. 매일 주사기만 잡을 것 같은 손에 마이크가 그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무대가 생경하지 않냐는 말에 너무 편안한 곳이라고 답한 그녀는 신규 간호사에겐 엄마 같은 존재로, 어르신에게는 사랑스런 딸로, 그리고 멋진 무대를 보여주는 공연자로 관객을 사로잡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아래는 흥(馫)덩어리 국악인이자 충청남도 서산의료원 차미영 수간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국악인 공연에서 전율... "'이거다' 싶었지요"
- 간호사가 국악을 하는 경우는 조금 드문 사례인 것 같습니다. 민요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병원 체육대회 때 국악인 초정공연을 처음 보게 되면서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참 별일이죠. 여태껏 살아도 그런 반응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슴이 막 두근두근 거리고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아, 이거다' 싶어 안종미 선생님을 찾아가 '민요를 배우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길로 안 선생님의 제자가 됐어요.
처음에 했던 제 소리가 지금도 생각나요. 완전 초등학생 수준이었죠. 아니 초등수준보다 낮았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제 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 바로 뛰어가 민요를 배워야겠다는 사람은 드문 것 같은데 혹시 물려받은 끼라도 있었지 않을까요?
"부모님이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요즘도 컴퓨터로 최신가요를 틀어놓고 가사를 적으며 연습을 하시죠. 동생들이 '큰 누나가 부모님 끼를 다 물려받았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이번에 우리 병원(충청남도 서산의료원) 60주년 한마음체육대회가 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출전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상당히 망설였다가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저희 어머니께서는 그날부터 퇴근 무렵이 되면 '직원들 앞에서 창피당하니까 빨리 와서 연습하자'고 전화 호출을 하더라고요."
- 창을 하면 목이 쉴 수도 있잖아요. 간호사로 계시는데 업무에 지장은 없으세요? 간호사가 민요를 하는데 주위 반응은요?
"그것도 참 특이하죠. 저는 완전 체질인가 봐요. 안 그래도 친구가 '정말 피를 토했냐?'고 묻더군요. 처음부터도 목 한번 쉰 적이 없었네요. 얼마 전에는 동창이 '새삼스럽게 그런 걸(민요) 다 배웠냐'고 놀래 하더라고요. 워낙 조용하던 학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집순이기도 했어요. 은사님조차 놀라 하셨죠. 우리 병원에서는 (공연)하지 않았어요. 요양원이나 다른 병원에서 환자들을 모셔놓고 노래를 불러준 적은 있었지만요.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저희 스승님(안종미)이 유명해 덕을 많이 봐요.
- 어떻게 간호사가 됐는지 궁금해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간호사였어요. 저희 할머니가 하반신 마비로 25년정도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는데 그때 당시 병원을 제집 드나들다시피 하셨어요. 워낙 안 좋으신 모습을 많이 봐서 '내가 간호사가 돼서 우리 할머니를 낫게 해드려야겠다'고 막연하나마 생각만 하고 있었죠.
그러다 서산 광장 쪽에 당시 서산도립병원이 있었어요. 그날도 입원한 할머니를 보러 병원으로 갔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도 주고 친절하게 (할머니)케어도 해주셨어요. 그 모습이 예뻐 보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 또 한 번 '꼭 예쁜 간호사가 돼야겠다'라고 다짐했죠.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면 꼭 머리에 간호사캡을 쓴 모습만 그렸던 것 같아요.
그리곤 고등학생이 됐죠. 대학진학 선택시 선생님들이 성적이 괜찮다고 교대를 지원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똑 부러지게 간호대에 진학하겠다고 했구요. 그때 선생님들이 '참 독특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요."
- 신규 간호사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면서요?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다. 여기 계신 우리 선생님들도 간호사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일해라. 그러면 비록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거다. 설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옆에서 도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말아라. 그러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매사 침착하게 헤쳐나가면 된다."
- 병원에 근무하다 보면 아픈 분들을 상대하잖아요. 환자들에게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텐데.
"지금은 교육팀에서 근무하니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전에 병동근무할 때도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어요. 왜냐하면 환자분들이잖아요. 몸과 마음이 약한 환자분들이기 때문에 '딱 그럴 수 있다'라고 이해하니까요. 자기주장 강하고 막무가내식 보호자들에게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간혹 있지만 삭혀야 하는 게 우리 직업이잖아요."
- 간호사 일을 하며 반갑고 뿌듯할 때도 상당할 것 같아요.
"그럼요. 중환자실에서 계시다 회복돼서 나가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반갑죠. 휠체어를 타고 나가시는데 그중 몇 분은 병원에서 퇴원하기 싫어 자꾸 뒤돌아보면서 울고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사실 우리 서산만 보더라도 중소도시다 보니 고령자분들이 많잖아요. 요양원에 계시다가 상태가 안 좋아져서 중환자실로 오신 경우가 많죠. 중환자실 있으니까 간호사들이 오죽 친절하게 잘 해주겠어요. 좋아지셔서 다시 요양원으로 가시게 된 거죠. 떠나시면서 그러셔요. '우리 선생님들이 우리 자식보다 낫다'고. '자식보다 더 잘한다'고 눈물을 글썽이셔요. 아 그때는 정말 가슴 아파요."
"두 인생을 번갈아 사는 모습, 즐겁지 않으세요?"
- 환자로 보살핌을 받던 분이 국악 공연을 보러 온 적은 없었나요?
"있죠. 하지만 환자들은 가운을 입은 제 모습만 기억하지 분장하고 한복 입은 제 모습을 알아채지 못해요. 한번은 직원이 가족과 함께 해미읍성에 놀러와서 제 공연을 봤나 봐요. 계속 저를 쳐다보며 '닮았는데….'라고 생각했대요. 그날 저녁 '오늘 읍성 공연을 봤는데 꼭 선생님하고 비슷한 분이 계시더라고요'라고 메시지가 왔어요. 그러면서 제가 공연하는 사진을 보내온 거예요.
하긴 평소에는 안경도 끼고 화장도 안 하니 공연 때 안경 대신 렌즈에, 진하게 화장한 제 모습이 일치는 하겠어요(웃음). '선생님 멋져요~' 하는데 재밌었지요. 두 인생을 번갈아 가며 사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으세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저는 어린시절 꿈이었던 간호사가 된,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입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충청남도 4개 의료원 중 친절도에서 저희 서산의료원이 1위도 했죠. 교육전담 간호사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도 받고, 우리 병원 신규간호사들 업무에 잘 적응해서 이직률 또한 떨어졌죠. 내포제 시조 이수자 시험도 합격했고, 전국시조경창대회 일반부 대상도 받았고, 많은 분의 성원으로 공연도 잘 마무리했고, 이리저리 올 한해는 의미 있는 일들이 참 많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이 여파를 몰아 내년 계묘년에는 아프고 힘든 분들에게 친절로, 공연으로 올해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려고요.
덤으로 새로운 꿈 한 가닥도 고백할게요. 지금 민요랑 시조를 배우고 있는데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배워서 훗날 제2의 인생이 왔을 즈음, 많은 분과 함께 공유하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움의 끈을 쉼 없이 놓지 않아야겠지요. 늘 발전하는 모습으로 찾아뵐 테니 내내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