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
열세 살인 첫째 아이는 대여섯 살 무렵부터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조각 오린 다음 이어 붙여서 로봇을 만들어 내곤 했다. 그렇게 평면에서 시작해 입체가 되고, 점점 정교해지더니 지금은 제법 모양을 갖춘 자동차나 로봇을 만들고 있다.
지난 가을에 집에 놀러 온 한 이웃이 아이 방에 있는 종이 로봇과 자동차들을 보곤 깜짝 놀랐다. 놀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종이만 만지작거리기에, 뭘 만드나 궁금했는데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었냐고 했다. 으쓱해진 아이는 그동안 만들어 둔 것을 모두 꺼내 와 자랑했다.
종이접기를 하는 동안에는 게임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조용히 방에 있어서 그냥 두었던 건데, 막상 이웃이 그렇게 놀라워하는 걸 보자 나도 아이가 만든 것들을 다시 보게 됐다.
이웃은 이 정도 종이접기 실력이라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며, 일단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마을 공간에서 종이접기 수업을 열어 보자고 했다. 그렇게 큰아이는 겨울을 지나 봄이 될 때까지 마을 어린이들(두 명이긴 했지만)의 종이접기 선생님이 되었다.
마을 공동체의 의미
아이가 수업을 열기 위해 대관한 곳은 마을에 있는 공동체 공간 짬이란 곳이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서울시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 공간 부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아 운영했고, 2019년부터는 운영위원과 마을 주민들이 책임을 맡아 유지해 왔다.
코로나 이전에는 마을의 아이들 누구나 들렀다 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고, 간식을 챙겨주고, 어린이를 위한 비폭력대화, 목공이나 도예, 놀이터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만났다. 어른들을 위한 강좌로는 회복적 서클, 글쓰기, 비폭력대화, 타로, 꿈투사 같은 프로그램을 열었다. 마을에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공간으로 모여 들었다.
지난 7월 30일 집주인의 계약 해지 통보로 공간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후에는 좀 더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마을 안의 여러 단체와 '시민 자산화'를 꿈꾸면서, 현실에선 당장 이사 갈 곳을 찾던 중에 "지난 10월 27일 시의회 국민의 힘이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 폐지조례안'을 발의했고, 12월 13일 이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기자회견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았다(관련 기사 :
서울시, 전태일기념관·노동권익센터 예산 전액 삭감).
공간 짬은 내가 운영위원이 되던 2018년에 서울시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이 끝났고, 현재는 관련이 전혀 없다. 앞으로 새로 꾸리게 될 공간도 이 사업에 지원해 볼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을 공동체 지원 조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보는데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 사업이 없어진다고, 이미 화곡동에 자리 잡은 이웃들과의 관계가 사라질 것도 아닌데 왜 이토록 마음이 쓰일까. 마을 공동체 사업이 나한테 어떤 의미였는지 자꾸 곱씹어보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와 같이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 셋이 종종 공간 짬에 모여 아이들 저녁밥을 해 먹이고,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영화를 보곤 했다. 오래되고 낡은 기기라 컴퓨터와 연결이 잘 안 되는 일이 반복되었는데, 답답했던 내가 "가볍고 설치가 간단한 빔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어떻게 빔을 살 수 있을까?' 하고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얘기 끝에 일일 호프를 열자고 했고, 미니빔을 목표로 했던 일일 호프는 공간의 몇 달 치 월세를 마련할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그날, 앞으로 살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고, 이 사람들과 이곳에서 오래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미래가 불안해져, 어디든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교육열이 높은 곳은 집값이 높았고, 우리가 아무리 아끼고 모은다고 해도 그런 곳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되는 시대, 사는 곳이 그 사람을 대변해 주는 시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가득한데 그 집값 높고 교육열 높은 곳에 살 수 없다는 패배의식만으로 살았다면, 내 삶은 여러 날 숭숭했을 거다. 아끼고 아껴도 부족한 것만 눈에 들어왔을 테니까.
다른 삶의 방향을 찾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아이와의 관계라도 잘 붙잡고 싶었고, 공간 짬에서 열리는 비폭력대화 교육을 찾아 듣게 되었다. 서울시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으로 열린 교육이라 교육비가 저렴하거나 무료여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강좌들이 더 있었고, 그 교육들을 들으면서 조금은 다르게 살아도 괜찮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다.
셋째 육아에 지쳐 있는 나 대신 반짝이는 아이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이웃을 만났고, 놀이터에서 노느라 저녁 때를 놓치고 있는 아이를 보면 자기네 집 아이와 같이 저녁을 챙겨 먹이는 이웃을 만났다. 내가 어릴 때 쿠크다스 먹고 싶다는 말을 못 해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너도나도 집 앞에 쿠크다스를 놓고 가는 이웃들이 있다. 봉제산에 사는 산 고양이가 며칠 보이지 않더니 새끼를 데리고 나왔다거나, 오래된 문방구가 사라진 자리에 치킨집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문제는 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작가 공선옥은 책 <춥고 더운 우리집>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길에 이웃들을 만나면서 그토록 불만 많던 "내 집이 그리 나쁜 집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126쪽)" 된다. 그리고 좋은 집의 두 번째 조건으로 좋은 이웃을 꼽으면서 구순이 넘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씨앗이나 나물이나 찐 옥수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 집 저 집에 두고 가신다. 아무도 없어도 놓고 간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것을 보고 큰 아이들이 또 나중에 그럴 것이다(129쪽)."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것을 보고 큰 아이들이 또 그럴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우리 아이들도 이웃 아이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밥을 챙겨 먹이고, 다른 이의 아픈 기억을 소중하게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거라고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 폐지'가 마치 나처럼 삶의 다른 방향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딱 잘라 그런 건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이토록 복잡한 거였구나 싶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12월 22일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 지원 조례 폐지안이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됐다는 기사가 났다. 조례 폐지의 이유로 "본래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은 자치구 단위에서 사업 추진하는 것이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마중물 차원에서 지난 10년간 서울시에서 지원을 지속하여 왔으나, 사업 과정에서 특정 단체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비판 및 논란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각종 비효율이 드러나고 있다"라고 했다.
문제는 늘 있었다. 중요한 건 마을 공동체 사업을 통해 개인들이 경험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을지 함께 논의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야 "서울시 주도의 획일적 지원이 아닌, 각 자치구 실정에 맞는 자치구 주도의 마을사업을 추진하고자 함"이라고 '서울특별시 마을 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 폐지의 목적을 밝힌 것처럼, 일방적 폐지에 그치지 않고 각 자치구 주민들에게 필요한 마을사업들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