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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도서관을 잇는 길에 붕어빵집이 있다. 오래전부터 터줏대감처럼 한 자리를 지켜온 노점인데 천 원에 네 마리, 아니 네 개나 준다. 그렇게 팔아서 아줌마는 뭐가 남을까 싶지만, 덕분에 나에겐 언제든 붕어빵을 사 먹을 수 있는 든든함이 있다. 

"그래요. 저 붕세권 살아요~!" 

붕어빵이 인기 있는 이유
 
붕어빵 겨울 대표 간식인 붕어빵
붕어빵겨울 대표 간식인 붕어빵 ⓒ 오세연
 
요즘은 붕어빵을 사 먹을 수 있는 지역을 '붕세권'이라고 한다. 그만큼 붕어빵이 인기다. 붕어빵집 위치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도 인기라니 말 다 했다. 인기는 중학생인 두 딸을 통해서도 실감할 수 있다.

맛있는 게 넘쳐나는 세상을 사는 아이들에게도 붕어빵이 인기 있는 이유가 뭘까? 아이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사라지고 있잖아요."

그게 이유라니 왠지 모를 쓸쓸함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붕세권이란 말도, 붕어빵집 위치 공유 앱도 그만큼 붕어빵 찾기가 힘들어지면서 생겨난 것들이었다. 붕어빵의 인기뿐 아니라 붕어빵이 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런데 그 아쉬움이 오히려 붕어빵의 인기에 한몫 하고 있다. 안에 넣는 소로 팥과 슈크림은 기본, 흑임자, 완두콩, 초코 등등 붕어빵은 다채롭게 진화 중이다. 팥붕파와 슈붕파로 나뉘어 서로의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느냐, 꼬리부터 먹느냐로 성격을 가늠하기도 한다. 붕어빵은 더이상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붕어빵의 다양한 시도와 인기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오르는 재료값의 여파를 막을 순 없다. 종이봉지 값까지 오른 고물가 시대에 붕어빵 가격도 오르는 게 당연하다. 천 원에 네 개 하던 붕어빵은 천 원에 두 개가 됐고, 이젠 이 천 원에 세 개, 더 비싼 곳은 개당 천 원인데도 생겼다.  

하지만 붕어빵은 저렴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까다로운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추려면 재료를 아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밑지는 장사를 할 수도 없으니 시장 논리에 따라 점점 사라지는 수밖에. 게다가 대부분 노점인 붕어빵집을 두고 갑론을박 말도 많다. 

붕어빵과 함께 겨울 길거리 간식의 대표였던 군고구마는 이미 거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젠 필수 주방가전이 된 에어프라이어와 편의점이 군고구마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커다란 드럼통에서 구워내던 길거리표 군고구마의 맛은 아니다. 

붕어빵은 사 먹어야 제맛!
 
 종이봉지 속 붕어빵
종이봉지 속 붕어빵 ⓒ 오세연
 
애들 어릴 땐 붕어빵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묵직한 양면 프라이팬이 집에 있었다. 고양이 캐릭터 모양이었는데, 그 안에 팬케이크 반죽을 붓고 딸기잼, 초콜릿 조각, 피자치즈 등등을 넣어 키티빵을 만들어 먹곤 했다. 인덕션으로 바꾸면서 사용할 수 없게 된 프라이팬은 키티빵과 함께 추억이 됐다. 두 딸은 지금도 붕어빵을 먹을 때마다 키티빵을 소환하곤 한다. 

이참에 인덕션용 붕어빵 틀 프라이팬을 하나 살까 싶어 온라인 쇼핑몰을 뒤적였다. 붕어빵 재료가 소분되어 알차게 구성된 '붕어빵 만들기 키트'도 있었다. 에어프라이어에 굽기만 하면 되는 다양한 맛의 냉동 붕어빵도 많았다. 집에서도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붕어빵에 혹해있는 나에게 둘째 딸이 한 마디 했다. 

"엄마, 사지 마요! 붕어빵은 사 먹어야 제맛이죠. 추운 날 길거리에서 먹는 맛이잖아요."

잠시 까먹고 있었다. 붕어빵은 맛도 맛이지만 겨울 감성이자, 추억이란 사실을.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고구마가 예전 그 맛이 아닌 것처럼. 애들의 추억을 핑계로 미래의 추억 하나를 뺏을 뻔했다. 

추운 겨울 하얀 김이 폴폴 나는 붕어빵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그 맛. 붕어빵이 가득 들어있는 따뜻한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집으로 가는 그 맛. 김에 젖은 종이봉투 안에서 살짝 남은 온기와 더불어 눅눅해진 붕어빵을 꺼내 먹는 바로 그 맛. 아무래도 그건 대체불가다. 역시 붕어빵은 사 먹어야 제맛이다. 

올겨울 프라이팬 살 돈으로 붕어빵이나 실컷 사 먹어야겠다. 붕어빵이 사라지기 전에 있을 때 즐기자 싶었다. 

100% 추억 수익률, 붕어빵 펀드
 
 팥붕 vs 슈붕
팥붕 vs 슈붕 ⓒ 오세연
 
얼마 전에 500원짜리 동전만 모으던 저금통을 깼다. 동전들을 예쁜 통에 담아 현관 입구에 두며 식구들에게 고지했다. 이 돈은 붕어빵 사 먹을 때만 쓸 것! 순전히 붕어빵을 위한 일명 '붕어빵 펀드'다.

언젠가부터 현금 쓸 일도 사라지면서 지갑에 카드만 가지고 다닌 지 꽤 됐다. 가끔 카드가 안 되는 곳도 있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계좌이체가 가능하다. 붕어빵 역시 계좌이체가 되는 곳이 많아졌지만, 일부러 동전을 챙긴다.

예전에 길을 가다가 우연히 붕어빵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줄을 섰다가 현금이 없어서 사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당혹스러움과 아쉬움이 깊게 각인된 탓도 있지만, 왠지 붕어빵만큼은 현금을 내고 사 먹어야 제맛이란 기분이 크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찾기보다는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아 키우려 한다. 그래서 나는 붕어빵 펀드로 사라져가는 붕어빵에 투자한다. 수익으로는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얻는다. 여기에 추억이 복리로 붙는 붕어빵 펀드. 이보다 확실한 투자가 또 있을까? 

사실 고백하면, 집 근처 붕어빵집 말고 반대편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천 원에 두 개 주는 잉어빵집이 있다. 크기도 크지만, 팥소가 살짝 비칠 정도로 속이 꽉 찬 그 집 잉어빵은 유난히 바삭하다. 오늘은 산책 삼아 그쪽으로 슬슬 다녀올까 싶다. 

"그래요. 저 붕세권 살아요. 그것도 더블 붕세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붕어빵#붕세권#소확행#겨울간식#겨울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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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쓸모 있고 소모할 수 있는 것들에 끌려 그때그때 다른 걸 읽고 새로운 걸 만듭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 오늘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매우 사적인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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