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인한 침체를 벗어나나 싶었는데, 치솟은 이자 부담, 드러나는 거대 전세 사기, 연료비·전기료·교통비에 밥값까지 줄줄이 인상. 그 와중에 법인세는 깎아주고 노동시간은 늘리겠다는 정부. 성장률도 낮고 수출도 부진한 가운데 서민들은 어떻게 한 해 살림살이를 꾸려가야 할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제언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
한국의 닥터둠(Dr. Doom)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불린다. 둠, 불행한 종말. 과거 여러 차례 주가 폭락이나 경제위기를 경고하고 이를 정확하게 예측해 얻은 별명이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데이터가 좋게 나오면, 좋게 얘기한다. 작년에는 (데이터가 좋지 않아) '주식 비중을 줄이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제 별명으로는 '닥터 데이터'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그에게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영익 교수의 답은 1.2%다. 정부 전망치(1.6%)보다 비관적이다. 다른 기관에 비해서도 그렇다.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는 1.7% ~ 2.0% 범위 내에 있다.
그는 일본계 투자은행인 노무라증권의 전망치 –1.3%를 언급하면서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닥터둠이라는 그의 별명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올해 자산시장을 두고 주가는 오르고, 집값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익 교수와의 인터뷰는 6일 오후 서강대에서 이뤄졌다. 그는 1988년 대신증권에 입사 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25년간 증권가에서 일했고, 현재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많은 책을 집필하고 각종 방송과 유튜브에 출연하는 등 가장 대중적인 거시경제전문가로 꼽힌다.
[거시경제]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있다"
경제규모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비·투자·수출이 잘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올해 소비가 경제 성장을 이끌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김영익 교수는 소비·투자·수출이 모두 부진할 것으로 봤다. 특히, "소비와 수출이 모두 좋지 않으면, 마이너스 성장도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 소비 부문이 부진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년 소득이 늘긴 늘었는데, 물가가 오르다 보니,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근로자 중 300명 미만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83%인데, 이들의 월급이 물가보다 훨씬 덜 올랐다. 실질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작년 주가가 떨어졌고, 집값은 하락 국면 초기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소비 심리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는 "금리를 인상하면 9개월 ~ 12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가 감소하는데, 그동안의 금리 인상 효과가 소비에 부정적인 영항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출 부문도 소비만큼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 김 교수는 "수출이 정부나 한국은행 예상보다 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 컨센서스 최근치를 보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3%"라면서 "저는 미국 경제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의 수출이 감소할 거라는 얘기"라고 전했다.
중국이 우리 수출의 구세주가 될 수는 없을까. 김영익 교수는 "작년에 감소한 중국으로의 수출이 올해 증가세로 돌아가겠지만, 과거(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수출 부진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익 교수는 투자 부문과 관련해, "5일 한국은행이 2022년 3/4분기 자금순환(잠정)을 발표했는데, 우리 기업들이 가진 현금성 자산이 940조 원이나 된다. 투자를 안 하고 있다"면서 "작년 설비투자가 감소했고, 올해도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자리와 실질소득] "기업에서 구조조정 얘기 많이 나온다"
숫자 이면의 체감 경기를 두고 질문을 던졌다. 그의 말대로 올해 우리 경제가 1.2% 성장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작년에 일자리가 80만 개 증가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올해 한국은행은 일자리가 8만 개 증가할 거라고 본다. 그런데 대부분 정부에서 제공하는 60세 이상 일자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30~40대의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드는 거다. 올해 기업에서 구조조정 얘기가 많이 나올 것이다."
- 청년들의 취업대란이 일어나는 것인가.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중소기업 일자리는 19만 개 부족하다. 반면 대기업은 신입사원을 많이 안 뽑을 것 같다. 결국 중소기업에는 가고 싶지 않고 대기업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 같다."
- IMF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위기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시스템 위기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저성장이 위기이지, 단기적으로 IMF 외환위기와 같은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당시에는 대기업이 어려워지고 금융회사까지 어려웠지만, 올해는 대기업들 이익은 줄어들겠지만, 튼튼하다."
물가보다 월급이 더 올라야 실질소득이 증가한다. 올해는 실질소득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선 물가는 어느정도 잡힌다고 봤다. 김 교수는 "올해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6%인데, 저는 3.0% 안팎이라고 보고 있다. 그만큼 소비 수요가 위축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1%였다.
임금인상 폭은 노사 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어려운 한 해를 보낼 거라고 김 교수는 예상했다. 그는 "작년 300인 이상 기업의 월평균임금은 7.4% 올랐지만, 300미만 중소기업의 월급은 4.3% 올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 직원들의 실질임금은 줄었다"면서 "올해 경기가 나빠지면 적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와 자산시장] 금리↓ 주가↑ 집값↓
고금리로 인해 '영끌'해서 집을 산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런 가운데 김 교수는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11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은행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금리는 지난해 10월 4.82%에서 11월 3.74%로 떨어졌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대출금리 중에서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그 다음에 은행 주택담보대출금리가 떨어진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후행한다"면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50%가 되면, 이는 금리인상 사이클의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이 가장 안 좋을 것 같다. 3분기 후반부터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국은행이 1월 이후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장금리가 하락했을 때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린 적이 거의 없었다. 시장이 (금리를) 미리 예고하는 것이다. 또한 작년 4분기 경제성장률(전분기 대비)을 –0.3%로 보고 있는데, 물가상승률도 낮아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 없다고 본다."
그에게 집값을 물었다.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는데, 금리가 낮아지면 다시 집값이 뛰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금리가 집값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집값이 한 번 꺾이고 나서는 경기가 집값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현재의 경기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이 수치가 작년 10월을 정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1972년부터 11번의 사이클이 있었는데, 평균 19개월 떨어졌다. 지금 경기를 보면, 집값이 더 많이 떨어져야 한다."
- 현재 집값이 정상적인 수준보다 더 높다고 보나.
"지금도 비정상으로 높다. PIR(가구소득 대비 집값 비율)을 보면, 재작년 말 19배였다. 중간 가구 소득 가진 분이 19년 동안 하나도 안 쓰고 저축해야 서울 중간 집을 살 수 있다는 거다. 작년 9월 발표 때는 17.7배로 조금 줄어들었다. 2008년부터의 장기 평균은 12배다. 그럼 아직도 서울 집값이 30~40% 과대평가된 것이다. 전국 평균도 20~30% 과대평가됐다."
- 집값 하락 연착륙이 가능하리라고 보나.
"자산가격 하락에 연착륙이 없다고 늘 말해왔다. 또한 장기적으로 특정 지역은 집값이 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장기하락 추세에 접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집값이 오른 것은 소득과 가구수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재 경제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지면 소득증가속도가 줄어든다. 가구수도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2029년이나 2030년 정점을 찍고 줄어든다."
- 올해 집값 하락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주가와 집값이 오르면, 우리가 부자가 된 것처럼 느껴져서 소비를 늘린다. 반대라면 우리가 가난하게 느껴지고 소비가 줄어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가보다는 집값이 소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가계의 실물자산은 78%, 금융자산은 22%다. 또한 건설회사가 어려워진다. 미분양 주택이 굉장히 빨리 늘어나고 있다."
- 그렇다면 부동산발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은 없나.
"일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많이 하는 제2금융권, 일부 저축은행이나 증권회사는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위기가 은행까지 가야 금융시스템 위기라 할 수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주식 시장은 어떨까. 김 교수는 "명목GDP, 일평균수출금액, M2(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유동성 지표)를 가지고 주가가 과대·과소평가됐는지 판단하는데, 올해는 과소평가의 영역에 들어섰다. 주식을 사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금 금융을 통해 모든 국민이 부자가 되는 '금융민주주의'를 이룰 좋은 기회인데, 지금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많이 떠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정부 대응 평가] "윤석열 정부, 격차 줄이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무시"
그렇다면 경기침체는 언제 끝날까. 김 교수는 올해 3분기를 저점으로 봤다. 더욱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재직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보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계단식으로 성장률이 떨어졌다. 박정희 정부 때는 10.2%, 김대중 정부 때는 5.8%, 문재인 정부 때는 2.3%였다. 윤석열 정부 동안에는 2%라고 보고 있다. 구조적으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경제가 9~10% 성장할 때는 기업들도 같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경쟁력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축출자본주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차별화는 심화되고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산성 향상을 꼽았다.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 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이를 거의 무시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 윤석열 정부는 노조 때려잡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타협을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그게 문제인 것 같다.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을 한다는데 수요자를 좀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사에 '통합'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왔다. 신경을 안 쓰고 있다는 것인데, 이번 정부의 가장 큰 문제다."
그는 정부의 감세 정책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정부는 돈 많이 버는 기업들과 다주택자의 세율을 낮추고 있다. 감세를 해주면, 이들이 투자하고 소비할까? 경기가 어려울 때 감세는 별 효과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경기가 어려울 때 정부의 직접 지출을 늘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3분기에 우리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정부 여당은 깜짝 놀라서 추경예산을 편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