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개월간 윤석열 정부를 관찰했다. 필자가 느낀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해치운다'는 것이다. 여론의 비판에도 인사 라인을 검찰 출신으로 거의 도배하다시피 하고 상위법인 법률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했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으로 MBC를 겁박했고, 이태원 참사 이후 경질 여론이 들끓는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을 되레 격려했다.
최근의 소위 '나경원 찍어내기'는 또 어떤가. 대통령이 되면 여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지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용산은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에서 '윤심'이 논란이 되는 것만 봐도 대통령의 영향력이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과거 대통령도 여당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지금처럼 '요란'하진 않았다. 조심스럽고 내밀했다.
이쯤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이렇게 '용감'한 것일까?
이분법적 세계
필자는 윤 대통령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정체성은 '검사 집단의 보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검사'와 '보스'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그를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평생을 검사로 살아왔고, 대통령이 되기 직전엔 검찰의 우두머리로 행세했다.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의식 구조는 하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윤 대통령은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가치와 철학 대신 검사와 보스의 세계관에 갇혀 있는 듯하다.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와 상명하복의 수직적 조직문화로 규정되는 검사로서의 세계관이 첫 번째이고, 강하고 멋지고 폼나는 보스로서의 스타일이 두 번째다. 취임 후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행보들은 이것으로 설명 가능하다.
그는 야당의 협조를 말했었다. 그러나 정작 야당 대표와는 한 차례 회동도 하지 않았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필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형사사건 피의자로 보고 대통령이 어떻게 피의자와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겠느냐는 이분법적 사고가 투영된 것으로 본다.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을 차례도 찍어낸 것도 검사적 세계관이 작동한 것으로 보면 이해할 만하다.
상명하복과 수직적 조직문화가 지배적인 검찰의 시각으로 볼 때 정당과 국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격하게 말하면 성가신 사람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소통과 대화의 대상이라고는 보지 않는 듯하다.
숱한 문제점과 들끓는 사퇴 여론이 있음에도 이상민 행안부장관을 감싸는 건 보스로서 지켜야 할 의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따로 불러 신임을 표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태시키는 것도 공조직 리더로서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언론에서 대통령이 누구를 불러 밥을 먹었다는 식의 '식사 정치'가 거론되기에 하는 말이다.
'보스적' 민주주의?
검사적 세계관은 검찰이라는 사법 체계의 일부분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가치관일 뿐이다. 흑백과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현실 세계에 대입하려 할 때 심각한 문제가 초래될 것은 자명하다. 당장 UAE에서 '이란은 적' 발언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선하고 상대는 악하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인 '진영 논리 매몰'을 부추길 뿐이다.
'보스 정치'는 공공의 이익과 거리가 멀어질 공산이 크다. 경우에 따라 두려움과 불신의 문화를 만들 수 있고, 보스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에겐 불이익이 초래될 수도 있다. '시대착오'라는 말이 요새 회자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대통령제의 폐해를 대표하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제왕적'이다. 2023년 우리가 어쩌다 '제왕적' '보스적' 국정운영을 걱정할 형편으로 전락했는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에게 '적', '불법 세력'의 낙인을 찍는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상식씨는 전 부산경찰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