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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오늘도 어둑한 부엌에서 밥을 지으신다.

먹고살기 힘겨웠던 시절, 하얀 쌀밥은 흔한 시절이 아니었다. 다랭이 논에서 거둔 몇 가마니의 벼, 아버지의 피눈물이 담긴 쌀이었다.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짓고, 부족한 식량을 메꾸기 위해 비탈밭에는 보리와 밀을 심어야 했다. 남은 밭에는 고구마라도 심어야 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밥을 짓는 커다란 솥, 검은 보리쌀이 바닥에 깔려있고 가운데로 하얀 쌀이 한 줌 놓여 있다. 아버지의 밥그릇에 담길 쌀이다. 하얀 쌀밥이 아버지 밥그릇에 담기고, 나머지는 입맛 까다로운 아들 밥그릇에 담겨야 했다. 부족한 식량은 비탈밭에 밀을 심고, 어머니의 고단함이 깃들여진 국수로 대신했다.

철부지 아들은 밀가루 냄새를 싫어했고, 어머니는 국수와 밥을 동시에 하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철부지는 어머니의 고단함을 덜어주기는커녕, 두 배로 더해 주며 자랐다. 살림살이가 조금 넉넉해지면서도 쌀밥만이 유일한 식사였다.

세월이 흘러 보리밥과 국수를 즐겨 먹지만, 오로지 쌀밥을 무기 삼아 30년 가까이 살아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세 끼는 반드시 밥으로만 해결했다. 간식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세 끼 밥으로만 가능했던 삶이었다. 언제나 쌀밥만을 고집하는 사람, 모두를 어렵게 했다. 세월이 흘러갔고 발상을 전환하는 계기가 있었다.

아침 식사, 왜 밥만 먹어야 할까

10년도 더 넘은 이야기다. 어느 날 새벽, 아내가 벌써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다. 한 시간여를 일찍 일어나 시작하는 일과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는 처지에 쓸데없이 고생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지은 밥을 순식간에 먹고 출근하는 나, 어딘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을까? 새벽부터 늦게까지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라,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에 식사 방법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 배낭여행 기억이 떠 올랐다. 해외여행에선 빵으로 간단히 해결하는데, 왜 못하겠는가? 

오래전, 그리스와 터키 배낭여행을 20여 일간 다녀온 기억이다. 어렵게 첫날 저녁을 보내고 아침식사를 하러 찾아간 식당, 꺼벙 머리 총각이 주방에 있다. 저 친구가 아침을 주려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사이 아침 식사가 제공되었다. 구운 빵과 계란프라이 한 개, 그리고 우유 한잔이 전부였다. 더 달라해도 그것이 아침이란다.

어이가 없었지만 할 수 없이 빵 몇 조각과 우유와 계란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조금은 허전했지만 여행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점심도 빵으로 해결했고, 저녁도 같은 식사로 해결하며 여행을 다녔다. 이런 식사도 있었구나! 배낭여행을 하면서 먹던 아침이 떠오른 것이다. 됐다. 이런 방법도 있음을 기억하고 아내에게 아침만이라도 빵으로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갑자기 빵으로 해결하자는 말에 어리둥절하던 아내, 그러나 본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유는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내가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 시도나 한번 해보자고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해외 여행에서 만난 한끼 간편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아침식사로 충분했던 모로코에서의 한끼.
해외 여행에서 만난 한끼간편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아침식사로 충분했던 모로코에서의 한끼. ⓒ 박희종
 
빵과 간단한 과일로 아침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평생을 밥으로 해결하던 아침을 빵으로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40여 년간 밥으로 해결하던 아침 한 끼, 빵과 음료수로 해결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오히려 간단하고도 속이 편함을 알게 되었다.

아내도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고 식사 준비와 설거지도 간편했다. 빵과 과일이 싫증 나면 간단한 떡과 과일로 대신하고, 그것도 불편하면 샌드위치나 가래떡으로 해결한다. 고구마와 옥수수가 등장하기도 하고, 여름이면 찐 감자로 해결한다. 겨울이면 호박죽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때부터 15년을 넘게 오로지 밥으로만 해결하던 아침 식사가 다양해졌다. 영양면으로도 좋고,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해 준다. 자그마한 발상의 전환은 많은 것을 편리하게 해주고 있다. 아내가 전담이던 설거지는 공동 일로 변해 버렸고, 간단한 손빨래는 손수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와 둘이 살지만 살림살이는 간단한 것 같아도 매우 복잡하다. 밥을 먹어야 하고, 빨래를 해야 하는 일은 마찬가지 아닌가. 아내는 언제나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아침을 빵이나 과일로 해결하지만, 적은 빨래 거리를 세탁기로 해결할 만큼 모아 놓기는 불편하다.

평소 나는 빨래 거리를 던져놓고 말았던 사람이다. 운동을 좋아하기에 땀에 젖은 빨래가 늘 있게 마련인데 젖은 빨래를 모아두기는 영 불편했다. 운동 후 샤워를 하는 중에 손빨래로 해결하기로 했다.

대학 시절 자취한 실력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10년도 넘은 습관이다. 삶이 훨씬 편리하고도 간편해졌다. 왜 그런 생각을 진작 하지 못했을까? 늙어 가는 청춘이 살아가는 방법, 발상의 전환이 편하고도 쾌적한 삶을 만들어 주고 있다. 

#생각의 전환#아침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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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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