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정체성 혹은 당 정체성.
대통령실과 친윤(친윤석열)이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를 향해 꺼내든 새로운 잣대다. 안 후보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를 했을 때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묻지 않았던 질문들이다.
친윤 대표 당권주자인 김기현 후보는 7일 본인 페이스북에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나", "신영복은 위대한 지식인", "사드 배치, 국익에 도움 안 돼", "DJ, 햇볕정책 계승하겠다", "독재자 등소평이 롤모델" 등 안 후보의 과거 발언을 꺼냈다.
그는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다시금 조명된 안철수 후보의 과거 발언들이 우리 당원들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며 "안 후보가 과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국민의힘 정신에 부합하는 생각과 소신을 가지고 있느냐는 근본적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피하지 말고 숨지 말고 당당하게 답해주길 바란다"라며 관련 발언들에 대한 공세를 더했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나"라는 2012년 대선 당시 발언에 대해선 "최근 제주도에서 발각된 한길회 간첩단 사건 등 문재인 정권이 숨겨왔던 간첩단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따졌다.
안 후보가 2016년 고(故) 신영복 선생 빈소를 찾아 "시대의 위대한 지식인께서 너무 일찍 저의 곁을 떠나셨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들 후대까지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고 애석해 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공산주의 대부 신영복이 존경받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밝혀 주시라"고 공격했다.
또한 사드 배치에 대한 안 후보의 현재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하는가 하면, "김대중 정부의 일방적 대북지원, 북핵 문제의 시발점이라고도 비판받는 (햇볕) 정책의 어떤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특히 "정치인 안철수의 소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국민의힘 당 대표에 도전했다면 당의 정체성, 당원 정신과 전혀 다른 언행에 대해 한 번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하지 않겠나"라고 안 후보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안철수 측 "김기현 지지율 잘 안 나와 벌어지는 일"
이와 같은 김기현 후보의 '정체성' 공격은 최근 대통령실과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공격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윤핵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6일) 본인 페이스북에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하는 사람!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사드배치에 반대한 사람! 잘된 일은 자신의 덕이고, 잘못된 일은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라며 안 후보를 직격했다. 또 "작은 배 하나도 제대로 운항하지 못하고 좌초시킨 사람이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되겠다고 한다. 어찌해야 할까요"라며 안 후보의 과거 이력 역시 부각 시켰다.
대통령실 역시 마찬가지다. JTBC는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이 안철수 의원을 겨냥해 '이념 정체성이 없다'는 말도 측근을 통해 전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보도됐던 "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 "무례의 극치"란 표현에 이어 안 후보를 당 정체성에 맞지 않는 인물로 낙인 찍은 셈이다.
이 정도면 대통령실과 친윤계는 사실상 안 후보를 같은 정당 안에서 함께 하기 힘든 인사로 규정한 것이나 다름 아니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선 안 후보의 '전당대회 포기'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
하지만 안 후보 측은 이러한 관측에 대해 "철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 캠프의 김영우 선거대책위원장은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우리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당대표에 나섰고 지금 가장 잘 나가는 후보인데 여기서 왜 갑자기 드롭(포기)을 하느냐, 그건 있을 수 없고 머릿속에 아예 없다"면서 "(철수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부각되고 있는 '정체성 공격'에 대해서도 "왜 단일화할 때는 가만들 계셨냐. 왜 합당, 입당할 땐 가만히 계셨냐"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 나오는 안 후보 과거에 대한 비판은 결국 김기현 후보의 지지율이 잘 안 나오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며 "단일화까지 했고, 인수위원장까지 했고 지금 1등을 달리고 있는 유력 당 대표 후보에 대해 과거 야당 시절에 있었던 언행에 대해 이렇게 정면으로 꼬투리 잡는 것은 우리 스스로 집권 여당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실은 '우리는 중립이다' 왜 그 말씀을 못 하느냐"라며 대통령실에 대한 섭섭함을 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