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나는 유독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런 나를 특히나 괴롭게 했던 것은 바로 달리기시합. 운동회의 꽃이라는 5인 달리기 시합은 내겐 운동회의 독이었다.
그런 달리기 시합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출발선에 발을 내딛기 전 대기하던 시간이었다. 그때마다 "꼴지하면 어쩌지? 뛰어가다가 넘어지면? 출발은 제때할 수 있을까?"라는 무수한 걱정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는 바람에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옆에 나란히 선 친구들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웃으며 장난치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는 그들의 모습. 그 모습에 뼛속 깊이 외로움이 스몄다. 긴장에 외로움까지 더해져 한껏 무거워진 두 발로 출발선에 섰던 나는, 한동안 달리기시합에서 꼴찌를 면치 못했다.
선생님의 푸르른 조언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운동회를 며칠 앞두고 답답한 마음에 달리기 시합에 대한 걱정을 일기장에 빼곡히 토로한 적이 있었다. 어린 소녀의 근심이 뚝뚝 묻어나는 글 아래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파란 펜으로 정성 어린 댓글을 써주셨다. 일기장을 덮지 못하고 그 문장에 한참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도 아직 달리기 시합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이가 긴장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럴 땐 심호흡과 함께 난 할 수 있다, 라고 속으로 반복해서 외쳐보렴. 그리고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결승선을 무사히 통과한 너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러면 출발선을 향해 내딛는 발이 조금은 가벼울 거야."
나는 어린 소녀의 마음을 매만져주는 너무도 푸르던 선생님의 그 말을 일기장에서 뚝 떼어 가슴 깊숙이 새겨넣었다.
며칠 후 달리기시합, 대기선에 선 나는 또 다시 긴장 속에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떨고 있었다. 출발선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때 선생님의 푸르던 그 말을 떠올려냈고, 즉각 실행에 옮겼다.
"후우"하며 심호흡을 몇차례 하니 신선한 공기가 내 몸에 들어오면서 가팔랐던 호흡이 안정되었고, 속으로 수십번 되뇌인 "나는 할 수 있다"는 떨리는 두 발에 단단한 힘을 실어주었다. 또한 머릿속으로 무사히 결승선에 도착하는 내 모습을 몇번이고 상상했다.
일순 마법처럼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두 발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여전히 꼴등은 면치 못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긴장을 내려놓고 출발선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내겐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 이후로 달리기를 할 때마다 선생님의 푸르던 말은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처럼 불쑥 나와 마법을 발휘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마법의 주문은 매해 달리기 시합에서 꼴찌를 면치 못했던 나를, 중학교 3학년 체육대회 날에 1등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다.
그 후로도 몇년동안 그 마법의 주문에 기대어 달리기시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비로소 달리기시합에서 놓여난 이후, 그 주문은 먼지가 쌓인 채 내 가슴 속 깊숙이 숨어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의 의미
그로부터 몇년이 흘렀다. 최근의 나는 다시금 달리기시합을 앞두고 대기선상에 서있다. 2년여의 육아휴직에 종지부를 찍고 3월 1일자 복직이라는 이름의 달리기 시합. 1월까지만 해도 아득하게 느껴지던 복직이라는 글자가 2월이 되니 발걸음을 성큼 내딛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학창시절 내 한몸만 홀가분하게 달리면 되었을 때와 달리, 이번 시합에서는 양 어깨에 두 아이를 얹고 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에 중압감까지 더해져 양다리에 1톤이 넘는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 같다.
아침엔 대체 몇시에 일어나야 할까? 아침밥을 먹일 수는 있을까? 출근 중에 전염병이나 열난다고 연락오면 어쩌지? 아침에 떼쓰느라 지각하는 상황이 오면? 복직도 하기 전 점층법처럼 커져가는 질문들이 나를 옥죄어온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식은땀이 흘렀다. 자다가 불현듯 그 걱정들로 잠을 깨는 날도 많았고, 입맛도 잃었다.
그 순간 섬광처럼 번뜩 마법의 주문이 떠올랐다. 달리기시합에서 긴장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요술램프 속에서 불러낸 문장들. 만년 꼴지던 나를 종내에는 1등으로 만들어준 마법의 주문. 가슴 깊숙이 넣어두었던 그 주문을 오랜만에 불러내었다. 먼저 제자리에 서서 숨을 들이 쉬고 깊게 내쉬었다. 심장박동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를 백번쯤 되뇌었다.
다음으로는 눈을 지긋이 감고 머릿속으로 두 아이를 무사히 등원시키고 출근해 일터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온몸의 긴장이 스르륵 녹으며 두 발이 한결 가벼워졌다. 잠을 덜 깨게 되었고 입맛도 조금 돌아오기 시작했다.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마법의 주문은 만병통치약처럼 내게 효력을 발휘했다.
사실 그 마법의 주문이라는 것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학창시절의 달리기시합이라는 두려운 상황은 늘 같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였던 내 마음을 바꾼 것이 1등이라는 마법을 부렸던 것이다. 복직도 달리기 시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부정적인 마음을 키우는 대신 설렘과 기대감으로 마음을 채워간다면 마법이 또 한 번 일어나지 않을까?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절대 진리지만 내가 직접 행해야만 진짜 진리가 될 수 있다. 수차례 연습을 통해 몸에 익혀야 한다. 달리기 시작전 준비운동으로 몸을 예열하듯, 새로운 시작 전에도 마음 다스리기를 통해 마음을 예열해야 한다. 그것이 결승선까지 달릴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기도 하니까.
새로운 시작이 한달도 남지 않은 3월, 곳곳에서 봄을 알리는 신호탄들이 터지기 직전이다. 그 신호탄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출발선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입학식, 복직, 새출근 등 이름은 다르지만 시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기선에 서있을 것이다.
나 그리고 내 옆에 나란히 서 있을 그 누군가를 떠올리며 마법의 주문을 조심스레 외워본다. 부디 그들의 마음에도 이 주문이 가닿아 그들이 긴장과 두려움 대신 설렘과 기대감으로 대기선에 서있기를. 그리하여 봄이 오는 신호탄이 울리는 순간 가벼운 발걸음으로 함께 출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