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제주 4.3사건에 대해 국민의힘 태영호(서울 강남갑) 국회의원이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태영호 의원은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제주 4.3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북한 출신으로, 주 영국 북한 공사로 근무하다가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탈북해 2016년 8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해 12월 주민등록을 해 대한민국 국민임을 공식으로 인정받았고, 지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 13명 중 8명으로 추리는 1차 컷오프를 통과했다.
13일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인 12일 제주를 찾은 태 의원은 첫 일정으로 제주 호국원을 찾아 참배했다.
그는 호국원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헌신하신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는 글귀를 방명록에 남겼다.
다음 일정으로 찾은 곳은 제주4.3평화공원. 4.3공원을 참배한 태 의원은 이날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고 "4.3은 김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면서 "김씨 정권에 몸담다 귀순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희생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금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됐다. 이 같은 비극이 없도록 자유 통일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며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자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첫 시발점으로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제주 4.3이 촉발됐다는 태 의원의 주장은 오랜 세월 제주도민사회를 괴롭힌 색깔론 중 하나다.
우리나라 정부에 의해 발간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4.3에 대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의 경찰지서 습격을 시작점으로 잡는 것은 퀴퀴하게 묵어 반세기 넘게 도민사회를 괴롭히는 '4.3흔들기' 중 하나다.
4.3은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 기마대에 어린 아이가 다쳐 항의하는 도민들을 향한 경찰의 발포해 민간이 6명이 숨지면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당시 시대 상황은 친일경찰에 대한 도민들의 불만이 컸을 때다.
당시 도민의 70% 이상이 참여하는 총파업에 이어 남로당의 무장봉기가 겹치면서 군경이 해안가 마을을 제외한 초토화 작전에 돌입, 토벌대와 무장대 사이에서 애꿎은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사건이다.
4월 3일을 국가추념일로 격상시킨 건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 때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4월3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제74주년 4.3추념식에 참석해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바로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이다.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4.3 명예회복을 위한 중단없는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지역에선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출마한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망발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제주의소리>와 한 전화전화에서 "경거망동한 발언이다. 어떤 의도로 이런 발언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김일성 일가와 관련된 내용도 없다. 제주4.3특별법까지 제정된 상황인데, 탈북한 태 의원이 당시 제주의 상황을 공부했는지 의문"이라면서 "4.3뿐만 아니라 여순사건 등 과거사 문제를 이념의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