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역사적 사실도 부인하고, 오직 자기 주장만을 절대화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망언으로, 극우 색깔론으로 악마화하는 건 역사적 진실에 대한 지성적 태도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 앞에 후퇴란 있을 수 없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란 제주 4·3사건 관련 자신의 발언에 대해 4·3사건 유가족과 더불어민주당 등이 비판을 쏟아내자, 15일 추가 발언을 내놨다. 태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에 대한 실질적인 근거 사료는 제시하지 않았다(관련 기사:
'제주4.3 김일성 개입' 근거 묻자 태영호 "유튜브로 북한 드라마 봐라" https://omn.kr/22qk0).
이날 태 의원은 지난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보고서 바로보기)>(이하 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해서도, 자신은 반대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라 주장했다. 그는 이날 "일각의 주장처럼 4.3 사건 관련 정부 진상보고서에는 그 어디에도 김일성의 지시로 4.3 사건이 촉발됐다는 내용이 없다. 남로당 제주도당이 조직적 반(反)경찰활동을 했다면서도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바로 이 부분이 제가 반대 의견을 제시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발간한 진상조사보고서는 왜 4·3사건 당시 남로당 중앙당의 지시가 없었다고 파악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증언과 전문적 의견, 자료가 있다.
당시 남로당 인물들도, 백선엽도 "남로당 중앙 지시 없었다"고 증언
먼저 살펴볼 증언은 당시 남로당 지하총책을 맡은 박갑동의 증언이다. 보고서에서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의 근원"이라고 지적한 박갑동은, 1973년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글' 연재를 통해 4·3사건을 언급하며 "남로당 중앙당의 폭동지령에 의해 4·3사건이 발생했다"는 내용을 주장했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이후 2002년 7월 11일 채록에서 박갑동은 스스로 해당 내용에 대해 "내가 쓴 것이 아니고, 내 글을 신문에 연재할 때 외부에서 다 고쳐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진상조사보고서 162쪽에 실린 박갑동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4·3이 5·10선거 반대투쟁이라지만 왜 유별나게 제주에서만 그랬겠는가? 4·3은 서청(서북청년단)과 경찰이 횡포를 부려 발생한 사건이다. 본격적인 무장투쟁이 아니며 경찰과 서청에 대항하기 위해 제주도 안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난 것"
박갑동뿐만이 아니다.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의 정치위원이었던 이삼룡 역시 2002년 7월 11일 채록을 통해 '무장봉기 결정' 관련해 "중앙당의 지령은 없었고, 제주도 자체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같은 보고서 158쪽).
심지어 북한 인민군과 실제로 전투를 치른 고 백선엽 장군 역시 자신의 회고록인 <실록 지리산>에서 "여순반란사건은 결코 남로당 중앙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다. 4·3과 마찬가지로 당 말단에서 빚어진 자의적인 행동이었다"라며 4·3사건이 남로당 중앙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관련 전문가도, 당시 무장대의 자체문헌도 '중앙 지시설' 일축
당대의 인물들만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다. 관련 전문가들도 4·3사건에 남로당의 중앙 지령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1980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세계 최초로 4·3사건에 대한 논문(<The Cheju-do Rebellion, 제주도 반란>)을 발표한 존 메릴 박사는 1990년 6월 <제민일보> 인터뷰에서 "나의 조사 결론으로는, 중앙당의 지령이 없었다는 것"이라 밝힌 바 있다(보고서 163쪽).
2016년 6월 <통일뉴스> 연재에 따르면, 1960년대 북한에서 남파된 뒤 전향해 남로당에 비판적인 입장 하에 <남로당 연구> 등 학술연구에 임한 고 김남식 경남대북한대학원 초빙교수 역시 4·3사건을 두고 "전면 무력투쟁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제주 봉기 이후 본토에서 호응투쟁도 없었다. 제주도의 특수여건이 김달삼 등의 선동에 의해 터진 것"이라고 일축했다.
문헌 자료 또한 존재한다.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는 당시 제주 무장대가 자체 생산한 문건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으로 1949년 6월, 경찰토벌대가 무장대 아지트를 급습하여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노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문건에는 4·3사건 당시 국방경비대에 제주도 출신의 남로당 프락치로 잠입한 고승옥 하사관이 같은 남로당 프락치였지만 중앙 직속 출신인 문상길 중위에게 국방경비대의 병력 출동을 요구했으나 문 중위가 "중앙 지시가 없으니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무장대는 "(병력 출동을) 재삼, 재사 요청"했으나 문 중위는 "중앙 지시가 없음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일관했다. "이리하여 4·3 투쟁에 있어서의 국경 동원에 의한 거점 분쇄는 실패로 돌아갔음"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정부 발간 진상조사보고서는 165쪽에서 위 내용을 서술하며 "이 기록은 남로당 중앙당이 제주도 무장투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단서가 되고 있다"고 적는다. 즉 이는 4·3사건에 있어 남로당 중앙의 지시가 없었음을 드러내는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지성적 태도' 운운하기 전에 주장의 근거부터 갖춰야
이처럼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왜 4·3사건이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 지시가 아닌 남로당 제주도당의 독단적 행동인지를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태영호 의원은 이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보고서의 근거를 합리적으로 반박할 내용이나 근거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생뚱맞은 북한 영화와 드라마를 본인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며 무작정 자신의 주장이 "역사적 진실"이고 "이 명백한 사실적 자료를 왜 자꾸 색깔론이라고 얘기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태영호의 고집 "'4.3은 김일성 지시', 그게 역사적 진실" https://omn.kr/22r08 ).
대체 태 의원이 언제 '명백한 사실적 자료'를 밝힌 바가 있는가. 전술한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들을 뒤집을 수 있는 자료를 대체 언제 공개한 바가 있는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단지 본인이 북한 고위관료 출신임만을 내세우면 그만인가.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태 의원은 자신을 향한 비판에 "지성적 태도가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이제 부디 본인이야말로 명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주장하는 '지성적 태도'를 속히 갖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