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화재참사 20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추모탑 앞 광장에서 열렸다. 하지만 팔공산 동화지구 상인연합회 상인들은 추모식 내내 음악을 틀고 고성을 지르며 방해했다.
추모식에는 참사 유족을 비롯해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 강민구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 세월호 참사 유족 등 3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추모식은 오전 9시 53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을 시작으로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위원장의 경과보고, 추도사, 추모공연, 추모곡 제창,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재난참사를 기억하는 일, 보수-진보를 넘어서는 가치"
윤석기 위원장은 "불쏘시개 전동차를 허용하는 법과 제도가 이 땅에 있었다"며 "이러한 사실이 2003년 2월 18일 한 방화범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당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구시와 추모사업에 대한 합의를 했지만 몇 차례 지역 주민의 반대로 추모공원 조성부지가 바뀌다 이곳 팔공산 용수동에 추모공원을 조성해주기로 대구시와 이면합의를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2005년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사실과 2009년 수목장을 대구시와 사전 합의해 진행했다는 것을 밝혀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는 추도사를 통해 "우리의 꿈은 안전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것이었고 우리의 목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질문은 이 엄청난 일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끄럽게도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소망과 꿈,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세상은 우리에게 슬픔을 삼키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재난참사를 기억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가치"라며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는 자유, 민주, 복지 그 어떤 가치보다도 더 근본적인 가치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는 여전히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해"... 대구부시장 불참, 추도사도 없어
강민구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은 추모공원으로 조성하려는 유족들과 동화지구 상인연합회가 대립하는 것과 관련해 "대구시장이 적극 나서야 하지만 일부 권한 없는 공무원들에게만 맡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대구지하철참사,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태원 참사 등을 거론하며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간 이 비통한 역사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그치고 있지만 정치는 여전히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는 "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모시는 자리에 추모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2.18기념공원은 안전테마파크로, 추모비는 안전조형물이라는 반쪽짜리 이름으로 그날의 진실을 가리고 있다"며 "참사의 기억과 추모의 뜻을 지우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참사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싸움은 늘 기록과의 투쟁이었다"면서 "정의당은 국가가 멈춰선 자리를 분명한 기록으로 남기고 그 자리에서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구시는 김종한 행정부시장이 참석해 추도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참석하지 않았고 추도사도 따로 내놓지 않았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유족들은 그날을 기억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유족들과 시민들로 구성된 2.18합창단이 추모곡을 부르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추도식이 끝난 후 추모탑을 참배한 유족들은 추모탑 옆 추모꽃밭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에 꽃을 꽂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 유족은 "엄마가 미안하다. 만나러 갈게. 그때가지 잘 있어야 한데이~"라며 흐느꼈다.
동화지구 상인들 "추모식 방해하는 거 아냐, 대구시에 항의하는 것"
하지만 추모식 밖에서는 동화지구 상인들이 추모식을 방해하며 구호를 외치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 추모식을 방해했다.
이들은 지난해 2월 11일 권영진 전 대구시장과 상가번영회장이 합의한 협약서를 나눠주며 대구시가 책임져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들이 공개한 협약서에는 동화지구 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위해 관광 트램 설치, 파계사에서 동화사를 거쳐 갓바위까지 단풍 백리길 조성, 도시재생사업 추진 등 3가지 약속이 담겼다. 대신 유가족들의 추모식을 허용하고 안전상징조형물을 추모탑으로 명칭 변경, 시민안전테마파크를 2.18기념공원으로 명칭을 병기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상인들은 "시장이 바뀌었다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느냐. 홍준표 시장은 우리를 만나주지조차 않는다"며 "우리는 유족들의 추모식을 방해하는 게 아니다. 대구시에 항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상인은 "대구시가 상인회와 유족회를 갈라치기하고 있다"며 "유족들에게 우리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대구시가 약속을 안 지키기 때문에 우리는 약속을 지킬 때까지 추모식을 방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