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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섹시 아이템인 알루미늄 집게 덕분에, 인생 최대 매력을 뿜어낼 수 있다.
뉴 섹시 아이템인 알루미늄 집게 덕분에, 인생 최대 매력을 뿜어낼 수 있다. ⓒ 최다혜
 
등 뒤에서 누가 나를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처음에는 나를 붙잡는 소리인 줄 모르고 갈 길을 가는데, 어떤 분이 다급히 뛰어서 다가왔다.

"왠지 이쪽으로 오실 것 같았어요. 다시 지나가실 때를 기다려봤어요."

그 분은 내 손에 박카스 한 병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연이어 칭찬을 쏟아냈다. 당신은 참 멋지고 좋은 사람이에요! 연예인도 아닌데, 길에서 누군가에게 호의 담긴 선물을 받다니.

2400원으로 타인에게 호감 사는 법

35년을 살았지만 전에는 겪어본 적 없던 일을 이상하게도 요즘 종종 겪는다. 수려한 외모를 위해 안티 에이징 화장품과 각종 미용 시술이 넘치는 시대에, 선크림만 대충 바른 반쯤 민낯으로 나는 인생 최대의 매력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사실 낯선 이도 말을 걸게 하는 이 매력에는 비결이 있다. 비장의 뉴 섹시 아이템 덕분이다. 이 아이템의 가격은 인터넷 최저가로 2400원 즈음이다. 그건 바로 알루미늄 집게! 집게라고? 고개를 갸웃하시겠지만, 맞다. 거리의 쓰레기를 주울 때 쓰는 길고 가벼운 그 집게 말이다.

한 손에는 알루미늄 집게, 다른 한 손에는 종량제 봉지를 들고 바닥의 쓰레기를 줍다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종종 말을 건다. '고맙습니다', '멋지세요', '수고하십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뉴 섹시 아이템(알루미늄 집게)로 산책 혹은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일, 그러니까 플로깅(Plogging)은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매력 행동이다. 플로깅을 하지 않을 때는 길을 가던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며 말을 건넨 적도, 건넬 일도 없다. 하지만 플로깅을 하노라면 갖가지 다정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타인의 따뜻한 격려에 힘이 났다. 덕분에 다음에도 기분 좋게 플로깅을 할 수 있었다.
 
 플로깅은 시대가 새롭게 원하는 매력 포인트다.
플로깅은 시대가 새롭게 원하는 매력 포인트다. ⓒ 최다혜
 
사실 내가 플로깅을 하며 받은 다양한 호의는 칭찬과 격려에 가까웠으니, 플로깅으로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플로깅을 하는 이에게 우리는 대개 좋은 감정을 느낀다. 왜일까?

2021년,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참고: <지구를 위하는 마음>, 김명철, 다산 북스). '그린 이즈 더 뉴 섹시(green is the new sexy)'. 연구 결과 친환경 행동을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섹시해 보인다고 한다.

왜 그럴까? 친환경 행동은 과거 소스타인 베블런이 주장했던 '과시적 소비'의 맥을 잇는 '값비싼 신호' 중 하나다. 즉,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에게 어필하는 거다. 그래서 전지구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이 시대에, 친환경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더 호감을 받는다고 한다.
 
친환경 행동을 하는 사람은 공공의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눈앞의 이득을 포기하고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다른 모든 이에게 과시하는 셈이다. 타인과 협력하는 능력 또는 사회성이야 말로 사람을 진짜로 더 섹시하게 하며 배우자로서의 매력을 더해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친환경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 <지구를 위하는 마음> 중, 김명철 지음

트렌치 코트를 업사이클링한 옷을 입은 그레타 툰베리가 패션잡지 보그의 표지를 괜히 장식했겠는가. 이제 우리는 누군가 중고옷을 입었을 때 그 옷을 남이 입던 값싼 옷으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입는 사람의 가치관이 예쁘게 느껴진다. 호감이 저절로 생긴다.

자본이 귀한 시대에는 명품이 섹시, 자연이 귀한 시대에는 그린이 섹시! 바야흐로 친환경 행동을 하는 사람이, 명품 옷을 입은 사람만큼이나 섹시해 보이는 시대가 온거다.

원하는 만큼 지구를 도울 수 있는 일

자연이 귀한 시대라 그런 걸까.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내가 살아가는 방식 또한 조금씩 달라졌다.

자연이 귀한 줄은 몰랐지만, 돈이 귀한 줄은 알았던 과거의 나는 종잣돈을 모으는 재테크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푼돈 모아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소비를 절제했다. 절약은 뭐든 아낀다는 점에서 친환경 생활과 닿아 있었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끄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껐다. 연료비를 아끼고 화석연료 사용도 줄일 수 있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까 말까 고민이 될 때 10번 중 9번은 대충 집밥을 먹었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덜 배출했다. 작년 여름에 옷을 마련할 때에는 23900원으로 중고옷을 마련했다. 그렇게 의류생산과 폐기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았다.

그린 이즈 더 뉴 섹시(green is the new sexy), 내가 느끼기에도 친환경 생활은 매력적이다. 명품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서식지를 위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효능감 덕분에 절약이 더 즐거워지는 요소가 있다.

직접적으로 우리 가족에게 경제적 이득은 없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어느 새 지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든다. 가슴 뿌듯해지는 순간들도 여럿 생겼다. 그것은 계좌의 숫자로 대체할 수 없는 종류의 기쁨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 알루미늄 집게를 들고 쓰레기를 줍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호수로, 숲으로, 바다로, 공원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생활 양식을 절제함으로써 지구에 미치는 해를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플로깅을 함으로써 원하는 만큼 지구에 추가로 도움을 보탤 수 있다.

세상에도 좋고 나에게도 좋다
 
 작년 한 해, 500L의 쓰레기를 주웠다. 자연이 귀한 시대라 마음껏 자랑해도 사람들이 대견하게 봐준다.
작년 한 해, 500L의 쓰레기를 주웠다. 자연이 귀한 시대라 마음껏 자랑해도 사람들이 대견하게 봐준다. ⓒ 최다혜
 
플로깅을 하며 찍었던 사진을 시간 순서대로 놓고 세어보았다. 작년 한 해 동안 종량제 봉투 500L만큼 길 위의 쓰레기를 주웠다. 쓰레기를 줍는 중간 중간 박카스도 받고, 알사탕도 얻고, 칭찬도 듬뿍 들었다. 

플로깅을 하면서 나는 나를 많이 칭찬해 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토요일 아침 일곱시, 화살나무 사이에 구겨져 버려진 홍삼 스틱을 줍는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런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온 세상이 빛난다. 

금빛 색깔 아침 볕도 예쁘고, 공기도 왠지 모르게 맑고 투명하다. 신상 핸드백을 샀다고 자랑하면 때때로 흠결이 되지만, 플로깅 길에 주은 담배 꽁초와 마이쮸 껍데기는 마음껏 자랑해도 사람들이 대견하게 봐 준다.

세상에도 좋고, 나에게도 좋으니 플로깅을 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나는 오늘도 2400원 짜리 섹시 아이템을 들고 집을 나선다. 플로깅 만세!

#플로깅#지구를구하는가계부#친환경#지구를위하는마음#김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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